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화의 크로노토프] 대한민국 예술수도 부산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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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음악 칼럼니스트

오페라하우스 건립에 설레는 음악가들
한국 최초의 제작극장 시스템 안착 땐
예술 가족 몰려드는 ‘문화의 심장’ 기대

‘고령화’를 말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고령사회를 넘어 ‘인구소멸’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특히 부산은 ‘노인과 바다의 도시’라 불리며 ‘지방소멸’이라는 끔찍한 경고 앞에 서 있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감소 위기 속에서 부산은 자연적 인구감소와 수도권 집중화, 생산가능인구 유출로 급격한 초고령화가 진행되는 도시다. 여러 데이터 분석을 보면, 청년 3명 가운데 1명이 직장을 찾아 부산을 떠났거나 떠날 계획이라 한다.

2023년 기준 나라살림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국토 면적의 12%밖에 차지하지 않는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약 51%가 살고 있다. 수십 년간 외쳐온 국토 균형발전은 공허해졌다. 수도권 인구집중 현상의 주된 원인은 일자리다. 그다음 거론되는 것이 의료시설과 문화시설의 차이다. 그런데 이 두 경우는 순위에 큰 차이가 없다 한다. 그만큼 삶에 있어서 문화생활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지역 의료시설이나 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지는 솔직히 모른다. 하지만 문화, 그중에 특히 음악과 관련된 일을 생각한다면 방법이 있다. 가장 중요한 일은 기초예술을 위한 제대로 된 제작극장을 만드는 일이다. 부산에 새로 생기는 오페라하우스가 명실상부한 제작극장 역할을 다한다면 최소 500여 명의 일자리가 생긴다. 동반되는 가족까지 합치면 적어도 10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산에 직접 거주하게 되는 셈이 된다.

1000여 명이 근무하는 미국 뉴욕 메트 오페라의 경우 파생 일자리가 4900여 개에 이른다 한다. 이처럼 제작극장은 대개 3배에서 5배 정도의 파생 고용 시장이 만들어진다. 예술가 한 명의 직접 고용이 지역 거주민의 직접적인 증가와 간접적인 일자리 창출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증거다. 쿠사마 야요이의 점박이 호박으로 유명해진 일본 나오시마는 약 3000명이 사는 작은 섬이지만 연간 70만 명의 관광객이 몰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섬 자체가 ‘미술관’이 되어 관광 도시의 상징이 되었다. 제작극장이 만들어지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음악 관련 예술가들이 살 수 있는 도시 부산이 된다. 충분히 그들을 부를 수 있다. 그들은 부산에 살며 아이도 키울 것이고, 다양한 나라에서 경험했던 노하우와 상상력으로 더 나은 부산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부산이 음악인들이 모여 사는 독일 베를린 같은 도시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요하네스 라우는 독일에서 가장 큰 주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총리를 20년간 역임했고, 1999년부터 2004년까지 독일 대통령을 역임하면서 ‘문화 대국’ 독일을 만들었다. 그는 예술과 문화의 공적 지원을 강조하며 “예술과 문화는 반죽에 들어가는 효모”라며 “효모가 들어가지 않은 반죽은 빵 대신 돌덩어리만을 얻게 될 것”이라 했다. 예술과 문화에 공적 지원을 하지 않는 것은 “공동체 사회를 지구 중심까지 추락시키는 일”이라 강조했다. 그가 만들어 낸 이런 환경과 분위기는 지금도 수많은 예술가를 베를린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2026년 오페라하우스가 문을 열었을 때의 부산을 생각해 본다. 부산이 선도적으로 제대로 된 대한민국 최초의 제작극장을 선보인다면, 부산은 음악가가 가장 많이 몰리는 도시가 될 것이다. 머지않아 대한민국 예술의 중심도시가 될 것이다. ‘해양수도’이자 ‘예술수도’가 될 것이다.

지금 국내의 뜻있는 음악가들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수백 명의 음악가들이 고국에 제작극장을 요구하고 있다. 제작극장은 공공극장이 예술가를 직접 고용하고 공연을 자체 제작하여 시즌제로 운영하는 레퍼토리 시스템이다. 예술을 공부하고 예술가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 제공은 지방인구 소멸과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방안이다. 동시에 시민들에게는 더 나은 예술 향유 환경을 제공하고 극장의 문턱을 낮추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일찍이 김구 선생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라며 “높은 문화의 힘”으로 이를 이룰 수 있다 했다. 부산에 제대로 된 제작극장이 생기면 상서로운 구름이 모이듯 각지에서 흩어진 한국 예술가들이 모일 것이다. 인구도 늘 것이며, 예술의 힘으로 활력 넘치는 도시가 될 것이다. 그들이 모여서 부산이란 가마솥에서 문화와 예술을 꽃피우게 만들자. 세계 각지에서 배웠던 그들의 경험은 부산을 발전시키는 데 충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바야흐로 봄이다. 언 땅을 뚫고 새싹이 돋고 수많은 꽃이 핀다. 부산 문화의 봄을 새로이 만들자. 풍요롭고 충만한 예술문화 덕분에 세계 각지에서 많은 예술가가 끊임없이 모여드는 역동성 넘치는 해양수도 부산, 예술수도 부산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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