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만 비수도권서 열린 정상회담… 핵심 의제는 ‘지역’[부산 한일 정상회담]
지역 균형 발전에 집중한 두 정상
균형성장 등 사회 문제에 포커스
지역 소멸 위기 일본과 공동 대응
외교 당국 간 정기 협의 진행 약속
북극항로 개척에도 협력 모색키로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부산 누리마루 APEC 하우스에서 열린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의 한일 정상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30일 ‘부산 정상회담’은 21년 만에 수도권 아닌 지역에서 열린 데 더해 ‘지역’을 정상 간 논의 테이블의 주 의제로 삼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는 평가다. 우리보다 앞서 수도권 집중 문제에 천착해온 일본과의 협력은 현 정부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실효성을 한층 높일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여기에 ‘셔틀 외교’ 복원으로 탄력을 받은 한일 간 협력의 외연을 한층 더 확장하는 효과도 거둘 것 수 있을 전망이다.
양 정상이 이날 부산 해운대구 누리마루 APEC 하우스에서 76분 간 회담을 가진 뒤 발표한 공동 발표문은 이전 회담의 결과물과는 확연히 달랐다. 한일 정상이 통상 논의해온 경제, 안보, 과거사가 아닌 △저출산·고령화 △국토균형성장 △농업 △방재 △자살대책을 포함한 사회문제에 포커스가 맞춰졌다는 점에서다. 앞서 양 정상은 지난 8월 도쿄에서 가진 회담에서 수도권 집중 및 지역 발전 과제에 대한 공동 협의체 출범을 공동발표문에 담은 바 있는데, 이번 합의에서 이를 한 단계 더 진전시켰다.
두 정상은 이 문제에 대한 외교 당국 간 협의를 정기적으로 진행키로 했으며, 각자의 정책 경험과 성공 사례 등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얻은 시사점을 각자의 정책목표에 기여토록 한다는 방침이다. 정부 당국 간 협의에서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실질적으로 논의하고 구체적인 결과물을 실제 정책 단계에서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번 회담의 결과물은 수도권 일극주의와 지역 소멸 문제가 양 정상의 오랜 관심사라는 공통 배경이 작용했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일본 돗토리현 출신인 이시바 총리는 과거 아베 정권 시절 지역 살리기와 균형발전 정책을 담당하는 초대 지방창생상을 지냈다. 올해 신년사에서 밝힌 3가지 핵심 과제에도 ‘지방창생’이 포함됐을 정도로 여전히 관심이 많다. 이 대통령 역시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지역균형 발전은 새 정부의 핵심 과제 중 하나”라고 못 박은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도 “한국과 일본이 비슷한 과제를 안고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수도권 집중 문제이고, 총리께서 각별히 지역균형발전에 높은 점은 저도 너무나 똑 닮아있다”며 부산에서의 회담 개최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도쿄 일극주의 탈피를 위해 일본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한 ‘지역창생’ 정책은 노무현 정부 시절 시작된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롤모델 격이다. 실제 일본의 고향납세제는 우리의 고향사랑기부제 도입으로 이어졌고, 일본의 ‘관계 인구’ 정책 역시 지역 인구 소멸 문제에 대한 대응법으로 국내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일본의 제2도시인 오사카의 광역화는 부울경 메가시티 구상과 흡사하다는 점에서 지역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번 회담 장소를 부산으로 정하고, 회담의 무게 중심을 지역에 둔 것은 현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의지를 강조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대통령직속 지방시대위원회는 이날 수도권 일극체제를 5개 초광역권과 3개 특별자치도 중심으로 재편하는 ‘5극3특 국가균형성장 전략’을 확정 발표하기도 했다. 여권 관계자는 이날 회담 결과에 대해 “한국보다 한 발 앞서 수도권 집중화 및 지역 소멸 위기를 경험한 일본과의 공동 대응은 정부의 관련 정책 설계에 적잖은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면서 양국 간 협력의 시너지 효과에 대한 기대감을 보였다.
이와 함께 양 정상은 이날 이 대통령의 부산 어젠다라고 할 수 있는 북극항로 개척에 대해서도 공동 협력 방안을 모색키로 했다. 지역 정치권에서는 이 대통령의 지속적인 부산 민심 공략의 일환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