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권의 핵인싸] 이율배반의 교육, 우리의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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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물리학과 교수

10월 3일 개천절. 또 결강이었다. 금년 2학기엔 추석도, 다음 주 대체공휴일도 하필 월요일이어서, 중간고사가 17일부터인데, 총 6주 중 3주가 결강이다. 중간고사까지 나가야 하는 진도관리가 큰일이다.

교수자는 일반적으로 ‘강의하기’에 관한 한 전문가라서, 3시간짜리 진도를 보다 내실을 기해 6시간으로 늘일 수도 있고, 6시간짜리 진도를 3시간에 단기 속성으로 할 수도 있겠지만, 수강하는 학생들은 그렇지 못하다. 강의는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정보(지식)의 소통을 통해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상호작용이기 때문이다.

수단이 목적으로 둔갑해 버린 현실

눈앞의 이익·편의에만 초점 맞춰져

비판적 분석으로 후회 없는 선택해야

그래서 보강은 반드시 필요한데, 사실 보강은 교수자보다도 수강자인 학생들이 훨씬 싫어한다. 원래 보강은 최소한의 시수라도 제대로 채워서 양질의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한, 교수자들의 학생들을 위한 배려임에도 불구하고, 칭찬과 고마움은커녕 학생들의 강의 평가에 심지어 악영향을 주기도 한다.

학생들은 등록금을 내고 학교에 다니고, 교수자들은 학교로부터 월급을 받으며 다닌다. 경제적인 관계에서만 보면, 돈을 내는 학생들은 고객이고 교수자들은 구매한 내용을 제공하는 공급자인 셈이다. 갑을 관계로 보면 학생들이 갑, 교수자들이 을인 셈이다. 그런데도 실제로 눈치를 보는 것은 학생들이고, 을인 교수자의 모든 서비스를 받는 것을 오히려 부담스러워한다. 손익 관계로만 보아도 이는 이율배반이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 학기 내내 어쩔 수 없이 비대면으로만 수업을 진행해야 했다. 교수자들과 학교는 생전 처음 겪는 초유의 상황에서 매일같이 강의 동영상을 제작해야 했고, 또 화상으로 수강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했다. 국가적으로 엄청난 예산이 화상 강의 시스템 구축에 투입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 일들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교수자들은 상당한 고생을 해야 했다.

덕분에 동영상 제작 업체나 화상회의 서버 제공 업체들은 때 아닌 특수를 누렸고, 전 세계적으로도 엄청난 화상회의 인프라가 확충됐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등록금만큼의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했다며 등록금 환불을 요청했고, 상당수의 학교가 이에 응했다. 문제는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대면 수업이 정상인 상황에서도 학생들은 오히려 화상 강의나 동영상 강의를 훨씬 선호한다는 것이다. 교수자의 강의를 수강하려고 등록금을 낸 학생들이, 정작 손쉽고 편리하긴 해도 실질적인 집중 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는, 그래서 부득이한 경우에만 진행돼야 하는 비대면 수업을 두고서는, 대면 수업을 한다고 불평을 제기하거나 비대면으로 참가하면 안 되느냐고 따지는 상황은 이율배반적이다. 당장의 편의와 손쉬운 학점 취득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절대로 망하지 않는 사업이 두 개 있다. 사교육과 부동산 투자가 그것이다. 분명히 그것이 온당하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입으로는 얘기하면서도, 자기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 출세시키고 싶은 욕구와, 땅과 집에 대한 투자로 안정적인 불로소득을 얻고자 하는 욕구는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지금은 이런 욕구를 숨기려 하지도 않는다. 이것들이 마치 인생의 목적인 것처럼 떠들어지기도 한다.

가치 있는 인생을 위하여 필요했던 수단들이 목적들로 둔갑해 버리고, 모든 적나라한 출세욕과 횡재의 비결이 교육의 목적이 돼 버렸다. 비판적으로 정보를 수집·분석하고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책임 있게 해야 하는 결정들은 어느새 자연스럽게 근시안적인 사적 이익과 편의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기 일쑤다.

다수결을 채택하고 있는 체제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지지한 정책이나 사람에게 전체의 운명을 맡겨야 하는 상황은 불가피하다. 다수의 선택이 과연 옳은지의 여부는 가늠할 수 없되,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선택했으므로 적어도 그만큼은 만족시킬 것이라는 정도의 의미는 가져야 한다. 그런데 다수의 선택을 다수가 후회하게 되는 일이 도대체 어떻게 일어나게 된 것일까.

정보(지식) 수집과 비판과 분석, 그리고 생각을 정리해 가는 과정은 이른바 교육과정이라는 사회적 장치를 통하는 반면, 사실상 그 사람의 거의 모든 생각을 지배하는 가치관은 우리 각자의 인생에 필연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부모와 환경,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주변인들로부터 비롯된다. 우리가 우리의 선택을 후회하게 되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이런 선택은, 결국 이 사회에 광범위하게 형성된 조급한 편의성과 눈앞의 이익에만 길들여진 이율배반 때문은 아닐까. 스스로 선택한 지도자에 대해 불과 몇 달도 안 지나 시니컬하게만 변해 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코로나 이후 맞는 모처럼의 가을이 기대와 달리 착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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