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MZ의 연애와 결혼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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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편집부장
어느새 시들해진 밸런타인데이
이성에 초콜릿 대신 ‘셀프 선물’ 늘어

불안한 미래 걱정에 현실적 비용까지
연애-결혼-출산이 주는 부담감 심각
국가가 나서 사회적 안전망 만들어야

사랑하는 연인에게 달콤한 초콜릿을 선물하며 마음을 고백한다는 밸런타인데이 분위기가 많이 시들해졌다. 한때는 2월 14일에 이어 3월 14일(화이트데이), 심지어 4월 14일(블랙데이)까지 초콜릿과 사탕, 짜장면 같은 관련 제품들이 줄줄이 인기를 끌며 시끌벅적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말이다.

지난 14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밸런타인데이에 ‘셀프 선물(self-gifting)’을 하는 것이 트렌드로 부상 중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역시 싱글족이 늘어나고 있고,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자신에게 선물하는 ‘셀프 선물’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미국 성인 인구의 약 절반이 싱글이고, 많은 젊은이들이 더이상 낭만적인 로맨스를 일상의 최우선에 두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덧붙였다. 이보다 며칠 앞선 지난 6일에는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연애보다는 비디오 게임이나 드라마를 더 선호한다고 답한 영국과 프랑스 20대들의 인식조사 결과를 전하기도 했다.

지난 15일 본보 2면에 실린 〈“예능으로 대리만족” 밸런타인데이도 못 깨운 연애세포〉라는 제목의 트렌드 기사도 어딘가 씁쓸함을 남겼다. 요즘 2030, 이른바 MZ세대로 대표되는 90년대생 청춘들은 어째서 가장 본능적이고 기본적인 이성과의 관계 맺기에 심드렁한 걸까. 기사에는 이런 표현들이 등장한다. “연애는 손해” “연애하지 않는 것은 드는 노력만큼 행복이 느껴지지 않아서…” “연애 대신 취미생활” “연애 대신 자기계발” “연애는 그저 비싼 취미”. 미혼남녀에게 물었다는 설문조사에서도, 10명 중 7명은 ‘지금 연애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기자가 20여 년 전으로 돌아가 요즘 MZ세대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다. 잠깐 빙의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의 대한민국 2030 여성 직장인이라면 연애와 결혼, 출산으로 이어지는 인생의 그림이 너무나도 버겁고 부담스럽게 와닿았다. 연애가 주는 즐거움과 행복감은 있겠지만, 결혼은 또다른 문제이며, 여성으로서 출산은 더더욱 무거운 책임감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도무지 내려앉을 줄 모르는 집값의 무게는 어떻게 감당할 것이며, 결혼으로 인해 포기해야 하는 소소한 나만의 일상, 시간, 돈, 취미 같은 ‘기회비용’을 뛰어넘을 만큼 가치있는 선택인가에 대한 확신도 들지 않았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받아들이자니 앞으로의 미래가 불안하고 걱정스럽고, 제대로 헤쳐나갈 자신도 뚝 떨어졌다. 연애하지 않고, 결혼하지 않아서 외로울지 모른다는 막연한 심란함보다 훨씬 더 명확하게 예측가능한 암울함이, 연애-결혼-출산이라는 길에 켜켜이 놓여있을 게 뻔하게 그려졌다.

심리적 무게감 외에 현실적 비용 문제도 발목을 잡는다. 객관적으로 소득 수준이 중하위층인 2030세대의 결혼 의향이 낮은 것은 물론이고, 실제로 어느 정도 여유가 있더라도 주관적으로 자신의 소득 수준을 낮게 인식해 아직은 결혼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사회경제적으로 ‘지금의 나는 결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라고 인식하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나 하나도 건사하기 어려운데 연애-결혼-출산이 가당키나 하겠느냐’는 열패감이 번져 있다.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과시하는 문화가 확산되고, 수많은 비교 대상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경쟁으로 내몰리며,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신경 쓰다보니 자신의 현 상황에 대해 열등감과 우울감만 더 커지게 되는 ‘지위 불안’ 현상도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보니, 그들은 연애와 거리두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비혼이 디폴트값이 된 데다 어느새 ‘결혼은 중산층 이상의 문화’라는 자조 섞인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안타까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는 90년대생 청춘들이 마음껏 연애하고, 까짓것 결혼해보길 권한다. 연애-결혼-출산의 과정에서 일어날 불안과 걱정은 이미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니까, 진정한 반쪽과 한 팀이 되어 꽉찬 애정과 탄탄한 신뢰를 방패 삼아 인생의 여정을 탐구하다 보면, 가능성이 열리고 행복이 함께할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더구나 부모로서 자녀가 주는 커다란 즐거움 또한 겪어보지 않고는 모르지 않는가. 지나치게 낭만적인 권유일까. 물론 국가와 기성세대가 사회경제적 여건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 지원이 빠르게 실행돼야 한다. 2030세대가 그들 인생의 어느 측면을 걱정하고 있는지, 어떤 부분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국가와 기성세대가 면밀하게 살펴보고, 다가올 미래에 겁 먹지 않아도 된다고, 조금은 맘 편히 사랑을 시작해도 된다고 다독이며 안전망을 세워주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연애-결혼-출산이라는 일련의 과정은 국가를 지탱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예쁘고 달콤한 청춘들의 밸런타인데이가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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