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신파가 남아 있습니다”…‘노량’에서 부활한 ‘명량 그림자’ [경건한 주말]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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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하고 정교한 해상 전투신 눈길
작위적 연출·신파 아쉬워…영화적 상상력은 신선

10년에 걸친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 마지막 편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지난 20일 개봉한 ‘노량: 죽음의 바다’(이하 ‘노량’)는 이순신(1545~1598) 장군이 장렬히 전사한 노량대첩을 다룬 작품입니다.

이순신 시리즈는 매번 화제 몰이를 했습니다. 1부인 ‘명량’(2014)은 누적 관객 1761만 명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남겼으나, 지나친 신파와 작위적 연출로 혹평을 받았습니다. '한산: 용의 출현'(2022)은 이러한 비판을 의식한 듯 한껏 절제된 분위기 속에서 통쾌한 해상 전투신을 재현해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관객 수는 726만 명으로 흥행한 편이었지만, 명량의 대기록과 관객의 호평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아쉬운 성적이었습니다.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노량‘은 개봉 전부터 기대감을 모았습니다. ‘명량’과 ‘한산’에서 보여준 김 감독의 역량이라면 또 하나의 ‘천만 영화’가 탄생할 수 있다는 기대였습니다. 개봉 직후 관객들의 평가는 대체로 좋은 편입니다. 하지만 기자는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아쉬운 부분도 많았습니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웅장해진 해상 전투신, ‘노량’의 확실한 관람 포인트

영화는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조선 곳곳을 파헤쳐 놓은 왜군은 그의 유언에 따라 본국으로 철수하려 하지만, 이순신(김윤석) 삼도수군통제사와 명나라 연합 수군이 바다를 철저히 봉쇄하고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합니다.

순천왜성에 사실상 갇힌 신세가 된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이무생)는 명나라 장수인 진린(정재영)을 설득합니다. 뇌물 공세를 펼치고 ‘더 이상의 희생은 무의미하다’며 회유합니다. 완고하던 진린은 결국 고니시에게 협조해 퇴로를 열어주려 합니다.

그러나 이순신은 절대 이렇게 왜군을 돌려보낼 수 없다며 반대합니다. 진린은 자신이 명나라 황제의 대리 격이라며 힘으로 찍어누르려 하지만 이순신에겐 통하지 않습니다. 왜군을 완벽하게 섬멸하는 것이 전쟁을 올바르게 끝내는 것이라고 이순신은 주창합니다.

이렇듯 영화는 초반 60분을 노량대첩이 일어나기까지의 상황과 캐릭터 배경을 설명하는 데 할애합니다. 액션신 없이 흐르는 처음 한 시간은 조금 지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상 전투가 시작되고 나서는 통쾌감이 몰아칩니다. 이미 ‘한산’에서 경험한 감정이지만, 더욱 확장된 스케일이 차별점을 낳았습니다. 화차와 천자총통을 비롯한 다양한 무기, 왜군의 허를 찌르는 기만전술을 보는 재미는 확실한 관람 포인트입니다. 속칭 ‘쪽수’만 믿고 기세등등하던 왜선들이 마구 박살 나고 깨부숴지는 장면들은 시원한 통쾌함을 안깁니다. 배가 흔들릴 때마다 의자가 진동하는 4DX 포맷으로 관람했더니 현장감이 대단합니다.

‘명량’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롱테이크 백병전 액션신은 그중에서도 인상적입니다. 조선은 물론 왜군과 명나라군의 시선까지 담아 전쟁의 처절함을 한껏 강조했습니다.

호오를 가를 부분은 이순신의 시선을 담은 후반부입니다. 왜군의 반격이 거세질 때 이순신이 다시 힘을 내 아군을 격려하는 장면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그려냈는데, 관객에 따라 평가가 엇갈릴 대목입니다. ‘명량’의 단점으로 지적받았던 신파적 장면을 싫어하는 관객이라면 입맛에 영 맞지 않을 연출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오히려 큰 감동을 느꼈다는 관객도 적지 않습니다.

이순신이 전사하는 장면에선 김 감독이 고민한 흔적이 보입니다. 어설프거나 뻔하지 않은 방식으로 마지막 순간을 그려냈습니다. 다만 결말부에도 신파적 요소가 있어 ‘호불호’가 갈리겠습니다. 기자의 경우 ‘여기서 우세요’라고 만든 장면에서 눈물이 한 방울도 나지 않았습니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천만 영화는 따 놓았다?…호불호 가를 ‘신파’가 관건

실제로 개봉 이틀 후인 22일 현재 CGV 실관람객 만족도를 나타내는 ‘골든에그’ 지수는 92%로, 아주 높지는 않습니다. 1시간 30분가량 이어지는 전투신이 다소 늘어진다는 지적이 가장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사실 전투신의 분량도 분량이지만, 힘이 너무 들어간 작위적 장면들도 피로감을 줍니다. 비장한 표정으로 칼을 뽑아 들고 “돌격”이라고 외치는 장면, 왜장이 이를 악물고 “이순신”을 외치는 장면이 수도 없이 나옵니다. 시종일관 감정을 고조시키는 음악이 남용되고, 소리 치는 인물들과 슬로우 효과가 반복됩니다. 전투 중 모두가 동작을 멈추고 한 곳을 바라보는 등 진부한 장면들이 재미를 반감시킵니다.

해상 전투 대부분이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것도 맹점이 있습니다. 낮을 배경으로 한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피아 식별이 쉽지 않고, 진영을 한눈에 구분하기도 어렵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고증하는 데서 오는 한계도 있습니다. 전작들에선 이순신 측이 ‘언더독’이었기에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가 있었는데, 이번엔 조명연합군이 우세한 형국이라 긴장감이 덜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요 인물들의 연기는 대단했습니다. 중저음이 강한 김윤석의 목소리가 진중하고 올곧은 이순신의 모습을 부각합니다. 정재영이 연기한 진린은 입체적인 캐릭터입니다. 이순신을 방해하는 빌런 같지만, 나름의 기개와 신념이 있어 미워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백윤식은 조·명 연합군과 대척하는 왜장 ‘시마즈’로 대단한 카리스마를 뽐냈습니다. 이순신을 돕는 명나라 장수 등자룡을 연기한 허준호 역시 ‘찰떡’ 캐스팅이었습니다.

다만 기자는 이순신 캐릭터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지는 지점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순신이 진린의 끈질긴 회유에도 넘어가지 않고 전투를 고집하는 ‘명분’을 보여주는 요소가 부족했다는 느낌입니다. 물론 관객은 왜군을 그대로 돌려보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완성도 측면에서 본다면, 이순신이 그토록 왜군을 쓸어버리고 싶어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이 더 필요했습니다.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전쟁의 참혹함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흐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중 손익분기점을 넘긴 작품은 겨우 4편이었습니다. ‘범죄도시3’, ‘밀수’, ‘잠’, ‘30일’입니다. 이대로 한국 영화계가 얼어붙나 했지만, 지난달 22일 개봉한 ‘서울의 봄’이 냉기를 녹였습니다. 지난 21일까지 942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아 올해 두 번째 천만 영화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서울의 봄’의 기세를 이어 ‘노량’도 극장가에 훈풍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일부 아쉬운 점이 있지만, ‘노량’은 관람 포인트가 확실한 작품이라 흥행에 성공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이틀 만에 41만 명이 넘는 관객이 관람했습니다. 10년에 걸친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가 또 하나의 ‘천만 영화’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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