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선으로] 다양한 가족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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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숙 동아대 젠더·어펙트연구소 조교수

날은 덥고 모처럼 찾아온 연휴에 하던 일을 접고 영화를 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이란 일본 영화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 영화는 제목처럼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영화 속 가족은 통상 우리가 지칭하는 가족과 사뭇 다르다. 가짜 독거노인, 가정폭력을 일삼는 남편을 죽인 아내와 그의 내연남, 부모의 학대로 집을 떠나온 아이, 거리의 소년 등. 생면부지의 남남들이 가족을 이루고 산다. 그런데 이상하다. 어떤 가족보다 더 진한 가족애를 나눈다. ‘금쪽 상담소’에서 우리가 익히 본 그 징글징글한 가족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주인공의 대사는 의미심장하다. “이건 비밀인데 우린 가족이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이야말로 ‘진짜 가족’이라고 속삭이는 것이다. 가족을 이루는 데 혈연이나 혼인 따위가 무어 그리 중요하겠냐는 메시지를 던지며 이 영화는 그 소박한 제목과 달리 21세기 들어 급변하고 있는 가족의 현실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혼인율의 하락과 저출산, 이혼율의 증가, 노령화, 싱글화…. 비단 영화가 아니더라도 가족의 변화와 그로 인한 사회문제는 이미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주제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변화를 단순히 개인적 선택의 결과라 치부하면 오산이다. 〈가족난민〉의 저자 야마다 마사히로는 현재 가족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신자유주의적 경제 및 사회구조에서 기인한다고 진단한다. 결혼이나 출산을 원해도 쉽게 이를 실행할 수 없는 구조로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삼포시대 말이다. 그 결과 가족에 기댈 수 없는 이들은 점점 더 고독해지고, 외로움과 고독사는 큰 사회문제가 되어 간다. 오죽하면 영국과 일본에서 외로움과 고독 문제를 다루는 외로움부 장관, 고독·고립 장관을 임명했겠나.

결혼이나 혈연에 기댈 수 없다면 결국 대안은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어려울 때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들끼리 가족을 이룰 수밖에. 그런데, 이게 또 쉽지 않다. 법이라는 암초에 걸리고 만다. 이성애 부부와 자녀라는 소위 ‘정상가족’ 모델에 기초한 법과 사회보장제도는 혈연과 결혼에 기초하지 않은 가족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고 차별한다. 건강보험, 대출, 주택마련 등 실생활에서 차별은 다양하고 촘촘하다. 이 때문에 혈연이나 결혼이 아니더라도 생계를 공유하고 주거를 함께 하고 있으면 차별하지 말고 다양한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보장하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4월 말 국회에서 발의된 생활동반자법은 그 일환이다. 고독사가 늘어나 사회문제가 되는 마당에 혈연과 혼인으로 엮이지 않았어도 사랑하는 이들끼리 가족을 이루어 외로움을 덜어 내겠다고 하는데, 법이 이를 제약해서야 될까. 우리 사회는 외로움 장관을 만들기 전에 법부터 현실에 맞게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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