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의 생각의 빛] 4월에 내리는 꽃비가 우리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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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항쟁과 혁명, 참사… 별이 된 지상의 꽃들
‘아름다움’과 ‘덧없음’의 교차 속에서
생명·죽음의 순환 지켜보고 견뎌내는 시간

어김없이 찾아온 봄소식에 연일 꽃구경을 가고, 꽃 사진을 찍어 올린다. 마치 조금이라도 멋진 사진을 올리기 위해 경주라도 하듯 사람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게시하는 꽃들을 보고 있으니, 진짜 꽃구경에 시간을 내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사진만으로도 배가 부를 지경이다. 이렇듯 봄은 우리에게 설렘과 반가움을 주는 계절이다. 4월에 피는 꽃 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게 벚꽃이다. 어디에 피든 아름답고 예쁜 벚꽃은 요즘이 절정이다.

사람들이 꽃을 보며 즐거워하고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한 적이 있다. 단지 눈 호강을 해주는 예쁜 식물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고 짐작한다. 언젠가 울긋불긋한 꽃 이파리들이 떨어져 사라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영원히 지속되는 아름다움이란 없다는 사실을 우리 인간은 ‘선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잠시 나왔다 지워지거나 멀어지는 존재에 한 번이라도 더 눈을 마주치고 싶은 것이다.

벚꽃에 부여한 여러 꽃말 가운데 ‘삶의 덧없음과 아름다움’이 있다. ‘덧없음’과 ‘아름다움’이 결합된 꽃말은 여러 생각을 안긴다. 덧없기에 아름다운 것인지, 아니면 아름답기에 덧없는 것인지 그 두 단어의 조합은 한편으로 인간 삶과 세계가 지니는 모순과 아이러니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형식이 아닐 수 없다. 덧없음은 우리에게 슬픔을, 아름다움은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 봄의 절정인 4월, 한 해를 맞이하면서 기나긴 겨울 차갑게 얼어붙었던 세계 표면 아래 숨죽여 자라던 새싹이 땅을 뚫고 우리 곁으로 보란 듯이 손짓하는 4월에 나는 생각한다.

이 푸른 4월도 지나면 1년의 허리를 거의 잡아먹어 어느덧 중순을 맞이하면서 여름이라는 더운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란 사실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손짓하며 설렘을 안기는 꽃들도 사그라지면서, 자연은 초록의 짙은 그늘 속으로 우리를 또다시 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4월이다. 이맘때면 사람들이 한 구절씩 읊조리곤 하는 시 구절이 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문구를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미국 태생의 영국 시인 TS 엘리엇의 유명한 장편시 ‘황무지’는 바로 그 문구로 시작된다.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엘리엇이 이 시를 발표한 때는 1922년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겪은 뒤 극심한 허무와 황폐함을 느꼈던 서구인들의 자화상을 반영했다는 게 보통의 해석이다. 엘리엇은 시를 시작하기 전 당대 유명한 모더니즘 시인이었던 에즈라 파운드에게 바치는 헌사 형식의 ‘서시’에서 다음처럼 적었다.

‘한 번은 쿠마에의 무녀가 호리병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지요. 아이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물었을 때, 무녀는 대답했지요. 죽고 싶어.’ 아폴로 신이 허락한 소원에 대한 응답으로 쿠마에(Cumae)의 무녀 시빌(Sibyl)은 한 줌의 모래를 들고 와서 이 모래알 숫자만큼 생명을 갖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시빌은 점점 노쇠해지지만 영원히 죽지 않고 목소리만 남아 저주받은 채로 ‘죽음’만을 갈망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신화와 역사의 혼재 속에 전승된 쿠마에 무녀 이야기는 종종 예술 작품에 형상화되는 유명한 소재다. 쿠마에의 무녀는 생명을 얻은 대신, 젊음을 빼앗긴 영원한 형벌로서 죽지 않고 점점 우글쭈글하게 쪼그라드는 살갗으로만 남은 것이다. 마지막 한 알의 모래가 떨어지면 다시 뒤집혀 새로운 시간을 견뎌야 하는 모래시계를 떠올리면 된다.

우리는 4월을 지나며 생명이 지닌 힘과 신비로움에 감탄하지만 끝내 푸르름은 잿빛으로 뒤덮일 것이다. 그 우중충한 잿빛은 언제 아름다움을 피워올렸냐는 듯 기억에서 소멸될 것이다. 생명은 영원하지 않지만 살아있는 순간만큼은 죽음이라는 이름의 사태를 애써 불러내고 싶지 않은 게 우리들 마음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지고 말 꽃이기에 마치 꽃을 보는 자신의 생명을 관조하듯 멀리서나마 지켜보는 것이다.

우리에게 4월은 툭, 꺾여버린 꽃가지와 잎들이 되살아나 마치 영원한 삶을 부여받았지만 죽은 생명이나 마찬가지였던 쿠마에의 무녀에게 물음을 던지는 아이들 입처럼 우물거리는 듯하다. 제주 4·3 항쟁과 4·19 혁명, 그리고 4·16 세월호 참사 속에서 별이 된 지상의 꽃들이 우리에게 묻는다. 비처럼 쏟아지는 무수한 꽃잎들이 울긋불긋한 모양새를 한 축제 속 인파들처럼 왁자지껄한 우리에게 묻는다. 미처 울지도 못하고 속울음을 간신히 막은 채로 하늘로 올라간 영혼들이 지상에 남아 영원히 살 것처럼 떵떵거리며 짖어대는 우리에게 묻는다. 모래시계 속에 갇혀 청맹과니처럼 하루하루 견뎌야 하는 우리에게 4월에 내리는 꽃비가 몰려들어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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