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 피아노 통째 ‘공수’… ‘건반 위 완벽주의자’의 완벽 연주 [부산문화 백스테이지]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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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안 짐머만 리사이틀
“자기 피아노로 최고 음악 선사”
최상 컨디션 아녀도 최선 다해
앙코르 2곡에도 관객 기립박수

지난 27일 밤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크리스티안 짐머만(지메르만) 피아노 리사이틀’에서 사용한 짐머만 전용 ‘스타인웨이 앤드 선스(Steinway & Sons) 파브리니’ 피아노. 김은영 기자 key66@ 지난 27일 밤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크리스티안 짐머만(지메르만) 피아노 리사이틀’에서 사용한 짐머만 전용 ‘스타인웨이 앤드 선스(Steinway & Sons) 파브리니’ 피아노. 김은영 기자 key66@

명징. 관조. 유려. 비장. 무심. 격정. 절제. 여유. 평안. 지난 27일 밤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크리스티안 짐머만(지메르만) 피아노 리사이틀’을 보면서 시시각각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들이다. 이날 공연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지만, 이색적인 장면도 여러 번 목격됐다.

먼저 연주가 시작되기 전부터 관객들이 텅 빈 무대 위에 동그마니 놓여 있는 피아노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중간휴식과 음악회가 끝나고도 비슷한 상황이 재현됐다. 다른 음악회에선 거의 보기 드문 광경이다. 짐머만이 스위스 자택에서 직접 가져온 피아노였기 때문이다. 그는 피아노를 비행기에 태우고 다니는 피아니스트로도 유명하다. 지난해 내한 공연 땐 피아노 액션(건반을 누르면 해머가 현을 때리게 하는 장치)과 키보드만 들고 와 국내 피아노(롯데콘서트홀)로 전국 순회 연주를 했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사용하던 ‘스타인웨이 앤드 선스(Steinway & Sons) 파브리니’를 통째 가져와 부산 연주에서 첫선을 보였다. 그만큼 한국 연주에 공을 들인다는 게 눈에 보였다.


공연 직전 조율사가 피아노를 살피는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공연 직전 조율사가 피아노를 살피는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열흘 전쯤 피아노와 함께 국내에 도착한 그는 한적한 도시 밀양에서 머물며 피아노를 새롭게 조립하고 적응한 뒤 이날 공연장에 들여왔다.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엔 그의 전속 조율사가 마지막 점검을 하는 듯 피아노를 살피고 들어갔다. 그는 전속 조율사도 대동했다. 지난 9월 독일 뉘른베르크 연주 때에는 무려 세 대의 피아노를 무대에 올려놓고 이번 부산 공연에서 선보인 같은 레퍼토리 녹턴을 각기 다른 피아노로 연주하기도 했다. “더 좋은 연주가 가능하다면,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란다. 그에게 왜 ‘건반 위 완벽주의자’라는 별칭이 붙었는지 알 것 같았다.

마침내 시작된 공연. ‘쇼팽 스페셜리스트’답게 전반부는 쇼팽 곡으로 채웠다. 네 곡의 녹턴과 피아노 소나타 2번이다. 첫 곡 녹턴 2번부터 달랐다. 한국인들에겐 너무나 익숙한 야상곡 2번, 밤의 음악이 객석에 천천히 스며들었다. 녹턴 5번, 16번, 18번 연주까지 박수 없이 이어 가니 더욱 곡에 집중할 수 있었다. 특히 오른손의 감미로운 멜로디가 피아니시모에서조차 한 음 한 음 온전히 살아나는 게 짐머만의 피아노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고 했던가. 연주 홀이 좀 더 나았더라면 하는 아쉬움마저 들었다. 그가 왜 전용 피아노를 힘들게 들고 다니는지 짐작됐다. 자신에게 최적화된 피아노로 최고의 음악을 관객들에게 선사하겠다는 의지로 읽혔기 때문이다. 쇼팽 피아노 소나타 2번은 더욱 화려한 손놀림으로 연주했다. 지난해 소나타 3번에 이어서 올려진 프로그램으로 “매번 준비되지 않았다”고 하다가 들려준 곡이어서 그런지 더욱 울림이 컸다. 짐머만의 소나타 2번은 연륜이 느껴졌다. 콩쿠르에서 막 우승한 젊은 연주자들이 보여주는 현란한 테크닉과 다이내믹한 타건으로 탄성을 자아낸 것과는 결이 다른 감동이었다.


지난 27일 밤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크리스티안 짐머만(지메르만) 피아노 리사이틀’이 끝난 뒤 객석에 불이 켜져 돌아가는 와중에 앙코르 추가곡을 연주하기 위해 피아노 앞에 다시 앉는 피아니스트를 담은 모습. 독자 제공 지난 27일 밤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크리스티안 짐머만(지메르만) 피아노 리사이틀’이 끝난 뒤 객석에 불이 켜져 돌아가는 와중에 앙코르 추가곡을 연주하기 위해 피아노 앞에 다시 앉는 피아니스트를 담은 모습. 독자 제공

다만 이날의 짐머만 컨디션은 최상이 아니었다. 녹턴 연주가 끝날 때마다 그는 잔기침을 했고, 이때다 싶었는지 객석 여기저기서도 “콜록콜록” 소리가 이어졌다. 짐머만의 까탈스러움을 익히 들었던 관객들조차 숨죽이고 있다가 한꺼번에 터진 ‘기침 도미노 현상’은 오히려 무대 위 짐머만을 미소 짓게 만들었다. 그래도 프로는 프로였기에 2부 클로드 드뷔시 ‘판화’ 연주에선 마치 시간 여행을 하듯 미얀마로, 스페인(그라나다)으로 데려가는 마법을 부렸다. 마지막 곡 카롤 시마노프스키의 ‘폴란드 민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같은 폴란드 태생으로서 가늘고 섬세한 표현부터 굵고 웅장한 표현까지 완벽하게 선물했다. 그리고 거의 쓰러질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거부하지 못하고 ‘고뇌의 앙코르’ 두 곡을 선사했다. 특히 마지막 앙코르는 객석에 불이 켜지고 관객들이 퇴장하는 도중 흘러나와 더욱더 박수갈채를 받았다.


공연이 끝난 뒤 한 관객이 피아노 사진을 찍는 관객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공연이 끝난 뒤 한 관객이 피아노 사진을 찍는 관객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연주가 끝나고 만난 짐머만 리사이틀 초청 기획사 마스트미디어 박현진 이사는 “모든 아티스트가 대부분 예민한 편이지만, 짐머만도 예외가 아니다”며 “그는 이날 연주를 앞두고 무대 위 마이크 철거에서부터 공연은 물론이고 커튼콜, 앙코르까지 절대 사진 촬영 금지를 강력히 요청했다”고 전했다. 더욱이 통상 사후엔 공지하는 앙코르 곡명조차 ‘미공지 안내’로 내보냈다. “관객 한 분 한 분의 저마다 다른 생각과 마음으로 자신의 연주가 기억되기를 바랐던 짐머만의 뜻”이라는 내용과 함께였다. 어느 명상센터에라도 다녀온 듯 평안한 마음이 된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했다. 대기실에서 얼핏 지켜본 짐머만은 연주가 끝났다는 안도감에서인지 한층 활기찬 모습이어서 다음 연주를 더욱 기대하게 했다. 부산 공연은 거의 매진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온 그의 전용 피아노는 이날 밤 다음 연주 장소인 대전으로 옮겨졌다. 새해에는 서울에서 세 차례 연주를 갖는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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