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소설 쓴 이유? 쓰레기 산이 보이니까!”
김서련 소설가 첫 장편 ‘은양’
지역 신문사 기자가 주인공
해결 못 한 현실 문제 소설화
김서련 소설가가 첫 장편소설 <은양>(산지니)을 냈다. 소설은 은양이라는 소도시의 작은 신문사 은양매거진에서 기자로 일하는 ‘나(민 기자)’가 건축폐기물로 쌓아 올린 쓰레기 산을 목격하면서 시작된다. 은양은 행정구역상 이미 없어진 지역이라고 했다. 은양은 현실 세계의 웅상을 말하는 것 같았다. 경남 양산에 있었던 웅상읍은 늘어나는 인구로 덕계동, 평산동, 서창동, 소주동 등 4개 행정동으로 분동하면서 행정구역에서 사라졌다. 은양의 무대에서 김 소설가를 만나기로 했다.
예전에 웅상, 지금은 경남 양산 덕계동에 들어서자 놀랍게도 소설 속 쓰레기 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양>은 허구지만 쓰레기 산은 실재였다. 소설 속 괴물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지는 느낌이 기묘했다. 쓰레기 산은 산과 산 사이 깊은 골짜기에다 쓰레기를 차곡차곡 메워서 만든 것이라고 했다. 현실에서 쓰레기 산은 ‘덕계동 폐기물 산’으로 불렸다. 2002년 폐기물 처리시설 사업 허가 이후 지금까지 쓰레기가 쌓여 이제는 높이가 40여m에 이른다고 한다. 도심 미관 훼손과 비산 먼지, 안전 문제 등으로 지역사회에 오랜 골칫거리가 되어 있었다.
행정과 정치, 그리고 언론은 뭘 하고 있었기에 쓰레기 산이 이처럼 높게 쌓였을까? 소설은 지역 유지인 허이재의 막강한 영향력으로 관련 기사가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기자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어도 조금씩 개선하는 데 일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공적인 가치를 입증하면 이 척박한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봐요.” 은양매거진에는 죽을 때 죽더라도 쓰레기 산에 대한 기사를 쓰겠다는 기자가 있었다.
“기자가 좋았던 시절은 다 지나갔어요. 우린 무엇보다 수입을 창출해야 해요. 수입이 생겨야 사무실 운영도 하고 월급도 주고 신문도 찍어 내죠.” 오로지 생존이 목표인 편집국장 구와 같은 사람도 당연히 있었다. 심지어 그는 “기사는 총이다. 총을 쏘면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다”라고 말한다. 먹잇감을 발견하고 짐승처럼 사납게 덤벼드는 그와 민 기자는 갈등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이처럼 <은양>은 환경 소설을 표방한다. 민 기자가 은양까지 오게 된 것도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맡았던 업무가 ‘그린워싱’이라는 이유로 논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쓰레기에 깔려 죽은 외국인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 이야기도 나온다. 소설은 눈에 보이는 쓰레기 산을 애써 덮어두며 이익을 취하는 사람과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교차시킨다. 지역 사회의 여러 입장을 보여 주다 마침내 민 기자와 허이재가 충돌한다.
김 소설가를 웅상신문에서 만났다. 그가 건넨 소설가 명함의 반대쪽에는 웅상신문 대표이사 직함이 찍혀 있었다. 소설가이자 12년째 웅상신문을 운영하는 언론인이었다. 그제야 <은양>이 나온 배경이 이해되었다. <은양>에는 쓰레기 산과 관련한 기사들이 나오는데, 실제로 그가 쓴 것들이라고 했다. 구모룡 평론가는 “이 소설에서 정보의 과잉은 가독성을 줄이는 요인이자 한계로 비칠 수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유가 있었다. 김 소설가는 “출근길에 건축폐기물 산을 처음 만난 순간 숨이 탁 막혔다. 그래서 쓰레기 산에 대해서 기사도 쓰고 페이스북에도 올려 지금은 사업이 중단한 상태이지만, 다른 지역에도 쓰레기 산이 많이 있다. 지역 언론의 열악한 환경을 배경으로 각자도생하는 인간군상을 그리던 소설은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환경 쪽으로 흘러 갔다”라고 말했다. 환경 관련 강의까지 들으면서 힘들게 완성한 환경 소설이었다.
기자에게 <은양>은 또 다른 의미로 읽혔다. 기자 정신을 담아 지금의 언론 상황을 잘 묘사한 르포나 탐사 저널리즘에 가까운 소설이었다. 기자들을 ‘기레기’라고 부르는 요즈음, 쓰레기 산에 집착한 소설이 의미심장하다. ‘아무튼 사람들은 자기 일이 아니면 상관을 안 해요. 쓰레기 산이 보이지 않는 동네 사람들은 말을 안 하는 거죠. 왜냐하면 보이지 않으니까요.’ 애써 외면하고 사는 우리를 소설이 죽비처럼 내려친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