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향가·삼국유사는 ‘토풍’의 문학적 성과물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한국 고전문학사 강의/박희병

단군신화부터 김소월까지 문학사
중화주의 ‘화풍’ 신라 말 이후 위세
주체성 강조 ‘토풍’과의 길항 분석

여성·경계인·중하층 계급에 관심
고전문학 거대한 뿌리 들여다보기

“한국고전문학은 내가 내 땅에 박는, 감히 상상도 못할 정도로 거대한 뿌리다.” 사진은 천연기념물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밑 둥치 모습. 한국관광공사 제공 “한국고전문학은 내가 내 땅에 박는, 감히 상상도 못할 정도로 거대한 뿌리다.” 사진은 천연기념물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밑 둥치 모습. 한국관광공사 제공

단군신화에서 김소월까지 한국문학사를 전 3권으로 통찰한 박희병 서울대 명예교수의 <한국고전문학사 강의>는 술술 읽히나 단순한 문학사가 아니다.

시사점이 상당하다. 먼저 토풍과 화풍의 길항은 현재적 문제다. 반도라는 문명의 길목에 자리 잡은 한반도 역사의 숙제 같은 것이다. 우리 주체성을 강조한 것이 토풍이고, 중화주의에 물든 것이 화풍이다. 화풍은 현재의 ‘미국풍’으로 연결할 때 바로 지금의 문제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가 단순한 건 아니다. 동아시아적 보편성을 공유하되 자국의 주체성을 지녀야 한다고 할 때 화풍을 반드시 배척해야 할 것도 아니고, 반대로 토풍만 고집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화풍은 통일신라 말경에 현저해졌으며 고려시대에는 부침을 겪으면서 전반적으로 강해졌다. 또 조선시대에 와서도 후대로 갈수록 그 양상이 심화해 가는데 17세기 이후에는 대단히 막강해져 교조적 이념처럼 됐다. 명·청 교체기에 집권한 서인 노론 세력은 청을 배척하고 명을 사대하는 중화주의와 화이론을 취했다는 것이다. 물론 중간중간에 이의를 제기한 인물은 있었으나 대체로 화풍, 중화주의는 신라 말 이후 조선 후기까지 지속적으로 위세를 떨쳤다는 것이다.

비로소 18세기 후반에 화풍을 이론적으로 논파한 사람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홍대용은 만년의 사상적 문학 작품인 <의산문답>을 통해 중화주의를 논파하는 작업을 근사하게 수행했다는 것이다.

신라 향가는 토풍의 높다란 성과물이다. 저자는 최고 수준의 향가로 ‘제망매가’와 ‘찬기파랑가’를 든다. 평이하고 꾸밈없이, 절실하고 깊이 있는 서정을 만들어 시상을 천의무봉하게 엮어내는데, 이런 성취가 고려가요 시조 가사 등의 후대 노래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 당시, 일본 만엽집을 봐도 이런 수준 높은 시가 드물다고 한다. 말을 비틀어 어렵게 내달리는 현대시가 전범처럼 삼아야 하는 것이 저 향가들이다.

특이하게 저자는 변혁기였던 나말여초에 소설이 탄생했다고 본다. 동아시아 보편적인 소설 양식으로서 전기소설이 그것이다. ‘최치원’ ‘조신전’ ‘호원’ ‘온달전’ ‘설씨’ ‘백운제후’ 등 작품이 전하는데 이중 ‘호원’ 작자가 최치원이라는 것만 알려져 있다고 한다. 요컨대 최치원은 우리 문학사에서 현재 확인되는 최초의 소설가라는 것이다.

<삼국유사>는 고려시대에 토풍을 소환한 나려(羅麗)시대 서사문학의 보고다. 창작을 더하지 않은 ‘술이부작(述而不作)’의 자세로 지금은 전하지 않는 각종 문헌 자료를 수집 편찬한 보물 중의 보물이라는 것이다.

조선 전기 문학을 보는 시각도 현재적 관점과 연결된다. 조선 전기는 훈구파와 사림파가 맞섰다. 통상 훈구파는 보수, 사림파는 진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첫째 저들은 백성을 통치 대상으로 삼은 사대부 지배계급으로 한통속이라는 것이다. 또 훈구파 중에도 진보적인 면을 보인 이도 있고, 사림파 중에 보수적인 면을 드러낸 이도 있다는 것이다. 이념의 촉수와 삶의 촉수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당대에, 감히 진보 보수를 자처하는 정치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허울 좋게 ‘국민을 위해서’ 운운하면서 결국 군림하면서 저들의 계급 이익을 취하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특히 민(民), 여성, 경계인, 비판적 지식인, 중하층 계급에 대한 관심을 두드러지게 드러낸다. 신분 차별에 대한 항의와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싸움으로 삶을 점철시킨 이언진(1740~1766)을 크게 주목한다.

이광수와 임화는 “우리 전통에서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다”며 ‘이식문학론’을 제기했다. 그것을 좇아 한국 근대문학은 전통의 단절 위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묵시적 계승이 있다는 것이다. 딱지본 소설, 신소설, 개화가사/시조가 전통과 연결돼 있었다. 나아가 전통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극복한 김소월 같은 탁월한 예도 있다.

그런 면에서 ‘거대한 뿌리’를 말한 김수영은 대단하다. 그는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제3인도교의 물속에 박은 철근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이라고 1964년에 이미 노래했다. 김수영은 무엇을 봤던 것일까. 저자는 “한국고전문학은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라며 감히 상상도 못할 정도로 거대한 그 뿌리를 보자고 권한다. 박희병 지음/돌베개/412, 516, 500쪽/2만 5000원~2만 7500원.


<한국고전문학사 강의>. 눌와 제공 <한국고전문학사 강의>. 눌와 제공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