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축소 국가에서 살아가려면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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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익 플랫폼콘텐츠부장

사상 유례없는 ‘초저출생’ 대한민국
2100년 부산 45만 명 정해진 미래
‘분초 사회’ 라이프 스타일도 급변
삶의 대안은 ‘지역에서 글로벌하게’

최근 미국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인플루언서 마크 맨슨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것도 영상 하나로.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로 지목한 대한민국을 여행한 그는 정확하게 우리 속내를 꿰뚫어 보았다. 한국에 사는 미국인과 정신과 전문의, 심리학자까지 만나며 깊이 있는 시선까지 더했으니, 더 이상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한국인이 앓는 심한 우울증의 근원을 추적한 그는 돈에 집착하는 물질주의가 스스럼없는 자기 표현과 개인주의를 짓눌렀고, 지역과 조직 사회에서 강요되는 수치심과 타인에 대한 평가가 가족과 공동체의 친밀감을 앞질렀다고 진단했다. 유교와 자본주의가 낳은 단점만을 취한 나머지 지나친 경쟁에 노출된 끝에 세계 최악 수준인 우울증, 자살률이 그 결과물로 따라왔다는 것이다. 태어난 뒤 줄곧 ‘닥치고 1등’을 향해 가야 하는 국민 모두가 패배감에 사로잡힌 탓이다. “한국인은 내면의 깊은 곳을 들여다 봐야 한다”고 조언한 그는 과거 우리가 보여준 ‘회복 탄력성’에 한가닥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이 역시 병의 근원을 가린 채 집단주의적 성향으로 나타난 ‘토끼몰이’를 잘 포장한 것일지도 모른다.

2024년에는 새해 트렌드로 급기야 ‘분초 사회’가 등장했다. 분초를 다투며 사는 사회가 됐다는 의미다. 새로운 기술과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발전하는 속도, 정보를 공유하는 속도가 그만큼 빨라지고 편리해진 사회 속에서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가 창출된다니 다행한 일이다. 한데 사회의 변화가 지금보다 가속화하면 우리는 더 행복할 수 있을까.

‘가성비’도 모자라 ‘시성비(시간 대비 성능)’ 시대에 살며 분초를 다투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짬이 나면 해외여행에 몰두한다. 말할 수 없이 우울한 마음에 보복이라도 하듯. 코로나19로 갇혀 있던 욕구를 해소하려는 것이라 넘겨짚기에는 왠지 찜찜하다. 이것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거대한 우울감 속에서 탈출구를 찾는 우리의 본모습이 아닐까.

이런 상황이 더 큰 쓰나미를 부르고 있다. 끝없는 경쟁, 수도권 과밀화 등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초저출생 사회’를 낳았다. 여기 확실히 예측 가능한 미래가 있다. 서울대학교 인구정책연구센터 연구에 따르면, 2023년 329만 명인 부산 인구는 2100년에 45만 명으로 줄어든다. 실로 충격적인 수준이다. 부산 16개 구·군에 2만 8125명씩 나눠 사는 셈이다. 갈수록 더 많은 고령층이 사망하면서 인구는 급격히 줄어드는데, 태어나는 아이는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그렇다고 부산만 탈출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2020년 인구가 5000만 명으로 정점에 이른 대한민국 역시 2100년이면 인구 1950만 명인 나라가 된다. 2050년 이후 매년 60만 명 이상 인구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어서 나온 수치다.

인구가 반토막 아래로 곤두박질친 대한민국과 부산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할까. 인구를 통한 경제성장을 경험한 기성세대에게는 청천벽력일지 몰라도 살아갈 날이 훨씬 많은 미래 세대는 나름의 질서를 찾아나설 것이다. 그런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현재 출생률을 적용하면 25~34세 미래세대는 2026년 이후 9년 동안 170만 명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이후에는 감소세가 더욱 급격할 것이다. 부산 역시 2026년 이후 더 가파르게 청년을 잃게 된다. 이렇게 되면 산업은 최소한의 인원으로 운영이 가능한 업종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기업들은 핵심 인재를 붙잡을 근무조건과 복지 혜택 등 여러 대안을 앞다퉈 내놓을 것이다.

이미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 등은 미래를 간파하고 주민등록 인구가 아닌 생활인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앞으로 거주인구보다 생활인구가 많은 지역에 더 많은 인프라 투자가 이뤄질 것이 명확하다. 지역이 소멸하지 않으려면 사람을 끌어들이는 미래지향적인 환경과 매력을 갖추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2022년생의 53%가 수도권에서 태어나는 현실 속에서 수도권 과밀 현상은 더욱 가속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래도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까지 태어난 Z세대와 이후에 태어난 알파세대를 합한 ‘잘파(Z-alpha)세대’에게도 기회는 있다. 이들이 주축이 되는 2050년경 대한민국 평균 연령은 56세 남짓이 된다. 우리나라의 잘파세대 수는 극도로 축소되지만 세계적인 인구 분포를 보면 잘파세대가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한다. 우리 미래세대는 하나의 문화와 경제권으로 살아가는 세계 속에서 어디서 살든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글로벌 인구를 대상으로 살아갈 방도를 찾아야 하는 숙명에 맞닥뜨린 것이다.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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