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학부모의 봄방학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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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진 디지털총괄부장

봄방학 학원 일정 잡기 고통
여전한 공교육 대한 믿음 부족
영수캠프 늘봄학교 시행에 기대
현장 혼선 불안 요소로 남아

개학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봄방학 동안 학교에서는 새로운 학기 준비합니다. 학부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교과서에 이름은 적었는지, 가정통신문이 가방에 잘 들어가 있는지, 실내화가 작아지거나 더러워지지는 않았는지 등을 확인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방과 후 시간표를 짜는 일입니다. ‘방과 후 시간표’라 쓰고 사실상 학원 시간표를 짜는 일이지요.

“무슨 학원 시간표를 짜냐, 돈을 주고 등록을 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동네에서 인기 있는 학원에 들어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동네를 벗어나 부산 학부모들 사이에서 이름이 오르내리는 유명한 학원에 등록하려면 ‘레벨 테스트’를 통과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 레벨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한 학원도 별도로 있을 정도이니 학원 일정 잡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여기에 주머니 사정까지 고려하면 시간표 짜기 난도는 더 높아집니다. 지난달 발표된 ‘2023년 부산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산지역 월평균 사교육비는 60만 9000원입니다. 부모 욕심에 피아노, 수영, 축구 등 예체능 과목까지 추가한다면 그 비용은 더 늘어납니다.

부모들이 왜 이렇게 기를 쓰고 학원을 보내려 할까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공교육’을 믿을 수 없어서일 겁니다. 교육청에서는 공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방과후교실’을 활성화한다고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도 좁고 시간도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더 솔직한 마음은 ‘성적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이 부족하다’일 겁니다. 방송댄스, 배드민턴, 축구와 같은 좋은 프로그램도 많습니다. 하지만 왠지 ‘이상적’으로만 보이는 것 같습니다. ‘빡세게’ 공부시켜 주는 학원에 마음이 더 가는 것을 보니 어쩔 수 없는 한국 부모인가 봅니다.

부영그룹이 최근 내놓은 출산장려금이 화제가 된 것도 같은 이유인 것 같습니다. 부영그룹은 2021년 이후 태어난 자녀 1인당 1억 원의 출산 장려금을, 셋째부터는 1억 원을 받거나 국민주택 규모의 영구임대주택에 무상으로 살 수 있게 했죠. 자녀 양육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경제적 부담이기에 부영의 화끈한 장려금 정책이 인기를 얻은 것 같아 보입니다.

방과 후 시간표를 짜다 보면 여러 제약 사항에 부딪힙니다. 경제적인 부분도 부분이지만 학원차가 오지 않기도 하고, 인원이 빨리 차서 자리도 없기도 하죠. 부모들의 한숨이 늘 수밖에 없습니다. 이 한숨은 이사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대부분 유명 학원, 대형 학원들은 학군이 좋다고 평가받는 곳에 몰려 있으니까요. 이 때문에 인기 학군지는 부모의 수요가 몰리기에 부동산 가격도 항상 높게 형성되어 있기도 합니다. 결국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이들만이 갈 수 있죠. 실제로 부산지역 고교생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지역별로 66만 원 이상 차이가 납니다. 집안의 경제력이 학업 성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셈이지요.

그래도 좋은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부산시교육청이 중1 학생을 대상으로 겨울방학 동안 처음 진행한 ‘인성 영어·수학 캠프’(영수캠프)와 ‘위캔두 계절학교’(계절학교)가 학생 교과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번 영수캠프와 계절학교에는 부산 중1 학생 380명과 132명의 학생이 각각 참가했는데요. 영수캠프는 국립부경대·동의대 등 5개 대학에서 기숙형으로, 계절학교는 영도구 영도제일중학교에서 통학형으로 진행됐습니다. 참가 학생들은 퇴소일에 실시한 진단평가에서 입소일 진단평가에 비해 영어와 수학 평균 점수가 각각 13.82점, 13.99점씩 올랐습니다. 영어와 수학 성적이 올랐는데 학부모의 만족도는 물을 필요가 없죠.

늘봄학교가 올해 1학기 부산 모든 초등학교에서 시행된다 하니 기대도 됩니다. 늘봄학교는 돌봄 공백과 공교육 강화를 위해 부산시교육청이 전국 최초로 시행하는 사업인데 지역 내 어린이 돌보기에 시교육청은 물론 지자체, 대학, 공공기관이 모두 힘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또 시교육청은 현재 예체능 중심인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다양화해 실질적인 도움이 될 ‘학습형 방과후학교’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학교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된다. 이 계획대로라면 학부모의 봄방학이 조금은 평온해질 것 같기는 합니다. 사교육 인프라가 좋은 곳으로 굳이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되니 좋은 학원에 못 보내는 미안한 마음도 줄어들 것 같고요. 지역별 사교육에 의한 격차가 줄어든다면 그것대로 좋을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여전히 이른 것 같습니다. 아직 현장은 교사를 어떻게 구하느냐, 프로그램을 어떻게 구성하느냐 등 혼선이 가득합니다. 내년 봄방학은 좀 편안할 수 있을까요? 공교육을 맘 편히 믿어도 되는 날이 올까요?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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