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영화제의 도시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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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지난달 4일 열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부산일보DB 지난달 4일 열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부산일보DB

영화가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제작에서 홍보와 배급, 상영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자본이 개입한다. 자본 투자는 이윤 추구와 직결되기 마련이다. 감독의 예술적 의도는 곧잘 무시되거나 자본 앞에 무릎 꿇는 일이 잦다. 독립영화는 애초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지향했다. 그런 만큼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려 애쓸 필요가 없었으며, 강력한 정치적 저항을 정체성으로 내세우는 데도 거리낌이 없었다. 부산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 영상패 꽃다림은 촬영 도중 강제 연행이나 징집을 당하면서도 영화운동을 펼쳤다.

부산영화의 전통은 오래다. 근대 개항장 도시 형성과 궤를 같이한다. 조선키네마주식회사 ‘해(海)의 비곡(秘曲)’(1924), 부산예술영화제작소 ‘해연(海燕)’(1948), 향토문화연구회 ‘낙동강’(1952) 제작에서 1958년 부산영화평론가협회 창설을 거쳐 1970년대 아마추어들이 주도한 소형영화운동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꽤 깊다. 1980년대 들어 부산 프랑스문화원을 중심으로 씨네필 문화가 조성되었으며 영화전공 학과가 설치되었다. 그 길 위에서 부산 독립영화가 점차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내 안에 우는 바람’(1997)으로 칸 영화제에 초청된 전수일을 비롯해 숱한 영화인들을 배출한 도시다. 부산은 다양한 주제와 독창적 스타일으로 무장한 독립영화의 전성시대를 구가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부산영화의 전통을 바탕으로 성장한 축제다. 올해 극심한 내홍을 겪으면서도 무사히 막을 내려 영화의 도시 부산을 각인시키는 미디어로서 손색이 없었다. 휘황한 빛만큼이나 그늘도 깊다. “저는 뭐 영화제랑은 상관이 없어요.” 영화제 기간 안부를 전한 지인의 말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 부산 영화인의 자리가 과연 얼마나 될까. 일부 영화인들이나 한국영화를 대표한다고 자임하는 서울 영화인들이 이 영화제의 주인이라면, 부산은 여전히 손님에 불과할 뿐이다. 부산이 ‘영화의 도시’가 아니라 ‘영화제의 도시’라는 비아냥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 까닭이다.

한국영화의 중심지는 영화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충무로다. 이외에 영화를 가장 많이 제작하는 지역은 부산이다. 대부분 독립영화다. 매년 장단편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100편 이상 제작하는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나마 영화전공 학과와 영화·영상 교육기관 및 프로그램이 많아 영화인들을 두루 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제의 그늘 속으로 스스로를 유폐하며 소외를 자처한 부산 영화인들의 비탄도 적지 않다. 이즈음 부산독립영화협회와 영화운동단체, 커뮤니티 시네마가 연대한 네트워킹 활동에 눈길이 간다. 이들 지역 영화인들의 묵직한 발걸음에서 영화제의 도시라는 그늘을 걷어내고 영화의 도시 부산으로 가는 빛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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