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정책’ 모범 유럽연합 , 끊임없는 행렬에 진퇴양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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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9일 폴란드와 국경을 접한 벨라루스 그로드노 지역으로 몰린, 유럽연합(EU)으로 향하려는 중동 출신 난민들. AP연합뉴스

‘난민 정책’의 모범으로 여겨졌던 유럽연합(EU)의 난민 정책이 커다란 도전에 직면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난민을 다 받아들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막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진 것이다.

최근 벨라루스가 중동 지역 이주민과 난민을 EU 국가인 폴란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국경으로 내몰자 해당 국가들은 군경을 동원해 강력하게 이들의 국경 통과를 막았다. 이 과정에서 폴란드·벨라루스 국경에서 국경을 넘으려는 난민과 국경 경비병력 간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결국 벨라루스는 일부 난민을 다시 본국으로 돌려보냈으나 아직 벨라루스에는 난민 수천 명이 EU 국경을 넘기 위해 남아 있다.

팬데믹에도 유럽행 증가하자
군경 동원 중동 이주민 막아
EU 회원국, 국경장벽까지 설치
국제 인권 규정 개정 목소리도

벨라루스는 난민이 독일로 갈 수 있게 폴란드 측에 ‘인도주의 회랑’을 열어 달라고 요구했으나 폴란드는 이를 거부했다. 난민에게 상대적으로 관대했던 독일마저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중동,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온 난민이 유럽으로 들어가려다 실패한 사례는 벨라루스 국경뿐만이 아니다.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로 향하다가 바다에 빠져 죽기도 하고 발칸 국가로 넘어가려다 국경 장벽에 막히기도 했다. 지난달 24일 영불해협을 건너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가려는 난민이 탄 소형 보트가 뒤집어지면서 31명이 숨지는 사건도 있었다.

전 세계적인 팬데믹으로 국가 간 이동이 줄었음에도 유럽행 난민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EU 통계를 보면 올해만 EU 국가로 이주민과 난민 16만여 명이 들어왔다. 지난해보다 70%나 증가했고, 팬데믹 이전이던 2019년에 비해서도 45% 늘어났다.

2015~2016년 대규모 난민 유입 사태로 곤욕을 치른 EU는 점차 난민 유입에 엄격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무차별적인 강제 송환이 이뤄지고 난민이 망명 신청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고 인권단체들은 비판한다.

EU의 동부 경계인 폴란드는 아예 지난 8월 국경을 넘으려는 이주민과 난민을 즉각 강제 추방하고 망명 신청을 거부할 수 있도록 난민 관련법을 제정했다.

국제인권단체인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EU 집행위원회와 EU 회원국이 난민 보호를 규정한 제네바협약 등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권단체 보고에 따르면 EU 국경 지역에서 난민을 일상적으로 강제 송환하고 있으며 난민은 점점 망명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EU 국경경비 기관인 유럽국경·해안경비청(프론텍스)은 올해 상반기에 역대 최다인 8천여 명의 난민을 강제 송환했다. 프론텍스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강제송환과 추방이 이뤄졌다고 주장했지만 인권단체는 반발하고 있다. EU 회원국은 나아가 난민 유입을 물리적으로 막는 국경장벽을 세우고 있다. 그리스는 터키 쪽 국경에 40㎞의 장벽과 무인 감시장치도 설치했다. 벨라루스의 ‘난민 공격’에 직면한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도 국경 장벽 설치를 추진하면서 EU에 설치비용까지 요청했다.

인권단체들이 국제법 위반을 꾸준히 지적하지만 오히려 국제 인권 규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제네바협약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인구 이동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며 기후변화로 인한 난민 발생 등 새로운 유형의 복잡한 21세기 난민 사태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현정기자 yourfoot@busan.com·일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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