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워버린 평범한 이들의 아름다운 헌신 이야기 쓰고 싶었다” [제40회 요산김정한문학상]
수상작 ‘범도’ 방현석 소설가
홍범도 장군과 항일무장투쟁사
정직한 문법 ‘무한헌신’ 그려
“역사는 엄중, 진실은 영원하다”
올해 40회 요산김정한문학상은 뜨겁다. 수상작으로 홍범도 장군과 항일무장투쟁사를 그린 방현석 소설가의 장편 <범도>을 택했다. ‘사람답게 살아가라’는 요산의 가르침을 일깨워 역사와 시대 감각에 근거한 것이다
-그간 신동엽문학상 오영수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오랜만의 문학상 수상으로 안다. 제40회 요산김정한문학상 수상에 대한 각별한 소감을 부탁드린다.
“고등학교 시절에 김정한 선생님의 ‘모래톱 이야기’을 읽었던 기억이 아련하다. 요산문학상을 만들고 이어온 분들의 정신과, 그분들이 지닌 김정한 선생님을 향한 순정한 경의를 알고 있다. 흔들림 없이 김정한 선생님의 문학정신을 오롯이 지켜온 부산일보사의 치하와 심사위원님들의 각별한 격려에 깊이 감사드린다. 새삼 김정한 선생님의 문학 앞에서 옷깃을 여미며 자세를 가다듬는다.”
-이 소설은 13년 전부터 준비해온 것이라고 했다. 꼬박 3년을 썼다고 했다. 그리고 1300쪽 2권 분량의 책으로 출간된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원고를 썼다고 들었다. 오랜 시간 염두에 뒀다가 몇 년을 매달려 썼고, 엄청난 분량을 쓴 노고를 들이게 된 핵심적 동인은 과연 무엇이었나.
“처음에는 조국을 잃고 만주를 누비며 살았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중·단편 분량으로 써보려고 했다. 13년 전이었다. 답사와 취재를 하면서 너무나 많은 대단한 역사적 인물과 매혹적인 소설의 주인공들을 만나면서 충격을 받았다.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투쟁은 4년이었지만 우리의 항일무장투쟁은 40년이었다. 역사가 지워버리고 우리 문학이 외면해온 눈물겹게 아름다웠던 이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어느 한 영웅의 서사가 아닌 소설로 쓴 항일무장투쟁사를 쓰고 싶었다.”
-소설 제목이 ‘홍범도’가 아니라 ‘범도’다. ‘홍’자를 빼고 특별하게 ‘범도’라고 이름 붙인 이유가 있나. 소설에서는 ‘범포수(범포)’ ‘홍범’이란 이름이 나오고, 뭇 포수들을 부르는 방식을 따르면 ‘홍포’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소설의 주인공이 처음부터 홍범도 장군은 아니었다. 10년 동안 취재, 조사하면서 여러 번 주인공을 바꿔가며 이 소설을 쓰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했다. 내가 선택했던 다른 주인공들도 그 한 사람만 놓고 보면 모두 대단한 역사적 인물이었고, 소설의 주인공으로 손색없는 매혹적인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항일무장투쟁사를 관통하면서 항일무장투쟁 전선에 뛰어들었던 사람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총체적으로 보여줄 수 없었다. 항일무장투쟁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남긴 비범한 이야기다. 홍범도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출발한 지극히 평범했던 사람이었지만 가장 오래 싸우고 가장 크게 이긴 비범한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범포, 홍범, 모두 평범한 사람들과 거리를 둔 이름들이다. 범도는 다른 어떤 서술도 거절하는 인간 홍범도의 이름 ‘범도’이고 평범한 사람들이 걸어갔던 길로서 ‘범도’다.”
-‘범도’라고 줄여서 표현한 것처럼 이 장편의 서술방식은 생략을 선호하는, 다르게 말하자면 풍부하고 입체적이지 않은 것도 같다. 작가가 독자를 끌어당기는 방식이 아니라 절제하는 표현을 통해 독자에게 맡기는 서술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 같다. 대체적으로 심심하다는 말인데, 그게 이 작품의 특징이고 아쉬움이기도 한 것 같다. 이런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최종 원고 5300장에서 책을 내며 1200장을 들어냈다. 도저히 빼낼 수 없는 부분만 남기려고 했다. 불필요한 치장이 입체성은 아니다. 잔기술을 쓰지 않으려고 했다. 홍범도와 <범도>의 사람들은 잔기술을 쓰는 사람들이 아니다. 스스로 미화하고 과장하며 자랑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헌신은 무한했으나 바란 대가는 아무것도 없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정직한 문법이 필요했다. 나는 소설의 스승인 김동리, 신상웅 선생에게 재능 없는 작가들이 기예에 매달린다고 배웠다.”
-같은 맥락의 질문일 수 있는데 많은 인물들이 그려져 있으나 인물들의 갈등, 내면이 구체적이고 풍부하게 그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떤 말을 할 수 있나.
“인물들의 갈등과 내면이 풍부하지 않다는 건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어떤 인물이 그런가. 나는 이 소설을 쓰면서 그 어떤 인물도 상투적인 마네킹으로 세워두지 않으려고 했다. 심지어 적, 친일파, 밀정조차도 심장이 뜨겁게 뛰는 인간으로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친일파인 박상준과 밀정 엄인섭의 내면이 단순하고 상투적인가. 박상준의 얘기를 들으면서 고개가 끄덕여지고, 자기도 부일 반역자가 될 것 같았고, 엄인섭이란 밀정의 선택과 행적이 오래 눈에 밟힌다고 하는 독자들은 많았다. 다만 이름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한 번 지나가는 인물들에게 굳이 이름을 부여할 필요가 있겠느냐며 생략하거나 그냥 ‘그’란 대명사로 지나가자고 출판사에서도 요청했다. 조금 줄여주긴 했지만 많이 줄이진 못했다. 범도에 나오는 인물들 대부분은 실재했던 사람들이다. 항일무장투쟁사의 자료들, 증언들 속에는 분명히 나오는 인물이 수없이 많다. 그렇지만 우리의 역사책 어디에서도 단 한 번 불러주지 않은 그 사람들의 이름을 내 소설 속에서라도 한 번은 불러주고 싶었다. 내 소설 속에라도 새겨두고 싶었다.”
-작가의 말에 “나는 홍범도를 통해 한 시대의 가치가 어떻게 새롭게 출현하고, 그 가치가 어떻게 낡은 가치를 돌파하면서 자신의 길을 가는지 알고 싶었다”고 적었다. 새롭게 출현하는 한 시대의 새로운 가치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동학 얘기도 나오고, 반상의 차별, 남녀의 구분이 없는 시대로 나아가는 것들이 읽히기도 하는데 그것들을 뭉뚱그려 표현하고 싶은 ‘작가의 언어’ ‘작가의 표현’은 과연 무엇인가.
“홍범도 장군이 봉오동 전투에 나서면서 부대원들에게 한 연설을 통해 나는 그 대답을 이렇게 적어두었다. ‘우리는 부패한 나라 조선도 아니고, 허울뿐이었던 대한제국도 아닌 대한민국이 소집한 첫 군대에 발을 들여놓은 첫 군인들이오. 이 한마디를 모두 마지막 숨이 멎는 순간까지 명심해야 하오.’ 그가 소집에 응한 대한민국은 계급, 신분제 사회였던 봉건시대, 침략과 억압, 불의를 넘어서는 더 나은 세상이었다. 오직 사람을 사람으로 대했던 ‘김수협’과 같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였다. 우리는 홍범도와 <범도>의 사람들이 남긴 나라에 살고 있고, 그들이 꿈꾸었던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소설의 몇 퍼센트 상상력 내지는 허구인가. 김천민란과 울산민란은 연대가 좀 다른 것 같더라. 그리고 홍범도가 평양 군영의 나팔수로 들어갔다는 것은 나오는데 한양의 친군영에 근무했다는 것은 허구 같다. 인물의 경우 백무아, 진포, 남창일 같은 인물은 엇비슷한 모델이 있는 인물인가? 그리고 등장인물 중 특히 마음이 더 가는 인물이 있다면.
“소설 속에서는 모두 사실이다. 서사적 개연성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독자들이 그 역사의 시간을 살아볼 수 있도록 쓰려고 애썼다. 비중이 큰 인물의 하나인 백무아의 모델은 1920년 광복군 총영에서 파견한 국내폭파결사대 제2지대 대원 안경신과 미군정청 정보요원으로 일했던 현앨리스다. 애정을 가지고 공들여 쓴 인물의 하나인 차이경도 동승 출신으로 갑신정변의 과정에서 희생된 실제 인물에서 가져왔다.”
-작가는 홍범도를 “헌신은 무한했으나 바란 대가는 전무했다”고 너무 이상적으로 그린 것은 아닌가. 그런 인물이 과연 있을까. 그 시대가 홍범도 같은 인물을 만들었던 것인가, 아니면 홍범도 같은 인물은 어느 시대에라도 있는 인물인가. 이와 관련한 질문으로 작가는 인간을 얼마나 신뢰하는가.
“홍범도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는 그가 주인공의 자리를 양보할 줄 아는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학습으로 배운 윤리의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포수로 살면서 체득한 ‘범포수의 철학’에 배인 것이다. <범도>에서 나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여우에게는 여우의 몫이 있고, 늑대에게는 늑대의 몫이 있고, 범에게는 범의 몫이 있듯이 포수에게는 포수의 몫이 있다.’ 포수에게는 포수의 몫이 있고, 그에게는 그의 몫이 있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포수의 몫 이상을 탐하지 않고, 산에서 죽어 자신이 사냥했던 짐승들의 먹이가 되는 것이 공평하다고 여겼던 사부인 신포수의 삶과 죽음에 대한 확고한 ‘포수의 철학’을 물려받은 홍범도였다.”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함경도 지방의 의병 투쟁이 아주 새롭게 다가왔다. 일제의 ‘남한 대토벌 작전’이라고 해서 전라도 의병에 대한 초토화 작전을 들은 바 있는데 함경도 지방 또한 전라도 이상의 의병 투쟁이 뜨거운 곳이라는 걸 알게 됐다. 부연할 점은.
“함경도는 조선왕조로부터 가장 소외된 지역의 하나였다. 대신 산악이 험준한 지역이라 포수들이 가장 많고 유능했다. 러시아와 교류가 많아 중남부 지역보다 신식 총기도 가장 많았으며, 지배 이데올로기로부터 가장 자유롭기도 했다.”
-독립투쟁은 우리 근대 만들기의 중요한 줄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 근대 만들기는 연해주와 만주에 걸쳐 있었던바, 요컨대 범 한반도인들의 옛 강토에 널따랗게 걸쳐 있었다는 것을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더욱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만주와 연해주에 걸쳐 있었던 독립투쟁과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삶을 우리가 너무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홍범도 장군이 수위로 일했던 고려극장의 존재를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한다. 1932년 연해주에서 만들어진 고려극장의 역사는 90년이 넘는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한민족 극단 중에 가장 오래된 극단이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국내에서 한글 사용이 전면 금지되었을 때도 고려인들은 한글을 사용하며 한국문화를 지켜냈다. 그들의 역사성을 간과해서 안 된다.”
-올해 홍범도 흉상 철거에 대한 구태의연한 논란이 있었다. 이런 사태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역사는 엄중하고 진실은 영원하다. 역사적 진실은 누가 원한다고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엄정한 사실 확인과 진지한 검토과정을 거쳐서만 재평가할 수 있다. 홍범도 장군이 말년에 수위로 일했던 카자흐스탄 고려극장 극장장을 지낸 김겐나지와 카자흐스탄 공훈예술가인 문공자 선생 부부를 이달 초에 만났다. 홍범도 장군 흉상철거 시도를 바라보는 그들의 심경을 물었을 때 문공자 선생은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되물었다. ‘홍범도 장군은 애국자이지 않습니까. 일본과 싸워 이기지 않았습니까. 다른 무슨 말이 더 필요합니까?’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하려면 이 반문에 답할 충분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울산 출신이다. 부산과 가까운데 부산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있다면.
“삼촌을 비롯한 친척들이 부산에 살아 어린 시절에 가끔 부산에 왔다. 그때만 해도 울산은 그렇게 큰 도시가 아니었고 부산은 어마어마한 도시였다. 동래 온천장이 아련한 기억으로 뇌리에 남아 있다. 지금은 고향 친구들이 여럿 살아서 가끔 부산에 온다. 부산은 여전히 내게 어마어마하게 큰 도시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