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국민의힘 '십자가 밟기'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이 의결된 직후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는 여론 흐름과는 딴판으로 흘러갔다. 찬성표를 던진 의원 12명을 ‘배신자’ ‘부역자’로 비난하고 출당을 압박했다. 급기야 당론 이탈자를 찾으려 “한 명씩 일어나 찬반, 기권 등을 밝히자”는 극단적 발언까지 나왔다. ‘인민재판’ ‘중국 문화혁명 분위기’라는 전언에서 살벌함이 느껴진다. 문제는 보수의 적통을 자처하는 국민의힘에서 이런 색출 시도가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이 뜬금없이 종북 세력 색출론을 들고 나왔다. 라디오에 출연해 야당 의원 30여 명에 대해 전향 여부를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사회자가 그 방법을 묻자 과거 천주교 박해 때 (신도를 가려내려고) 십자가를 밟게 한 사실을 예로 들면서 북핵, 세습, 주한미군 철수,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질문하면 대답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양심의 자유 침해나 사상 검증의 문제점을 차치하고도 병인박해 때 종교의 자유를 지키려다 숨진 천주교 신자가 6000명이 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유로 쓰여서는 안 될 말이었다.
이듬해 국회 국정조사에서도 ‘십자가 밟기’ 강요 질문이 나와 빈축을 산 적이 있다. 대선 앞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을 수사했던 권은희 당시 서울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은 여당 의원들의 거센 공세에 맞닥뜨렸다. 한 여당 의원이 “대통령이 문재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죠”라고 추궁하자 “헌법이 금지하는 십자가 밟기 질문”이라고 당당하게 응수해 화제가 됐다.
12·3 계엄령 이후 국민의힘 행보에 우려의 시선이 쏠린다. 탄핵 반대 85표로 똘똘 뭉쳐 ‘내란 비호 정당’을 자초하는 모습은 국민 눈높이를 한참 벗어난 것이다. 탄핵을 바라는 75%의 여론과 싸우겠다는 배짱은 ‘국민들은 1년 지나면 다시 찍어 준다’는 헛된 믿음 때문일까. 더구나 각자가 독립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양심적 선택을 당론으로 옭아매고, 이탈표를 발본색원하려는 시도는 민주 정당임을 부인하는 행태다. 오죽했으면 충성과 의리만 강요한다는 의미에서 ‘조폭스럽다’는 한탄이 당 내부에서 나오겠는가.
국민의힘은 균형 감각을 잃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대통령의 일탈에는 쓴소리 한 마디 못하면서 양심적 선택을 한 동료를 ‘레밍’(나그네쥐)으로 비하하고 폭력적으로 몰아세우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자문하고 자답해야 한다. 누구를 보고 정치를 할 것인가. 헌법과 국민인가, 아니면 내란 수괴인가.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