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매콤한 낙지도, 부드러운 치즈도 홀린 ‘동래아들’ [술도락 맛홀릭] <3>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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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양조장 기다림의 '동래아들' 막걸리


양조장 기다림의 조태영 대표가 지난해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대상을 받은 ‘동래아들’ 막걸리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보경 PD 양조장 기다림의 조태영 대표가 지난해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대상을 받은 ‘동래아들’ 막걸리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보경 PD

가가호호 술을 빚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졌던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100년 만에 다시 부활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급된 지역특산주 면허만 1400건에 이르고, 해마다 새로운 양조장과 전통주가 탄생한다.

전통주엔 지역의 특색이 오롯이 담겼다.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술을 빚어, 특산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부산일보>는 ‘술도락 맛홀릭’ 기획시리즈를 통해 부울경의 전통주 양조장을 탐방하며 지역의 맛과 가치를 재조명한다.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등 전통주 전문가도 힘을 보탠다.


일본에서 사케 전문가로 활동한 한국인. 뒤늦게 우리 술에 빠져 고향 부산으로 돌아온 청년. 수많은 시도 끝에 완성한 막걸리로 ‘대상’까지 받았고, 이제는 한국의 양조 문화를 세계에 알리려 한다. 부산의 한 주택가에서 태어난 ‘동래아들’ 이야기이다.

■돌고 돌아, 우리 술에 빠지다

부산 동래구의 한 주택가에 있는 빛바랜 타일 외벽의 3층짜리 건물. 전통주 양조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부산 대표 술로 떠오른 ‘동래아들’ 막걸리가 탄생한 곳이다.

양조장 ‘기다림’ 조태영(41) 대표에게 동래아들은 ‘부캐’(또 다른 캐릭터) 혹은 분신 같은 술이다. 20년 동안 술을 공부해 온 세월의 무게와 경험치, 전문성이 한 병 한 병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갓 불혹을 넘긴 청년 양조인이지만 술 관련 경력은 여느 장인 못지않다. 20대 초반 술을 공부하러 일본으로 건너갔고 바텐더와 소믈리에, 일본 전통주인 사케 전문가로도 활동했다.

“일본에선 바텐더를 굉장히 품격 있는 전문직으로 여겨요. 60대에도 활동하는 바텐더가 있을 정도죠. 사케 전문가 자격증을 따서 현지인을 가르쳤는데, 한국인 강사라 그런지 더 좋아했던 것 같아요.”

부지런히 유럽 와이너리를 오가며 와인 공부도 하는 등 정신없이 술에 빠져 지내던 조 대표에게 우연히 새로운 술이 찾아왔다. 2011년 서울에서 열린 한 전통주 행사에 참석했다가 전통 방식으로 제대로 빚은 우리 술을 맛본 것이다.

“소곡주처럼 올드한 느낌의 술이었는데, 와인 같기도 사케 같기도 한 게 오묘했어요. 뭔가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에 독학으로 우리 술을 빚기 시작했죠.”

맥주·사케·위스키까지 홈브루잉(자가양조)을 하던 그였지만 막걸리 양조는 처음이었다. 숙취가 심한 체질이 외려 도움이 됐다. 정통 발효법으로 막걸리를 빚었더니, 마신 다음 날 전혀 숙취가 없었다. ‘기존 막걸리는 왜 숙취가 심할까’ ‘지레 막걸리를 기피하는 사람들에게 숙취 없는 맛을 보여 줄 방법은 없을까’ 물음은 꼬리를 물었고, 결국 해결책을 찾아 창업을 결심했다.

부산 동래구 사직동에 있는 양조장 기다림의 건물. ‘제이케이크래프트’ 법인 간판이 작게 걸려 있을 뿐, 전혀 양조장 같지 않다. 부산 동래구 사직동에 있는 양조장 기다림의 건물. ‘제이케이크래프트’ 법인 간판이 작게 걸려 있을 뿐, 전혀 양조장 같지 않다.
양조장 기다림의 3층에 있는 사무실. 오래된 주택을 그대로 사무 공간으로 쓰고 있다. 양조장 기다림의 3층에 있는 사무실. 오래된 주택을 그대로 사무 공간으로 쓰고 있다.

■옥동자 ‘동래아들’이 탄생하기까지

2011년 한국으로 돌아온 조 대표는 우리 술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관련 지식과 경험이 무르익었을 무렵 동래구 사직동 주택가에 1인 스타트업 ‘제이케이크래프트(JKCRAFT)’를 차렸다. 양조장을 제조 공장처럼 운영하기 싫어 선택한 장소였다.

“일본에선 300~400년 된 양조장이 집 근처에 있어요. 우리나라도 옛날엔 ‘가양주’ 문화가 있었잖아요. 양조를 제조가 아닌 문화로 보고 색다른 공간에서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처음 가보는 길인 만큼 걸림돌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지역특산주 면허로는 부산 1호인 데다, 주택가에 양조장이 들어선 전례가 없다 보니 행정기관의 허가를 받기까지 무려 1년이 걸렸다.

긴 기다림 끝에 2015년 양조 허가를 받은 제이케이크래프트는 이듬해 첫 번째 술 ‘기다림34’를 선보였다. 발효부터 숙성까지 100일이나 걸리고, 가격도 1만 2000원으로 당시로선 선뜻 지갑을 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맛을 보고 만족스러워하다가도 가격을 얘기하면 다들 손사래를 쳤어요. 초창기엔 국내 영업이 힘들어 술을 메고 일본으로 다녀야 했죠. 후쿠오카 일식당 등 20여 곳에 ‘라이스 와인(Rice Wine)’이라 홍보하며 판매를 했어요.”

‘기다려온’이란 브랜드로 비누·샴푸·트리트먼트 등 발효 제품도 출시하며 사업을 확장할 무렵, 조 대표는 안주하지 않고 또 한 번 도전에 나섰다. ‘기다림34’ 생산을 전면 중단하고 좀 더 대중적인 술 개발에 나선 것이다.

기다림에 담긴 초심과 철학을 그대로 가져와 2019년 양조장 ‘기다림’을 만들었고, 1년 뒤 첫 작품 ’동래아들’ 막걸리를 선보였다. “기다림 막걸리가 와인을 만들 듯 제가 제일 잘하는 공법으로 빚었다면, 동래아들은 음료수처럼 만들었어요. 누구든지 편하게 마실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10평 정도인 제조실에서 직원들이 고두밥을 펴서 식히고 있다. 양조장 기다림 제공 10평 정도인 제조실에서 직원들이 고두밥을 펴서 식히고 있다. 양조장 기다림 제공
지하 1층 발효실의 발효조 안에서 술이 익어가고 있다. 양조장 기다림 제공 지하 1층 발효실의 발효조 안에서 술이 익어가고 있다. 양조장 기다림 제공

■호불호 없는 음료수처럼 빚은 술

부산 강서구 해포도 쌀로 빚은 동래아들 막걸리는 하얀 빛깔부터 시선을 끈다. 병을 잘 흔들어 투명한 잔에 따르면 술인지 우유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다. 맛 또한 막걸리스럽지 않다. 산미가 거의 없고, 목 넘김은 우유나 요구르트처럼 부드럽다. 하얀 바탕에 파스텔톤 하늘색으로 디자인한 술병 라벨과 딱 어울리는 이미지의 맛이다.

막걸리란 술 특유의 개성을 옅게 해, 외려 개성 있는 막걸리로 거듭난 느낌. 날카로운 산미를 부드럽게 다듬기 위해 일반적으로 잘 쓰지 않는 범주의 누룩과 미생물을 사용했다는 게 조 대표의 설명이다. “전통주를 빚을 때 누룩을 바꾸는 건, 마치 요리사가 쓰던 칼을 바꾸는 것과 같아요. 직원들도 굉장히 의아해했죠.”

사실, 동래아들 막걸리는 2020년 말 출시 이후 8차례 맛의 변화가 있었다. 조 대표는 직원들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미세한 변화를 주면서 지금의 동래아들을 완성했다. 꾸준히 작은 변화를 시도한 이유는 맛의 균질함, 즉 품질 때문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양조 방식은 불안정한 측면이 있어요. 10여 년 전 막걸리 세계화 붐이 일었다가 실패한 이유도 품질 때문이었어요. 외국인들에게 할머니 손맛을 얘기하면 안 통하거든요. 수제의 감성을 가지면서도 발효는 과학적이어야 합니다.”

조 대표는 안정적인 발효를 위해 밑술 단계에서 젖산을 활용하는 기초 작업을 추가했다. 덕분에 밑술에 덧술을 더한 이양주이면서도, 세네 번 빚은 삼양주·사양주 같은 깊이감이 있다.

균질한 맛을 향한 집념은 결국 우리 술 전문가들의 인정을 받았다. 지난해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대기업 국순당과 함께 ‘대상’(탁주-생막걸리 부문)의 영예를 안았다.

조 대표는 더 높은 단계의 품질 안정화를 위해 스마트 팩토리처럼 양조 공정을 시스템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같은 수프로 끓이면 똑같은 맛이 나는 라면처럼,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빚어 똑같은 술맛을 낼 수 있는 공정을 개발해 양조를 업으로 하려는 이들에게 보급할 계획이다.

조 대표의 더 큰 꿈은 우리나라 양조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일이다. 그 첫걸음으로 부산지역 대표 맛집 중 하나인 ‘원조 안경희 개미집’과 손을 잡았다. 양조장과 음식을 결합한 커뮤니티 공간을 상반기 중 부산에 선보이고, 하반기엔 일본 오사카에 2호점을 열 예정이다.

동래아들 막걸리. 하얀 빛깔이 우유나 요구르트처럼 보인다. 동래아들 막걸리. 하얀 빛깔이 우유나 요구르트처럼 보인다.
비누와 샴푸, 흑채 등 '기다려온' 브랜드에서 출시한 각종 발효 제품들. 비누와 샴푸, 흑채 등 '기다려온' 브랜드에서 출시한 각종 발효 제품들.

■부드러움과 매콤함, 극과 극의 조화

우유와 치즈가 만나면 느끼할 수 있지만, 우유 같은 동래아들 막걸리와 치즈는 멋진 마리아주(궁합)를 이룬다. 부드러움과 부드러움이 만나 한층 부드럽게 어우러지는 느낌이다. 치즈가 듬뿍 들어간 피자류도 동래아들과 곁들이기에 좋다.

동래아들의 부드러움은 정반대로 매운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50년 역사의 ‘원조 안경희 개미집’과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표 메뉴인 낙곱새는 신선한 재료와 특유의 매콤한 양념으로 입맛을 돋운다. 낙지는 한국산과 가장 맛이 비슷한 중국산 중에서도 최고 등급을 매달 샘플 테스트를 통해 엄선한다. 큼지막한 한우곱창은 당일 도축장에서 공수해 오는데, 곱창에 반해 찾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현재 동래아들 막걸리는 온라인과 메가마트 동래·남천점, 보틀숍과 일부 주점에서 판매하며 개미집 같은 일반 식당에선 맛볼 수 없다. 동래아들과 개미집이 합작하는 커뮤니티 공간이 그래서 더 기다려진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원조 안경희 개미집의 대표 메뉴인 낙곱새. 낙지와 한우곱창, 각종 채소 등 신선한 재료가 어우러진 부산의 매운맛이 동래아들 막걸리와 잘 어울린다. 원조 안경희 개미집의 대표 메뉴인 낙곱새. 낙지와 한우곱창, 각종 채소 등 신선한 재료가 어우러진 부산의 매운맛이 동래아들 막걸리와 잘 어울린다.

[기자들의 시음평]

▶김희돈 스포츠라이프부 부장

“요구르트 약간 섞은 우유맛. 막걸리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다.”

▶남형욱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달콤한데 끝맛은 상큼. 치즈와 함께 마시니 서로 잘 섞인다.”

▶이상배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탄산이 없어 부드러움에 부드러움을 더한다. 와인향이 난다.”

▶이지민 디지털미디어부 에디터

“묵직하고 무거운 느낌인데, 달달해서 술술 잘 넘어간다.”

[전문가의 맛 코멘트]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초창기 동래아들이 정겨운 동네 토박이 같은 느낌이라면 지금의 동래아들은 좀 더 대중성 있게, 마시기 편하면서도 산뜻함이 더해졌다. 곡물의 질감도 적당히 느껴지면서 담백하며, 밀키한 느낌에 요구르트의 새콤함과 싱그러움이 더해져 맛있는 막걸리가 탄생한 느낌. 치즈 무스 케이크, 화이트 롤케이크, 생크림 케이크 등과 함께 맛보면 완벽한 디저트 페어링이 완성될 것 같다.”


-제품명 : 동래아들 막걸리

-양조장 : 기다림(부산 동래구)

-내용량 : 750mL

-알코올 : 6.0%

-원재료 : 정제수·쌀·누룩·젖산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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