[릴레이 기고] 광장에 선 ‘혐오(hate)’
/천종호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
자기보전본능은 인간의 본성이다. 생명신체의 안전에 위협이 닥쳐오고, 자유의 전제인 질서가 흐트러져가며, 사생활보장의 근거가 되는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의 획득을 위한 경쟁에 휩싸이게 되면 자기보전본능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안전, 질서, 이익이라는 이해관계가 걸린 자기보전본능 상호간의 충돌은 갈등을 유발하고, 갈등이 심화되면 폭력이 발생되기도 한다. 폭력의 단계에 이르러 수반되는 인간의 감정에는 ‘미움’이나 ‘싫음’이 있고, 그 중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아주 심한 경우를 ‘혐오(嫌惡)’라고 한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혐오’는 단순히 미워하는 것을 넘어 ‘차별’과 ‘경멸’의 요소까지 담아 집단 대 집단으로 표출하는 경우다. 노인에 대해 ‘연금충’이라고 하고 청소년에 대해서는 ‘급식충’이라고 하는 경우가 그 예다. 그 외에 혐오문제로 거론되고 있는 집단은 남성과 여성, 장애인, 이주민, 외국인, 난민, 성소수자가 있다. 그런데, 혐오문제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지만 담론에서 제외되는 부분이 있다. 바로 ‘비행청소년’에 대한 혐오문제다. ‘부산여중생폭행사건’ 등에서 보듯이 ‘비행’이 아닌 ‘비행청소년’ 자체에 대한 혐오는 과도한 수준이다. 그런데 이 혐오에 관해서는 진보든 보수든 혐오문제로 거론조차 않는다. 그 부모들은 혐오에 맞설 힘이 없다. 그러다보니 그들에 대한 처우문제는 항상 최후순위로 밀려있다.
혐오는 빠르게 전염되고 세대에서 세대로 전수된다. 고대 로마에서 시작된 유대인에 대한 혐오가 현대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 악마적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처럼 지금 우리 사회에서 횡행하는 혐오문제 중 나중에 어느 것이 뇌관이 되어 우리사회에 치명적인 손상을 끼칠지 모른다. 특히 비행 청소년에 대한 혐오문제는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혐오문제가 갑자기 광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문제가 공동체를 갈가리 찢어놓기 전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혐오문제 중에는 완벽한 해결이 불가능하고, 해결책이 있다 해도 그것을 마련하는데 긴 시간을 요하는 것도 있다. 그렇다고 이 문제에 관해 수수방관하거나 서둘러 광장에서 끌어내리려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건강한 공적 담론을 형성하기 위해 용기 있게 광장에 올라서야 한다. 광장에 선 이상 상대의 입장을 수용하고 여차하면 내 것을 떼어주겠다는 마음으로 혐오문제가 독성을 잃는 날까지 인내해야 한다. 그날 우리는 성숙한 시민과 아름다운 사회를 보게 될 것이다.
송지연 기자 sj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