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역 소멸? 부산-광주 연대하면 지역에 미래 생겨”
김만석 평론가 겸 전시기획자
5·18재단 30주년 전시 감독
“시민사회 활동 연대했으면…”
“5·18의 기억을 불의 경험에 비유했습니다. 이 경험이 역사적 연대기(年代記)이자 연대기(連帶記)였음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김만석 평론가 겸 5·18기념재단 30주년 기념 전시 총괄감독의 ‘불의 연대기’ 전시 이야기다. 이번 전시는 1994년에 창립된 재단이 그동안 수행해 온 기념사업을 돌아보고 한국 문화사에 오월 문화운동이 끼친 영향력을 조망하고자 마련됐다. 그는 “5·18기념재단이 5·18의 문제 해결 방식에 있어서 아궁이 역할을 해 왔다는 사실을 보여줄 작정이다”라고 말했다.
김만석 평론가의 다재다능함은 소문이 났다. 미술비평으로 등단해서 미술평론과 문학평론을 부지런히 넘나들고 있다. 전시기획자이자 연구자이기도 하다. 부산의 커피와 명란의 역사에 대해 눈에 띄는 결과물을 내놓기도 했다. 그래도 그렇지 부산사람이 광주에 가서 5·18기념재단 30주년 기념 전시 총괄감독을 맡았다는 소식은 상당히 뜻밖이었다.
서면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김 평론가는 기자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면서 롯데백화점본점 인근에 위치한 쌈지공원으로 데려갔다. 꽤 여러 번 지나쳐 갔던 장소이지만 그곳에 ‘황보영국 열사 오월걸상’이 있다는 사실은 그날 처음 알았다. 마침 그날은 오월의 의미를 새기는 것처럼 비가 꽤 많이 내렸다. 그는 “오월걸상은 5·18기념재단과 오월걸상위원회가 주축이 돼 민주주의와 인권의 정신을 간직한 기념조형물을 전국에 설치하는 사업이었다”라고 알려 줬다. 황보영국 열사 오월걸상은 2018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부산에 설치된 것이었다. 황보 열사는 태화고무에서 일했던 노동자로 1987년 5월 17일 부산에서 열린 집회에 참가했다가 옛 부산상고 앞에서 분신했다. 김 평론가는 서면에 일이 있어 올 때면 우리가 잊어 버린 황보 열사가 잘 있는지 들러 본다고 했다.
김 평론가와 광주의 인연은 2011년 광주 지역에 있는 대안공간과 협업을 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광주를 피부로 느끼고 인적 인프라가 생기면서 광주에 착근해서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이었다. 마침 2018년 광주비엔날레에서 큐레이터를 맡았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5·18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미술사·문학사·문화사적으로 한국의 진보 운동이나 예술 운동을 이해하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광주는 외국인 노동자 비율이 부산보다 더 높은 국제화된 도시다”라고 말했다. 외지인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도 이제 많이 희석되었다는 의미다.
김 평론가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핵심 증언이 있다고 소개했다. “광주가 고립됐다. 우리 전주가 뚫어내야 한다”는 증언이다. 1980년 5월 27일 전주에 있는 고등학생들이 시위에 나섰을 때 나온 이야기다. 그는 “따라서 5·18 민주화운동의 마지막 날이 된 5월 27일에 끝이 난 게 아니라 다른 방식의 시작이 열렸다는 의미다. 광주는 결코 고립된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어쩌면 5·18을 내부보다 외부에서 기념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덧붙였다.
부산과 광주는 거리가 가깝지 않다. 광주의 5·18을 부산사람들은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 궁금해졌다. 김 평론가는 부산과 광주를 지역소멸론으로 연결 지었다. 그는 “지역소멸론은 지역을 고립시키는 담론의 한 형태로 온다. 그것 때문에라도 지역에 오고 싶은 사람들은 주저하게 된다. 고립됐다는 호소가 연대의 가능성을 만들어 주고, 지역 사이의 연결고리가 확장 가능성으로 풀어질 때 지역의 미래가 생기게 된다”라고 말했다. “부산사람이 5·18 전야제에도 참여해 광주시민이 가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고립감의 정체 같은 것도 경험해 보면 좋겠다”라고도 했다. 지금 광주에 오면 광주의 다양한 시민사회 활동을 만나 지역이 서로 연대할 수 있는 경로가 생길 것이라고 운을 띄웠다. 김 평론가는 끝으로 준비하고 있는 몇 권의 책 중에서 5·18 관련된 책을 가장 먼저 내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전시는 7월까지 이어진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