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우석의 기후 인사이트] 북극해의 이중성: 지킬과 하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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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안정·불안정 교차하며 주기성 보여
온난화로 균형 무너질 가능성 커져
추이 세밀히 관찰해 미래 예측해야

빛과 어둠, 선과 악, 양립할 수 없는 양극성의 힘, 그리고 그 이중성….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인간 본성의 이중성을 탐구하는 깊이 있는 작품이다. 지난해 필자는 ‘북극해와 지구온난화’를 주제로 강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계절에 따른 북극해의 너무나도 상반되는 모습들을 청중에게 어떻게 쉽게 전달할까’를 고민하던 중에 우연히 딸아이가 읽던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 강연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북극의 해빙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예보하는 것은 마치 지킬과 하이드처럼 이중적인 사람의 행동을 미리 내다보는 것과 비슷하다. 한때는 자상하고 침착하며 배려심 많은 지킬의 모습을 보이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돌변하며 화를 참지 못하고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하이드의 모습이 북극해의 변화 모습과 참 많이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북극해의 이런 성질은 북극의 해빙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예측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극해의 모습은 계절에 따라 그 모습이 너무나도 다르다. 정반대의 모습을 담고 있다. 여름철 북극해에는 24시간 태양이 비춘다. 0도에 가까운 온도에 눈이 녹아내려 곳곳에 아름다운 ‘물 웅덩이들’(melting ponds)이 생겨나고 겨울철 바다를 덮고 있던 얼음들이 녹으며 자연의 신비로움을 품은 짙은 파란색의 바다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와 반대로 겨울은 말 그대로 칠흑 같은 어둠이 지속된다. 따뜻한 열기를 제공했던 여름철 태양이 사라지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 뼈까지 날카롭게 스며드는 추위가 밀려온다. 빠른 속도로 얼음이 자라고 끝이 보이지 않는 얼음 세상이 된다.

폭발적으로 반응하는 하이드의 성질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다운 여름철 북극해의 모습에서 나온다. 여름철 북극해에 내리쬐는 햇빛은 표면의 색에 따라 그 흡수율이 달라진다. 얼음이나 눈처럼 하얀색은 약 70%가 넘는 태양 에너지를 반사시키고, 바다와 같이 짙은 색은 약 80%에 가까운 태양 에너지를 흡수하게 된다. 여름철 바다를 덮고 있던 얼음이 녹으면 태양의 열을 효과적으로 흡수하는 조그맣고 아름다운 물 웅덩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얼음 사이사이로 조그맣게 드러난 물 웅덩이들이 높은 흡수율로 태양열을 받아들이고 이 열은 그 주변의 얼음을 재빠르게 녹이기 시작한다. 더 빨리, 더 깊이, 더 많은 얼음이 녹기 시작한다. 이렇게 얼음이 녹고 바다가 드러나면 조그만 일에도 하이드가 폭발적인 화를 내며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듯, 북극해의 얼음도 급격히 빨리 녹으며 순식간에 많은 양이 사라지기도 한다. 조그만 물 웅덩이처럼 너무나도 작은 자극에도 크게 반응하니 언제 어떻게 얼마나 불안정한 상황과 반응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가을이 찾아오면 햇빛이 점차 사라지며 광기 어린 하이드는 조금씩 지킬 박사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열을 주는 햇빛이 사라지고 북극해는 장주기파를 통해 가지고 있던 에너지를 잃어간다. 이 과정은 굉장히 안정적인 과정이다.

여름철 얼음이 많이 녹았다면 빠른 속도로 얼음을 생성시키고, 여름철 얼음이 평소보다 덜 녹았다면 느린 속도로 얼음을 생성시켜 결과적으로 지난해와 비슷한 얼음의 양으로 되돌아가려 한다. 광기 어린 하이드가 집안의 물건을 던지고 부수어 놓은 것을 돌아온 지킬 박사가 그 던져진 물건들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집안의 곳곳을 청소하면서 예전의 모습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북극해는 매년 정기적인 주기성을 바탕으로 일정한 시간에 불안정과 안정을 되찾으며 균형을 회복한다.

하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온난화는 이러한 북극해를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여름철 하이드의 변덕스럽고 폭력적인 성격이 더 강화되고 있으며 지킬은 이를 되돌리려고 더욱 바빠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킬이 마지막을 자살로 마무리한 것처럼 어느 순간 이 균형이 무너질 수도 있다. 이것이 필자를 포함한 우리 과학자들이 걱정하는 면이다.

북극해가 얼마나 빠르게 변하고 있는지를 우리는 세심하게 관찰하고 이를 통해 가까운 미래의 상황을 예측해야 한다. 온난화라는 외부적인 요인이 없어도 변덕이 죽 끓듯 하고 조그만 일에도 불 같이 화를 내는 하이드를 막아내는 지킬의 시스템을 더욱 주의 깊게 연구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올 겨울도 지킬을 만나려 영하 40도의 추위와 사나운 파도를 뚫고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향해 북극으로 과학자들이 떠난다고 한다. 그들을 응원하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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