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선으로] 진정한 한일 연대를 꿈꾸며
소현숙 동아대 젠더·어펙트연구소 조교수
“일본사람은 다 귀신이라고 생각했어. 근데 왜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 주는 거야?” ‘관부재판’ 당시 원고로 참여했던 ‘위안부’ 피해자 박두리 할머니가 자신을 환대한 일본 시민들에게 했던 말이다. 1992년 일본 정부에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소송을 제기했을 때, 일본 시민들은 원고들을 초청해 직접 만든 음식으로 대접하며 환영회를 개최했다. 그 자리에서 감격한 박두리 할머니는 이 같은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후 일본 시민들은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을 결성하고 재판이 지속된 수년간 회비와 후원금을 걷어 원고들의 교통비와 체류비, 〈관부재판뉴스〉 발행 비용을 제공했다.
역사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일본 시민들의 연대는, 그러나 한국 사회에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다. 2018년 개봉한 관부재판을 다룬 영화 ‘허스토리’마저도 이에 무관심했다. 아니 오히려 영화는 원고들을 향해 일본인들이 돌을 던지고, 법원에 우익들이 몰려와 야유를 퍼붓고, 머물던 여관에서 차별받으며 쫓겨나는 장면을 넣어 일본 사회를 혐한으로 가득 찬 분위기로 그려 냈다.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을 이끈 하나후사 도시오는 재판 당시 영화에 묘사된 그런 일들은 없었기에 이 영화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는 재판이 열리던 당시까지만 해도 일본 시민들은 피해자에 대한 전후 보상에 호의적이었고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에 자발적으로 나서는 분위기였다고 회고한다. 현실과는 사뭇 다른 영화 장면은 아마도 감독 자신의 편견 때문이라기보다는 한일 간의 문제를 ‘반일’과 민족주의의 프레임 속에서 손쉽게 소비해 온 한국사회의 분위기 탓일 테다. 언제나 갈등보다 연대가 어렵지 않은가.
요즘 오염수 방류로 시끄럽다. 장을 보지만 더는 수산물로 눈길이 가지 않는다. 한일의 ‘미래지향적 관계’를 지향해 온 정부는 오염수 방류에 대한 비판을 괴담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친일파 정부’라는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정부는 일본의 오염수 방류정책에 동조함으로써 새로운 한일 관계를 만들어가려는 모양이다. 그러나 바다 오염을 방조하기 위한 수사로 사용되는 한일 연대가 과연 진정한 연대일까. 정의와 평화와 안전이 부재한 한일 정부 간의 연대는 양국 국민은 물론 전 지구의 생명을 위험으로 밀어 넣고 있다. 연대의 목표가 민주주의와 평화, 안전이 아닐 때 그것은 다만 정치적 야합일 뿐이다. 양국 정부가 이런 야합으로 일관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환경 문제는 일국적 차원에서 해결하거나 대응할 수 없다. 인류 역사 어느 시대보다도 국경을 넘어선 진정한 시민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바다의 오염이라는 재앙에 맞서 한일 시민의 연대가 다시 한번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