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당신의 연고는 어디인가?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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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국 정치부 차장
하루가 멀다하고 기자회견 여는 출마자들
해가 갈수록 부산의 연고 개념은 희박해져
스펙만 믿고 지역구 공부 없이 출사표 남발
옳은 의정활동은 지역구와의 공감에서 나와

연고. 예로부터 맺어진 관계란 뜻이다. 맺음새는 혈통이 될 수도 있고, 출신 지역이나 학교가 될 수 있겠다. 숱한 인사가 연고를 찾아 불나방처럼 부산으로 몰려든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까닭이다.

하루에도 서너 명씩 거창한 출사표를 던지는 출마자들이다. 그간의 행보에 존경심이 샘솟는 인사가 있는가 하면, 부산의 협소한 인재 풀에 자괴감을 느끼게 하는 인사도 있다.

사실 기자가 마주하는 선거의 감상이라고 해서 특별한 건 없다. 동네 유권자와는 크게 다르지 않다. 도리어 취재기자로 휩쓸려 다니다 보니 내 선택만 더 어려워졌다. 그나마 몰라도 될 속살까지 다 들여다봤으니 말이다.

유권자의 선택 기준은 선거마다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번 총선에서 ‘제대로 된 연고 의식을 갖춘 후보’를 찾아보기로 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물리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올바른 연고 의식을 가진 후보에게 한 표를 던질 생각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연고를 따지겠다는 건 일견 촌스러워 보인다. 그럼에도 내 한 표라도 이걸 따져보자 결심한 건 갈수록 총선 출마자의 연고 의식이 희미해져 가기 때문이다. 부산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되겠다면서 정작 부산과의 연고는 겉치레 정도로 생각하는 출마자가 늘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의 행로다. 특히나 국가의 부름을 받는 고위 공직자 신분이라면 거주 이전의 자유가 크게 제한된다. 이들의 사정이야 이해 못 하는 바도 아니다. 하지만 고향에 금배지만 챙기러 온 출마자의 비중이 지나칠 정도로 늘어나니 이맛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 했으니 당연히 서울의 인재 풀을 부산이 못 따라갈 테지만 하다못해 이제는 국회의원 출마자도 외주를 받아야 하나 싶어 서글픔이 앞선다.

예전에는 현역 의원이 편하게 여의도 생활을 하려 서울에 숙소만 잡아도 흠이 됐다. 지역구에 쉬쉬하다 행여나 들통이라도 나면 미안해하는 모습을 내비쳤다. 지역구 의원들의 거주지 확인이 그 시절 선거철 단골 기삿거리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반대로 쿨하다 못해 당황스러울 정도의 연고 의식을 갖춘 출마자가 여럿이다. 평생 밥벌이는 수도권에서 했고, 내 식구도 서울 살지만 나는 여기서 태어났으니 출마에 문제가 없지? 하는 식이다. 속셈 뻔한 하향 지원을 얄팍한 지연과 학연 하나로 퉁치고 내 무대인양 거드름 피우는 이들이다.

출마 기자회견을 하며 지역 대표 공약을 묻는 기자들의 말에 차차 공부해 나갈 계획이라는 답이 돌아오기도 했다. 지역구에 대한 최소한의 공부도 없이 연고 타령하는 부류가 한두 사람이 아니다.

심지어는 좁은 부산 안에서도 출마자 욕심에 연고 의식은 희미해져 간다. 현역이나 유력 출마자의 경쟁력을 계산기 두드려 보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지역구를 옮겨 다니는 홍길동 같은 인사도 적지 않다. 출마자는 같은데 출마지가 생뚱맞게 달라진 케이스다.

국회의원이 갖춰야 할 최고의 미덕은 입법 능력과 지역구 관리 능력이다. 둘 다 얼마나 연고에 진한 애착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진다. 지역구와 물리적으로, 정서적으로 깊이 공감할 때 주민을 위한 의정활동이 나오고 주민을 위한 법안이 발의된다. 부산 사무소에 사무장 하나 두고 동네 민원 접수해 봐야 당사자인 지역구 의원이 공감하지 않으면 죄다 숙원사업이란 핑계로 표류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촌스럽게 연고에 연연하지 않는 이들이 중앙 무대에서는 탁월한 실적을 냈을까. 산업은행 부산 이전 과정에서도 우리는 이미 잘 보고 있지 않은가. 여당이 당론으로 고지한 상황에서도 수도권의 반대 논리를 되뇌거나 영혼 없는 눈빛으로 결의 대회에 참석한 부산 의원들을 말이다.

사람의 공감 능력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나이가 들수록 더 떨어진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중앙 정치하는 사람이지 동네 민원 해결하는 사람이냐’고 큰소리치다 선거철 돌아오니 ‘다음에는 달라지겠다’고 발바닥 닳게 쫓아다니는 이들의 공통점은 역시나 허술한 연고 의식이다. 애초에 경력 외에도 출마자의 연고 의식을 제대로 점검해 유권자가 컷오프 했다면 보지 않았어도 될 흉한 꼴이다.

바야흐로 유권자의 시간이다. 주어진 한 표를 여당의 주장처럼 180석 거대 야당의 입법 독재를 막는 데 쓸지, 야당의 구호처럼 무도한 검찰 독재정권을 심판하는 데 쓸지 궁리해야 한다. 그러나 내 한 표의 ‘거룩한 쓰임’에 앞서 어느 후보가 내가 사는 동네와 공감대를 갖고 있는지 체크하는 과정도 소홀히 하지는 말아야 한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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