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하지만 달달한 힐링 영화 ‘웡카’ [경건한 주말]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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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별 관심 없는 사람도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은 들어봤을 겁니다. 화려한 영상미와 동심을 자극하는 세계관, 조니 뎁의 연기가 어우러져 팀 버튼 감독의 역작으로 남았습니다.

국내에도 상당한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이 작품의 프리퀄(시간상 앞선 사건을 다룬 속편)이 20여 년 만에 나왔습니다. 게다가 헐리웃에서 제일 잘 나가는 스타 중 하나인 티모테 샬라메를 주연으로 내세워 팬들의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기자가 감상해본 ‘웡카’는 영상미와 음악이 돋보였습니다. 다만 완성도 면에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아성을 넘어서기엔 역부족이라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영화 ‘웡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화 ‘웡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지난달 31일 개봉한 폴 킹 감독의 신작 ‘웡카’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 주인공이자 초콜릿 공장주인 윌리 웡카의 어린 시절을 다룹니다. 마법사이자 초콜릿 메이커인 소년 웡카(티모테 샬라메)의 꿈은 ‘달콤백화점’에 자신만의 초콜릿 가게를 여는 겁니다.

부푼 꿈을 안고 달콤백화점이 있는 도시에 도착한 웡카. 그러나 첫 단추부터 잘못 꿰맸습니다. 돈밖에 모르는 여관 주인 스크러빗(올리비아 콜맨)에게 속아 엄청난 빚이 생겼고, 돈을 갚기 위해 사실상 감금된 채 지하 세탁소에서 일만 해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이미 세탁소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들은 거듭된 탈출 실패로 자포자기한 상태.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웡카가 아닙니다. 웡카가 가진 초콜릿 제조 기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입니다. 도시에 도착한 첫날부터 달콤백화점 손님들을 사로잡아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최고의 초콜릿 메이커가 될 수 있는 웡카가 세탁소에서 여생을 보낼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웡카를 견제하는 막강한 빌런들입니다. 여관 주인뿐만 아니라 달콤백화점 초콜릿 ‘3대장’이자 갑부인 슬러그워스, 피켈그루버, 프로드노즈가 웡카에게 위협을 느끼고 견제에 나섭니다. 초콜릿을 이용해 경찰서장과 신부까지 매수하고, 웡카가 기를 펴지 못하게 찍어 눌러버립니다. 공권력을 거머쥔 초콜릿 3대장을 상대해야 하는 웡카는 여관에서 만난 고아 소녀인 누들(칼라 레인)과 세탁소 동료들 말고는 의지할 사람이 없습니다.


영화 ‘웡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화 ‘웡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눈과 귀 즐겁긴 한데…마구 즐겁진 않다

영화 ‘웡카’의 관람 포인트는 영상미와 노래입니다. 경쾌한 노래와 춤으로 전개되는 장면들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합니다. 형형색색의 미장센과 근대 유럽을 깔끔하게 구현해낸 미술 기법도 눈길을 끕니다.

웡카를 연기한 티모테 샬라메의 노래 실력도 흠잡을 데 없습니다. 웡카의 단짝인 누들 역을 맡은 신예 배우 칼라 레인 역시 맑은 음색과 탄탄한 가창력을 뽐냅니다. 두 사람의 화음이 돋보이는 곡들은 내적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다만 음악과 영상미에 너무 큰 기대를 걸어선 안 되겠습니다. 최근 한국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디즈니 실사영화 ‘알라딘’(2019)에 비할 정도는 못 됩니다. 알라딘 주제곡인 ‘어 홀 뉴 월드’(A Whole New World)처럼 귀에 꽂힐 정도로 중독성 있거나, ‘스피치리스’(Speechless)처럼 클라이맥스 부분에 감정을 고조시키는 격정적인 넘버(곡)가 없었습니다.

영상미 역시 ‘알라딘’은 물론이고 20년 가까이 지난 원작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뛰어넘지 못하는 듯 합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화려한 색감을 통해 동화 속에 실제로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을 선사했지만, ‘웡카’는 영화 후반부 정도를 제외하면 크게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없었습니다. 예고편을 보고 뛰어난 영상미를 기대하며 극장을 찾았다간 실망할 수 있습니다.

캐릭터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순수하다 못해 엉뚱한 웡카가 앳된 외모를 가진 티모테 샬라메와 잘 어울립니다. 소인족인 ‘움파 룸파’를 연기한 휴 그랜트는 귀여운 감초 캐릭터로도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특히 코믹한 춤과 노래는 중독성이 강해 영화가 끝난 뒤에도 기억에 남습니다.


영화 ‘웡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화 ‘웡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화 ‘웡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화 ‘웡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독창성 없는 캐릭터와 스토리…무자극 힐링영화로는 괜찮아

반면 누들 캐릭터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웡카와 단짝으로 주연급 비중인데도 특별히 ‘케미’가 잘 맞는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감초인 움파 룸파보다도 존재감이 약했습니다. 웡카를 돕는 세탁소 동료들도 적재적소에 제각기 능력을 발휘하지만 개성이 없고, 그저 이야기 전개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됐습니다.

가장 아쉬움이 남는 건 스토리입니다. 전체적으로 개연성이 실종됐고, 갈등의 해결 과정이 지나치게 단순합니다. 웡카의 초콜릿이 마법 수준의 힘을 가지고 있어 손쉽게 위기를 해결합니다. 긴장감이 없으니 전체적으로 밋밋하고 지루합니다. 판타지 장르의 필수 요소인 완전히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하지도 못했고,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대목도 없었습니다. 관객을 완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창의성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일부 관객의 지적처럼 ‘지난 연말에 개봉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큰 기대에 비해 아쉽긴 하지만, ‘웡카’는 가족이나 연인, 특히 어린 아이와 함께 편안하게 감상하기 좋습니다.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장면 없이 가족애를 강조한 덕에 연말 힐링용 영화로는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실제로 ‘웡카’는 지난해 12월 북미 개봉과 함께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개봉 한 달 만에 글로벌 매출액이 ‘듄’(2021)을 넘어서 샬라메 역대 최고 흥행작이 됐습니다.

한편, ‘웡카’의 영상 작업을 한국 출신인 정정훈 촬영감독이 주도했다는 점이 흥미를 끕니다.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 ‘신세계’(2013) 등 다수의 명작을 탄생시킨 정 감독은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서 “영화를 보면서 이야기에 얼마나 동화될 수 있느냐에 중점을 두고 촬영했다”며 “눈에 띄는 영상미보다는 사실성을 살리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영화 ‘웡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화 ‘웡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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