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나는 해외 작품 속 빛나는 ‘한국스러움’
극단 어니언킹 ‘둥둥 낙랑둥’
오는 21일까지 공간소극장
빠르고 자극적인 연극이 익숙한 관객에게는 이 작품이 조금 낯설지도 모르겠다. 공연 시간은 상대적으로 길고 전개 속도는 다소 느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연극 ‘둥둥 낙랑둥’의 매력은 이 점에 있다. 천천히 오래 곱씹을 때 우러나오는 맛이 ‘진국’인 작품이다.
극단 어니언킹이 선보이는 연극 ‘둥둥 낙랑둥’은 고구려 시대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소설 <광장>으로 알려진 최인훈 작가가 쓴 희곡에 현대적 감성을 더했다. 낙랑공주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낀 호동왕자는 괴로움에 파묻혀 살아가고, 공주의 쌍둥이 언니이자 호동왕자의 의붓어머니인 왕비는 왕자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이들 두 사람에게는 시간이 지날수록 묘한 감정이 싹튼다.
연극 ‘둥둥 낙랑둥’은 소극장을 가득 메운 ‘한국스러움’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고대 무속신앙을 반영한 ‘굿’ 장면, 공연장 곳곳에 붙은 ‘탈’ 조형물, 한지를 활용한 대형 얼굴 소품, 전통의상 등 시대상을 반영한 무대가 관객의 시선을 잡아끈다. 괴기스러우면서도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탈’ 조형물 등은 두 사람의 심경 변화에 따라 여러 분위기를 연출한다. 무대 장치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덕분에 소규모의 무대 공간은 이승과 저승을 아우르는 공간적 배경을 모두 훌륭하게 표현한다.
최인훈 작가의 원작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현대극에 초점을 맞춘 연출도 섬세하다. 영화 ‘E.T.’의 명장면을 오마주한 장면을 포함해 극 중간중간 삽입된 유머 포인트는 관객을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누리여 너는 왜 밤과 낮밖에 가지지 못했느냐” 등 최인훈 작가의 ‘글맛’이 돋보이는 대사와 지문도 최대한 살렸다.
이번 작품은 해외 작품을 중심으로 공연이 이뤄지는 국내 연극계에, ‘한국’이라는 화두를 던진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우리 정서에 맞는 연극이 무엇인지에 고민해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올해로 개관 20주년을 맞은 공간소극장은 2022년부터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등 최인훈 작가의 희곡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연극 ‘둥둥 낙랑둥’ 공연은 오는 21일까지 부산도시철도 2호선 대연역에 위치한 공간소극장에서 진행된다. 공연은 평일 오후 7시 30분, 휴일 오후 4시에 만날 수 있다. 오는 19일에는 공연이 진행되지 않는다. 티켓 가격은 3만 원으로 네이버 티켓, 인터파크티켓 등을 통해 예매할 수 있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