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대한민국의 위기와 보복 정치에 빠진 정치권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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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성 기획취재부 차장

요란스러웠던 총선이 끝났다. 이번 총선을 지켜보면서 절실하게 느낀 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정치권이 양극단으로 치달으며 이상향(유토피아)를 제시하는 역할을 하기는커녕, 대립과 반목의 디스토피아로 향하는 위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확신이다.

〈부산일보〉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이 가진 ‘정치적 확증 편향’이 총선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얼마나 심각한지 들여다보는 기획 기사를 게재했다. 정치적 확증 편향이 심각할 것이라는 가설로 시작해, 정치적 확증 편향에 빠지기 쉬운 정치 이슈와 정보를 직접 엄선해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결과는 기획 의도와 어긋남이 없었다.

다행스럽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치적 양극화의 심각성을 마주하며 뒷맛은 영 개운치 않았다. 기획을 자문한 김대경 동아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설문 결과에 대해 “확증 편향을 증폭하는 미디어 알고리즘과 정치권의 대립, 혐오가 국민들을 감정적이고 정서적으로 반응하게 하고, 이는 정치 이념을 고착화·강화해 정치적 집단화와 양극화를 심화시킨다”고 평가했다. 이어 “집단화되고 양극화된 정치 세력은 특검법을 위시한 정치적 보복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대놓고 복수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등 보복과 복수의 정치로 흘러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총선 이후 보복과 복수의 정치가 현실화될까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또 다른 하나는 총선 과정에서 쏟아진 각종 공약을 톺아볼 때 국가균형발전은 더욱 요원할 것 같다는 암울한 현실 자각이다. 수도권에선 광역급행철도(GTX) 사업 공약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경기 외곽에서 서울 중심부까지 30분 내에 이동할 수 있도록 계획된 GTX는 최근 GTX-A 노선 부분 개통을 통해 본격적인 수도권 GTX 시대를 열었다. GTX-B·C 노선 착공과 GTX D·E·F 노선의 국가 철도망 계획 반영도 정부와 정치권의 높은 관심와 지원 속에 일사천리로 추진될 기미다. GTX 노선의 수혜가 예상되는 수도권 부동산 시장도 덩달아 달아오르는 분위기다.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과 대기업 유치, 서울 개발 제한 해제 후 대규모 개발 추진, 김포 등 서울 인접 지역 서울 편입 공약…. 수도권 공화국의 위상은 더욱 공고해지고, 지역 청년들은 그 블랙홀에 더욱 빨려들어갈 기세다. 거대 양당은 이번 총선에서도 우리나라 인구의 과반이 사는 수도권 공약에 공을 들였고, 지역과 균형 발전은 뒷전이었다.

총선이 끝난 지금, 대한민국은 또다시 어두운 터널 앞에 서 있다. 야당은 강력한 의회 권력을 거머쥐었고, 여당은 개헌선 저지를 위안으로 삼는다. 향후 정국 방향도 눈앞에 그려진다. 국회와 정부는 엇박자를 내고, 국회의 잇단 특검법 발의,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정부의 시행령 통치로 다음 대선까지 그렇게 3년의 시간이 흘러갈 것이다. 공존과 발전을 위한 건강한 정쟁은 없고, 원한과 복수가 난무하는 정쟁의 시즌이 머지않았다는 건 결코 무리한 전망이 아니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 등 균형 발전을 위한 굵직한 지역 현안들이 무의미한 정쟁 속에 묻히고, 수도권 과밀화와 맞물려 지역 청년 인구 이탈, 저출생 쇼크, 지역 의료 붕괴 등의 총체적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이 또 3년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허비할까 심히 걱정스럽다.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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