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선으로] 쉽게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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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역사문제연구소 인권위원

논문을 쓸 때 과거 학자들이 언론에 기고한 칼럼을 많이 참고했다. 학계에는 동료 평가에 의해 자기 연구의 학술성과 객관성을 가다듬는 장치가 존재하지만, 그를 통해 한번 공신력과 권위를 얻은 학자들은 자신들이 취득한 일간지의 지면을 통해 자신이 지닌 사회적 편견을 좀더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자기가 확실히 아는 분야에 대해서는 보통 크게 틀린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청탁받은 지면에 글을 실을 때는 그것을 넘어 자기가 잘 모르는 적당한 주제에 대한 적당한 인상비평을 슬슬 섞게 되고, 그러다보면 십중팔구 틀린 소리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 틀린 소리는 학자의 권위를 업고 그것이 마치 진실이고 맞는 말인양 사회에 유포되기 쉽다.

과거 그분들이 왜 학술논문이 아닌 일간지의 칼럼에서 소위 ‘뇌절’을 했을까 생각해보면, 아마도 언론의 기고가 그들에게 좀더 쉽게 쓴 글이어서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내 학술적 권위를 뽐내기 위해 쉽게 쓴 글은 그만큼 틀리기도 쉽다. 글이 바르게 전달되어야 할 내용보다 그 글을 쓰는 쾌락과 효능감에 도취되었을 때, 그 글이 잘못 설명하고 재현한 누군가가 깊은 상처를 입을 확률도 그만큼 올라간다. 비단 학자가 아니라더도 펜촉과 키보드를 통해 글이 술술 쉽게 나오는 상황을 저마다 주의해야 할 이유다. 글이 쉽게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신호와 같다. 세상과 내면을 말하는 일이 별도의 성찰 없이 그저 즐거움으로만 도배되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쉬운 말이 넘쳐나는 시대다. 핸드폰만 쥐고 있으면 언제 어느 때 무슨 말이건 할 수 있는 시대에, 말을 할 때 어떤 윤리를 갖추어야 옳은지 생각한다. 말이 부족할 때에는 말의 검열이 문제가 되지만, 말이 넘쳐 흐를 때에는 반대로 그 넘쳐흐른 말이 열어젖힌 비극이 문제가 된다. 혐오 발언을 문제삼고 사회적 소수자를 의식해 가급적 말을 고를 것을 주문하고, 연예인 기사 아래 댓글창을 일부러 닫을 것을 촉구하는 여론이 있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쉽게 떠드는 말로 상처입고 있다는 증거다. 말을 할 권력이 민주화된 후에는 그 말에 따른 폭력 또한 ‘민주화’되었고, 말과 권력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어떤 말이 쉽게 나올 때 그것이 왜 쉬운지, 그 쉬움이 과연 적절하고 정의로운 것인지 한번쯤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 쉬운 말의 칼날이 어느날 나에게로 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연세대학교 사학과에서 〈성 규범의 지식·제도와 반사회성 형성, 1948-1972〉라는 제목의 한국사 전공 박사학위논문을 썼다. 역사문제연구소 인권위원, 가족구성권연구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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