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백민의 기후 인사이트] 위기의 인류, 너무 늦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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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전 지구 평균온도 관측 사상 최고
치명적 극한 날씨 현상 더 심해져
위기에도 골든 타임은 남아 있어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 시대는 끝났다. ‘끓는 지구’(global boiling)의 시대가 시작됐다.”(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올여름 길게 이어진 장마와 폭우, 태풍 소식에 우리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동안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지구촌 곳곳의 기온이 연일 40도를 넘어서면서 많은 사람들이 전례 없는 폭염과 산불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해로 기록될 것이 확실해지고 있는 올해, 가장 충격적인 건 기록을 깨고 솟구치고 있는 전 지구 평균온도 그래프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 이해될 정도다. 지구의 전반적인 온도 수준을 대표하는 전 지구 평균온도는 7월 초순에 17.2도를 기록하며 2016년 기록인 16.9도를 훌쩍 뛰어넘었다. 기상 관측 사상 압도적 1위임은 물론이고 최근 10만 년 고기후 기록을 살펴봐도 전례 없는 수준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수년 내로 2015년 파리에서 각국 정상들이 약속한 지구 온도 최후 저지선인 1.5도보다 상승해 15.3도를 훌쩍 뛰어넘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유엔 산하 세계기상기구(WMO) 역시 “향후 5년 이내 연평균 기온이 일시적으로 산업화 이전보다 1.5도를 초과할 가능성이 50%로 증가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왜 이렇게 지구가 뜨거워진 걸까. 이 모든 게 다 우리 인간 탓일까. 필자도 상당 부분 동의하지만 올해는 모든 것을 인간 탓으로 돌리기엔 조금 과한 듯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적어도 올해의 극단적 온도 상승은 자연과 인간의 합작품이라고 평가하는 게 적절해 보인다.

근래 태평양에 무려 3년간이나 지속되는 라니냐가 발생했다. 라니냐가 발생하면 서태평양을 제외한 적도 태평양 전체가 전반적으로 차가워지면서 대기의 남아도는 열이 차가운 바다로 축적된다. 이 축적된 열은 이어지는 엘니뇨 때 다시 대기로 방출된다. 엘니뇨 시기에 지구상에 이상기후 현상이 특별히 심각해지는 이유가 바로 바다로부터 공급된 이 열기 때문이다. 올해 초부터 엘니뇨가 시작되면서 축적돼 있던 열이 한꺼번에 빠져나오게 되었고, 이로 인해 극단적인 고온현상이 도처에서 일어났다.

또 하나 올해 지구 가열의 중요 요인으로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태양 활동의 증가를 꼽을 수 있다. 한마디로 태양의 세기가 급격히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올해 초 급격히 늘어나는 태양 흑점의 개수로 확인된다. 태양빛이 강해지니 당연히 지구 온도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사실 엘니뇨나 태양 활동 같은 것이 얼마나 지구 온도를 상승하게 했는지 정확하게 아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중요한 건 이 요인들은 지구온난화와는 무관한 자연적인 현상이란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자연적인 요인들을 고려해 볼 때 올해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극단적인 날씨의 원인을 무턱대고 모두 우리 탓으로 돌리기엔 과한 측면이 있는 셈이다. 조금은 다행스럽다고 할 수 있겠는데, 다만 분명한 것은 지금의 지구 상태가 자연이 조금만 심술을 부려도 인류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극한 날씨들을 언제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상태이며, 그런 현상이 점점 더 확실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압도적인 열기는 북미 서부, 남유럽, 아프리카 북부, 남중국, 일본 수도권 인근, 중동을 휩쓸며 이전 폭염 기록들을 모조리 갈아 치우고 있다. 언론에서는 “이대로 가다가는 지구가 곧 멸망할 것”이라는 자극적인 기사들을 생산해 내느라 바쁘다. 멸망론이 무서운 것은 사람들을 회의감에 빠져들게 만들고, 그로 인한 무기력과 자괴감에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골든 타임에 아무런 대응조차 못 하게 만드는 데 있다.

이것만은 분명히 해 두자. 전인미답의 수준까지 지구 온도가 치솟은 상황은 누가 봐도 심각하지만 아직 우리의 미래에 확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 오늘날의 기후과학은 이대로 살아가다가는 위험이 더 심화할 것임을 분명히 경고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앞에 지구 멸망, 인류 멸종이 기다리고 있다고 확정적으로 얘기한 적은 없다. 아직 우리가 하기에 달렸고, 골든 타임은 남아 있다.

지구 온도 최후 저지선인 1.5도에도 너무 얽매일 필요 없다. 수년 내로 1.5도를 넘기는 건 이제 기정사실에 가까워졌지만, 이는 정치적 의사 결정으로부터 도출된 숫자일 뿐, 이를 넘긴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날씨는 늘 인간에게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지구가 달아오르기 전인 수백 혹은 수천 년 전에도 말이다. 극단적인 날씨에 너무 겁먹지 말고, 점점 더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 기후위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차분히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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