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엄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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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 소설가

지금 거대한 힘이 서로 다투고 있다.
아이의 다리 한 쪽씩을 잡고
서로 내 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생명을 위해 눈물을 삼키며
양육권을 포기하는 진짜 어머니도 없다.
두 다리가 찢어지며 울부짖는 아이만 있을 뿐이다.

며칠 전, 서울에서 근무하고 있던 딸아이가 연락도 없이 집으로 왔다. 경황없이 집으로 온 딸은 친구 부친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문상을 가야 한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딸과 친하게 어울려 다녔던지라 나도 기억하는 친구였다. 친구 아버지도 나와 연배가 비슷할 텐데 싶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문상 다녀온 딸에게 자초지종을 들으니 절로 한탄이 나왔다. 친구 아버지는 간이 좋지 않아 조만한 간 이식을 받을 예정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두 딸이 공여자 검사까지 끝내고 수술 날짜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 아버지의 상태가 나빠져 긴급히 조치를 받아야 했는데, 수술은커녕 응급조치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근처 대학병원에선 의료진이 없다며 거부했고, 이 병원 저 병원 응급실을 전전하다가 결국 구급차 안에서 숨을 거뒀었다고 한다.

그 가족이 겪은 가슴 아픈 일에 애도를 표하면서도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닥친 현실이라는 생각에 새삼 두려움이 밀려왔다. 대부분 건강한 사람들은 중환자실과 응급실을 오가는 절박함을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건강하다는 이유로 이웃의 불행에 무심해도 될까 싶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우리 누구도 이런 사태에 자유로울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양측이 발표한 자료와 주장들을 찾아봤다. 대체 무슨 상황이기에 이런 의료 공백이 발생한 것일까? 국민 건강을 책임지겠다며 발표한 정부 정책에 전공의가 사직하고, 의대 교수들까지 일괄사직서를 제출한 사태가 왜 일어난 것일까? 내가 모르는 속사정과 어떤 불합리한 이유가 있어서 저렇게나 서로 대치하는 것일까?

서로의 주장을 찾아볼수록 두 개의 거대한 힘만 두드러지게 보였다. 정부야 두말할 것 없는 국가권력이다. 한데, 의사 또한 국민 건강과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국가와는 또 다른 거대한 힘이라는 것을 여실히 과시하고 있었다. 이런 힘겨루기를 보니 솔로몬의 판결 이야기가 떠오른다. 두 여인이 갓난아기를 놓고 서로 자신의 아이라고 다투는 이야기.

정부는 지역의 필수의료 위기에 대처하고 의료개혁을 단행하기 위해 의과대학 정원을 2000명 증원한다고 발표했다. 의료계는 일방적인 의대 증원은 추후 의료계를 붕괴시킬 것이며, 국민 건강을 위해 원점에서 재검토하자고 주장했다. 모두가 국민 건강과 국가 의료시스템을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부 정책에는 의대 입학 증원 수를 못 박은 것 외에는, 관련되어 예상되는 부작용 대책이나 후속적인 정책은 찾아볼 수가 없다. 심지어 예상된 의사 반발에 대한 대책도 없었다. 더불어 이대로라면 한국 의료계가 붕괴할 것이라는 의료계의 주장을 아무리 살펴봐도 지금 응급체계를 마비시켜야 할만치의 당위성을 찾기 힘들었다. 오히려, 우리는 이만큼 큰 힘을 가지고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그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처럼 보였다. 또 정부는 팬데믹 시기에 한 번 실패했으니 이번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는 의지만 가득 차 보인다. 그래서 선거가 끝나면 정부 태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혹은 의사라는 직업이 직업 피라미드의 첨탑에 자리 잡은 것부터가 비정상이라는 냉소가 냉소로만 들리지 않는다.

지금 거대한 힘이 서로 다투고 있다. 국민 건강이라는 아이의 다리 한 쪽씩을 잡고 서로 내 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현명한 판결을 내리는 솔로몬이 없다. 내 아이의 생명을 위해 눈물을 삼키며 양육권을 포기하는 진짜 어머니도 없다. 두 다리가 찢어지며 울부짖는 아이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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