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손 편지가 쓰고픈 봄날이다

강성할 기자 shg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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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할 독자여론부장

편지는 정성 깃든 손 편지가 제맛
소중한 사람에게 줄 최고의 선물
힘들 때 보면 큰 힘이 되는 성물
읽는 사람 생각하는 배려심 있어야

최근 일본 지인이 보낸 편지를 한 통 받았다. 18년 전 일본 후쿠오카 서일본신문 파견 시절 인터뷰했던 성악가였다. 당시 일본의 ‘욘사마’ 열풍을 취재하다 인연이 돼 지금까지 가끔 안부를 전하고 있다. 물론 간편하고 편리한 이메일로. 손편지는 처음이다. 손편지를 보니 마치 그 사람이 내 눈 앞에 나타난 것 같았다.

왠지 좋은 소식이 담겨 있을 것 같았다. 설레임에 한동안 뜯지 못하고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한참 뒤 개봉한 편지에는 그 성악가가 서툰 한글로 안부를 물었다. 요즘 인쇄된 글만 받아보았던 기자에게 한 글자 한 글자 눌러쓴 손편지는 설레임을 넘어 큰 감동을 주었다.


기자가 중학생 시절 때만 해도 외국인과 펜팔을 하는 게 큰 유행이었다. 영어도 배우고 외국인 친구도 사귈 수 있는 ‘이중 혜택’ 때문이었다. 완벽하지 못한 영어로 썼다 지웠다를 반복해 결국 수일만에 완성한 편지를 보내고 수개월 동안 답장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과 답장을 받았을 때의 설레임은 이루 말로 다 하지 못할 정도다. 하지만 짧은 영어 실력에 그 설레임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 설레임이 일본 성악가의 손편지에서 다시 살아난 것이다.

휴대전화 문자, 카톡과 이메일이 교류 수단이 돼버린 요즘. 손편지는 귀한 선물로 와닿았다. 휴대전화 문자 등은 바쁜 현대 사회에 소통도구는 될 수 있지만, 사람의 따스한 마음을 전달하기에는 부족하다. 이를 메우기 위해 이모티콘을 사용해 보기도 하지만, 영 시원찮다.

직접 쓴 편지에는 편지지와 봉투를 고를 때의 정성, 글자를 쓸 때의 노력, 받는 사람을 향한 그리움 등이 더해진다. 직접 쓴 편지는 단순한 소통을 넘어 마음을 전달해 감동을 준다. 전세계 유적지에서 발굴되는 부자 간, 부부 간의 편지는 깊은 정을 담고 있어 애틋한 감동을 전한다.

남녀 간의 편지는 사랑의 징표이자 상대를 그대로 투영하는 물건이다. 오가는 편지에서 사랑이 싹트고, 사랑하는 마음을 편지로 주고받는다. 그 편지 속에서 사랑이 자라고 결실을 맺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멀리 떠났을 때 가장 소중한 것이 그 사람과 오고간 편지다. 편지를 보면서 추억을 그리워하고 웃고 울기를 반복하며 사랑을 기다린다.

이별에서도 편지는 큰 역할을 한다. 상대방이 나를 버리고 떠났을 때 가장 먼저 찾는 것도 편지다. 편지를 찾아서 불태우면서 눈물 속에서 사랑을 보낸다. 편지 속에는 사랑과 우정, 증오, 분노가 녹아져 있다. 편지는 단순한 글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이자 마음인 것이다.

1970년대 가수 어니언스가 부른 가요 ‘편지’는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 손/ 가슴 속 울려주는 눈물 젖은 편지….’ 편지를 글로 쓰기도 하지만 눈물로 쓰기도 한다. 한 글자도 쓰여지지 않은 ‘눈물 젖은’ 편지가 이별을 전하기도 했다.

이처럼 편지는 쓴 사람을 울리기도 웃기기도, 받은 사람을 아프게도 따듯하게도 만든다. 부산의 한 음악가는 유학 시절 힘들 때 자신의 어머니가 써준 편지를 갖고 다니면서 읽었다. 편지 속에서 자신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힘든 시절을 견뎠다.

사실 편지 쓰기는 쉽지 않다. 하얀 종이에 꾹꾹 눌러쓰는 정성이 필요하고 글자가 틀리면 다시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하는 불편함도 감수해야 한다. 무엇보다 편지를 쓰기 위해서는 상대를 계속 생각해야 한다. 또 읽는 사람을 먼저 배려해야 하기도 한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아니라면 가까운 누군가에게 편지 한통을 써보는 것은 어떨까. 요즘처럼 삭막한 세상살이 속에 친구나 가족에게 받은 격려와 응원의 편지는 최고의 선물일 것이다.

악필도 괜찮고, 맞춤법이 틀려도 괜찮다. 정성이 가득 담긴 편지라면 받는 사람에게 반드시 감동을 안겨줄 것이다. 친구에게 전하지 못한 사연이나 가족들에 서운한 마음이나, 선생님에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감사의 마음 등도 상관없다. 두세 장의 긴 글도 좋고, 심쿵할 짧은 몇 마디를 적은 쪽지도 좋다. 좋은 마음이 잘 전해지기만 하면 될 뿐이다.

이마저도 힘들다면 책의 좋은 구절이나 가슴에 담은 영화의 명대사를 소개하는 것도 좋겠다. 만년필의 잉크 향이 묻어 있으면 더 좋겠지만 볼펜으로, 연필로 쓴 편지이면 어떤가. 정성 담아 보내는 손 편지를 써보고 싶다. 왜냐면 봄이 왔다. 따듯하고 싶다.


강성할 기자 shg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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