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준혁 ‘더리터’ 대표 “커피 프랜차이즈와 야구, 성과 나눈다는 것이 닮은 점”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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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단 프런트 경력 살려 경영인 변신
커피, 야구와 함께 부산 상징 브랜드
“본사·점주 상생하는 모델 만들 것”

‘천생 야구인’이라 불리던 롯데맨이 있었다. 그룹 공채로 입사해 지망 계열사 1, 2순위를 모두 롯데 자이언츠라고 적을 만큼 야구를 좋아했다. 그라운드에서 선수들과 먹고 자며 마케팅부터 국제 스카우트, 선수단 관리, 구단 인사 관리까지 전천후로 달려왔다.

그랬던 그 야구인이 홀연 사직야구장과 작별을 고하더니, 올해 부산을 대표하는 커피 프랜차이즈 신임 대표로 변신했다. 16년간 프로야구단 프런트 생활을 마감하고 프랜차이즈 전문 경영인이 돼 돌아온 박준혁(44) ‘더리터’ 대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박 대표는 인생의 무대를 야구에서 커피로 바꾼 이유로 ‘더 큰 자유’를 꼽았다. 그는 “야구단 프런트 생활을 하면서 빠르게 승진은 했지만 더 자유롭게, 더 폭넓게 영향력을 쌓아가고 싶다는 욕심이 간절해졌다”며 “그즈음 더리터 창업주인 한정수 회장을 만나 ‘당신 것은 언제라도 할 수 있지만 지금은 돈의 흐름에 대해서, 사업의 핵심에 대해서 배울 때’라는 말을 듣고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경영의 관점에서 야구와 커피는 전혀 다른 직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야구도 우승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리고 매년 개인 성적에 따라 연봉을 책정한다”며 “프랜차이즈업도 동기 부여를 통해 업무에 집중하고 그렇게 발생한 성과를 본사와 점주가 나눠 갖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초보 경영인이지만 바쁜 와중에도 종종 사직야구장을 찾아 관중석에서 친정 팀의 경기를 보고 온다. 치기 어린 대학생을 어엿한 사회인으로 키워준 롯데그룹과 구단이 못내 고맙기도 하고, 한 발 떨어진 자리에서 보는 야구에서 이런저런 경영의 노하우를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말은 야구장을 떠나고도 가슴에 품고 산다고 했다. 박 대표는 “갑작스럽게 덩치가 커진 커피 업계는 회사의 성장을 구성원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팀이 없으면 선수가 없고 회사가 없으면 직원도 없다는 사실을 직원에게 늘 강조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몇몇 직원의 역량에 회사 성장이 좌우되는 게 아니라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팀플레이를 할 수 있게 하고 그 아웃풋에 대해 높은 몸값을 제시하는 식으로 회사 운영 방식을 바꿔나가는 중이다. 박 대표는 “주전 선수가 될 수 있는 직원을 선발하고, 그에게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며, 언제든 그를 대체할 수 있는 직원을 키우는 일은 프로야구 선수단에서 ‘뎁스’를 두텁게 하는 일과 일맥상통한다”고 주장했다.

커피는 이제 야구와 함께 부산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이미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부산시와 부산 커피 업계의 꾸준한 도시 브랜드 마케팅 덕분이다.

부산대 앞에서 1리터 커피로 돌풍을 일으킨 더리터 역시도 2015년 창업 이후 어느덧 600호점을 눈앞에 둔 전국구 프랜차이즈가 됐다. 그렇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본사를 부산에 둔 채 내실을 다지는 데 한창이다. 부산대 1호점을 재오픈한 것도 초심을 유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다만, 한 가지 박 대표가 아쉬워하는 건 코로나 엔데믹 이후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부산의 경기 침체다. 그는 “수십억 원대의 FA(자유계약선수제도) 대박을 맞은 선수들을 키워내고 곁에서 지켜봐 왔지만 정작 야구장 밖을 나와보니 사회에서는 불경기로 취업이 어려워지며 생계형 창업자가 폭증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그래서 박 대표는 더리터 운영 목표를 회사의 수익과 고객의 이익이 충돌했을 때 고객 쪽으로 잡았다. 그는 “오늘도 수많은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만들어지고 사라지면서 점주의 삶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며 “‘더리터’는 무분별한 점포 확장보다는 본사와 점주가 상생할 수 있는 모델이 가능하다는 걸 부산에서 한번 보여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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