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벼 먹으니 더 맛있네…액션·로맨틱 코미디 다 잡은 ‘스턴트맨’ [경건한 주말]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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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시4’ 기세가 무섭습니다. 개봉 7일 만인 지난 1일 벌써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소식입니다. 1180만 관객을 모은 올해 상반기 최고 히트작 ‘파묘’보다 사흘 빨리 관객 500만 명을 달성했습니다.

분위기 좋은 극장가에 활기를 더해 줄 작품이 개봉했습니다. 근로자의 날인 지난 1일 개봉한 ‘스턴트맨’은 할리우드 스타들을 내세운 볼거리 넘치는 팝콘 무비입니다. 어린이날 연휴인 4~6일, 극장에서 가볍게 보기 딱 좋은 영화로 추천합니다.

영화 ‘스턴트맨’. 유니버설픽쳐스 제공 영화 ‘스턴트맨’. 유니버설픽쳐스 제공

‘스턴트맨’은 제목 그대로 스턴트맨을 주인공으로 합니다. 영화는 할리우드 최고의 스턴트맨인 콜트(라이언 고슬링)가 촬영 중 추락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 추락을 계기로 콜트의 인생도 추락합니다. 몸보다 마음을 더 크게 다친 콜트는 자책감과 실의에 빠져 영화의 원제인 ‘The Fall Guy’가 되고 맙니다. ‘fall guy’는 문자 그대로는 ‘추락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희생양’ ‘얼간이’ ‘패배자’ 등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관용어이기도 합니다.

‘패배자 마인드’에 빠진 콜트는 그 길로 업계에서 잠적합니다. 심지어 촬영 현장에서 만난 연인 조디(에밀리 블런트)와 ‘잠수 이별’을 하고는 후회의 나날을 보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콜트에게 조디와 재회할 기회가 생깁니다. 영화감독이 된 조디의 밑에서 스턴트맨으로 일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멜로 영화 같은 재회를 기대한 콜트. 그러나 잠수 이별을 당했던 조디의 반응은 차갑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디 영화의 주연배우 톰(애런 존슨)이 행방불명되고, 그를 찾아 나선 콜트는 예상치 못한 곤경에 빠집니다.

영화는 액션과 로맨틱·코미디 사이에서 외줄을 타며 독특한 재미를 구현합니다. 균형은 액션 쪽으로 좀 더 기울긴 했습니다. 콜트가 톰을 찾는 과정에서 생기는 돌발상황들을 통해 박진감 넘치는 액션을 선보이는데, 그 수준이 상당합니다.

사실 이 영화를 연출한 데이빗 레이치 감독은 스턴트맨 출신이자 액션 연출 전문가입니다. ‘존 윅’(2015), ‘아토믹 블론드’(2017), ‘데드풀2’(2018), ‘분노의 질주: 홉스&쇼’(2019), ‘노바디’(2021), ‘불릿 트레인’(2022) 등 액션 영화 마니아라면 모를 수가 없는 수작을 연거푸 만들었습니다.

영화 ‘스턴트맨’. 유니버설픽쳐스 제공 영화 ‘스턴트맨’. 유니버설픽쳐스 제공

이번 작품 역시 맨몸 혈투부터 차량 추격과 전복, 폭발, 헬기를 동반한 고공 격투까지 웬만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못지않은 규모의 액션을 자랑합니다. 컴퓨터그래픽(CG)보다는 실제로 액션을 구현하는 데 주안점을 둬 현실감이 넘치고 눈이 즐겁습니다. 수준 높은 액션을 연출하기 위해 공을 많이 들인 티가 납니다. 극이 막바지로 갈수록 액션과 갈등의 강도가 강해지는 완급조절도 훌륭합니다.

‘데드풀2’ 감독다운 위트도 엿보입니다. 콜트가 ‘전 여친’ 조디 때문에 ‘찌질’해지는 모습을 B급 감성으로 연출한 장면들이 소소한 웃음을 자아냅니다. 또 유명한 대작들을 오마주한 명대사와 언어 유희, 미국식 블랙코미디를 잘 버무린 덕에 영화와 영어에 빠삭한 관객이라면 더욱 즐겁게 관람할 수 있습니다.

음악과 편집도 재치 있었습니다. 레트로 명곡을 적재적소에 녹여내 극적인 효과를 더하고, 촌스러울 수도 있는 편집 방식도 세련되게 살리는 등 레이치 감독의 노련미가 돋보이는 순간들이 재미를 더합니다.

캐스팅은 ‘신의 한 수’입니다. 영화 속 콜트는 ‘탈인간’ 액션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능력자인 동시에 어딘가 부족한 면이 있는데, 라이언 고슬링은 이런 양면적인 매력을 가진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했습니다. ‘바비’(2023)에서 보여 준 ‘찌질남’ 매력과 넷플릭스 영화 ‘그레이맨’(2022)에서 과시한 액션 스타로서의 매력을 가감 없이 뽐냅니다. 고슬링을 ‘라라랜드’(2016) 속 스윗한 멜로 주인공으로만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그의 잔뜩 성난 이두근과 거침없는 ‘상남자’ 액션에 반전 매력을 느끼게 될 겁니다.

고슬링과 호흡을 맞춘 에밀리 블런트 역시 호연을 펼쳤습니다. 극 중 조디 역시 자기 일에 열심인 주체적인 여성이면서도 옛 사랑을 놓지 못하는 ‘찌질 모먼트’가 있는 캐릭터인데, 에밀리 블런트의 호소력 짙은 연기가 맞물려 시너지를 일으켰습니다. 간간이 나오는 블런트의 맨몸 액션도 과연 명불허전입니다. 두 주연 배우가 호연을 펼친 덕에 다소 급작스러운 전개에도 극 중 인물의 감정에 어렵지 않게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 ‘스턴트맨’. 유니버설픽쳐스 제공 영화 ‘스턴트맨’. 유니버설픽쳐스 제공

아쉬운 대목도 있기는 합니다. 전체적으로 개연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것이 제일 큰 단점입니다. 무게감 있는 액션 영화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유치하고 비현실적인 전개에 실망할 수 있습니다. ‘데드풀’식 B급 감성이나 미국식 유머와는 코드가 맞지 않는 관객도 별 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일부 설정은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지고, 억지스러워 보이는 대화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아쉬운 점일 뿐, 집중을 크게 해칠 정도는 아닙니다. 가벼운 오락 영화인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입니다.

오히려 영화는 의외의 감동 포인트까지 놓치지 않았습니다. 전반적으로 사랑을 메시지로 내세우지만, 꿈과 열정에 대한 대사가 공감을 부릅니다. 또 주인공이자 영화 소재인 스턴트맨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는데도 조명을 받지 못하는 ‘언더독’ 포지션인 덕에 ‘탑독’인 빌런을 무찌를 때의 쾌감이 배가됩니다.

스턴트맨을 향한 헌정은 메이킹 필름을 통해 바쳤습니다. 영화가 끝나면 실제로 촬영 현장에서 찍은 살신성인 스턴트 액션 영상을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보여줍니다. 청룽(성룡) 영화가 떠오르는 이 메이킹 필름이 끝나면 짧은 쿠키 영상도 나오니, 객석에서 급히 일어나지 말고 보이지 않는 ‘언성 히어로’들의 활약을 잠시 감상해 볼 것을 권합니다.

영화 ‘스턴트맨’. 유니버설픽쳐스 제공 영화 ‘스턴트맨’. 유니버설픽쳐스 제공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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