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섭 칼럼] 의원 특권 폐지, 약속보다 먼저 실행부터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논설위원
4·10 총선 최대의 관심사로 부상
21대 국회 퇴행에 국민 열망 높아

한동훈 위원장, ‘불체포 포기’ 제시
하지만 당장 실현 가능성은 희박

그보다 180개 혜택부터 축소 필요
구체적 방안 제시해 진정성 보여야

여야 각 정당의 후보 공천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올해 최대의 정치 행사인 4·10 총선 열기도 점점 달아오르고 있다. 정당마다 세대교체 등 공천 기준을 놓고 이런저런 말들이 어지럽지만 매번 선거 때마다 의례적으로 치러야 하는 총선 통과의례로 여겨진다.

그것보다는 올해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끄는 이슈는 국회의원의 위상 재정립이다. 핵심은 국회의원 신분에 따르는 특혜와 특권의 폐지다. 물론 이전에도 논의가 없지는 않았으나 이번에는 여론의 흐름이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국민들이 현 21대 국회의 퇴행적인 모습에 질린 탓인지 그 열망의 수준이 과거에 비해 훨씬 높아진 것이다.

정치권도 이런 여론의 기류를 의식하는 모습이다. 지금 정치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함께 이슈의 중심인물인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취임 이후 첫 번째 정치 개혁안으로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 포기를 제시했다. 그동안 벌어졌던 제1야당 대표의 ‘방탄 국회’ 논란을 염두에 둔 정치 공세의 측면이 없다고 할 순 없겠으나, 불체포 특권으로 상징되는 국회의원의 지나친 혜택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을 의식한 개혁안으로 보인다. 이어 금고형 이상 확정 때 재판 기간 세비 반납, 17일에는 의원 정수를 지금보다 50명 줄인 250명으로 하는 방안을 내놨다. 국민으로선 솔깃하지 않을 수 없는 약속이다.

그러나 한 위원장의 정치 개혁안 약속이 실행될 것이라고 믿는 국민이 과연 몇 명이 될지는 모르겠다. 지금까지 이와 관련한 빈번한 약속에도 제대로 실행된 적은 없었던 사실을 국민들은 이미 지겹도록 보았다. 대체로 국민들은 정당이나 정치인의 약속 또는 제안이 부쩍 잦아지면 또 선거가 임박한 줄 짐작한다. 그래서 쏟아지는 약속이나 제안에도 무덤덤하다. 게다가 정치인의 약속은 일반인의 그것과 비교할 때 ‘말의 무게’가 가장 떨어지는 것으로 취급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1대 의원들이 실제로 보여 준 바다.

정치 신인으로서 많은 주목을 받는 한 위원장의 약속이 조금이라도 말의 무게를 더하려면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이미 총선 출마 포기로 향후 국회 밖에 머물러야 하는 처지와 제시된 개혁안에 대해 동조는커녕 조롱 섞인 비판을 가하는 야당을 고려한다면 약속부터 내던질 게 아니라 처음부터 가능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국민에게 호소해야 한다.

21대 국회에서 논란이 많았던 불체포 특권만 해도 헌법 규정인 만큼 헌법 개정 없이는 폐지가 불가능하다. 장기적으로 헌법 개정을 통해 요건이 강화돼야겠지만, 우선은 국회법에 규정된 절차라도 개선하려는 시도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의원의 세비 반납이나 미지급 약속도 이에 관한 규정조차 없는 관련 법률부터 손을 보는 것이 순서다. 당장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개혁안을 내놓고 야당과 무용한 기싸움을 벌이는 것보다 훨씬 낫다.

헌법의 규정이 아니라도 국민들이 보기에 국회의원의 특혜나 특권이 너무 많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재작년 4월 발족한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누리는 특혜나 특권은 180여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1억 5000만 원대의 연봉부터 평년엔 1억 5000만 원, 선거가 있는 해엔 3억 원까지 모을 수 있는 후원금, 보좌진 7명을 포함한 총 9명의 지원 인력에다 입법 활동비, 정책자료 발간비 등으로 의원 한 명에게 지원되는 예산만 매년 1억 원이 넘는다. 여기에 해외여행 경비, 차량 유지비, 운전기사 공무원 채용, 항공기와 KTX 등 무료 사용까지 포함하면 일반인의 상상을 넘는다. 돈과 명예와 권력의 ‘삼합(三合)’인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 위해 모든 분야의 인재들이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이유를 알고도 남음이 있다.

이러니 국민들은 국회의원 증원 얘기가 나오면 긍정적인 측면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대체로 극도의 거부 반응을 보인다. 특혜나 특권을 대폭 줄이고 의원들의 ‘예산 가성비’를 지금보다 크게 높이지 않는 한 국민들의 이런 기류를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난달 26일 국민의힘 수장이 된 한 위원장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동안 전국 곳곳을 누비면서 벌써 국민에게 많은 약속을 하고 있다. 투표일이 임박할수록 그 약속은 더 늘어날 게 분명하다. 정치 신인임에도 정치적 언어에 밝은 한 위원장의 약속인 만큼 이를 믿고 싶은 국민도 많을 것이다. 그러려면 화려한 약속을 담보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현 방안이 함께 나와야 한다. 말만 화려한 약속의 대부분이 어떻게 끝났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의원 배지도 마다한 한 위원장이 자기 약속의 진정성을 어떻게 국민에게 보여줄지 궁금하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