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신춘문예-희곡·시나리오 심사평] 미덕 있으나 약점도 뚜렷해 당선작 내지 않아
올해 응모작들은 ‘사회’ ‘제도’라는 궤도에서 이탈한 혹은 탈출한, 개인의 파편화된 일상과 그에 따른 정서를 드러내는 글들이 많았다. 이런 작품들은 대개 가족을 소재로 한 고통의 기억을 전면에 배치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눈에 띄는 응모작이 별로 없었다. 독창적인 실험적 글쓰기, 흡입력 있는 이야기는 고사하고 극의 구조적 완성도, 깔끔한 형식미를 갖춘 작품조차 드물었다. 갈등의 증폭과 해소가 미진한 것은 행동을 품은 대사를 구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인물을 효과적으로 틈입시키지 못해 국면의 전환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 탓이다. 인물들의 대사가 주야장천 사건의 소개만 하고 있으니 리듬감이 생길 리 없고, 갈등은 실종되어 흩어진다. 오로지 아픈 기억의 회고뿐이다. 재미없다.
김유리의 ‘눈세계’는 인물들이 구사하는 언어가 매우 훌륭하다. 읽는 동안 황홀했다. 다만 딱 중간까지. 이야기가 구체성을 잃고 관념으로 흐르면서 이 멋진 대사들은 빛을 잃는다. 강지희의 ‘억겁-진한 피, 혈육’은 소재와 형식이 강렬하다. 무대에 형상화한다면 인상 깊은 장면도 극작의 차원에서 제시하고 있으나 결말이 너무 뻔하고 안일하다. 김가윤의 ‘감옥 창문을 지키며’는 독특한 설정과 아이디어로 읽는 재미가 있지만 결말이 너무 맥 빠져 허무하다. 김도형 ‘사형수의 유산’은 사건이 치달아가는 과정을 잘 구축한 것에 비해 결말이 성급하고 비약이 심하다. 이현정의 ‘미정’은 우리 시대의 여성이 겪는 고통을 잘 포착하여 묘사하고 있으나 작품 안에서 이 문제의 작가적 결론을 내지 못한다.
시나리오에서는 최아은의 ‘반가운 손님’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반전을 좀 더 치밀하게 준비해야 할 것 같다. 이혜진의 ‘나비’는 일상적 언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고, 다음 장면을 기대하게 만드는 흡입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갈등이 해소되든 제거되든 클라이맥스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구동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상의 일곱 작품을 두고 깊이 고민하였으나 당선작은 내지 못했다. 각 작품 모두 미덕을 가지고 있으나 약점도 뚜렷했다. 매우 안타깝고 모두에게 미안하다. 올해 희곡·시나리오 부문 당선작은 없다.
심사위원 김지용 극작가·연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