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공장만 있던 구도심, 지역 대표 ‘핫 플레이스’로 변신 [도시 부활, 세계에서 길 찾다]
⑤ 밀크 디스트릭트의 재탄생
낙농공장서 ‘힙’한 상권으로 변신
매력적 벽화와 미술 볼거리 풍성
신규 사업체 증가 등 경제 성장세
지역 주민 헌신과 시의 적극 행정
도시재생 대표 성공 모델로 우뚝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구도심 동쪽에 위치한 밀크 디스트릭트 내 낙농공장(왼쪽)과 거리(오른쪽 위) 모습. 밀크 디스트릭트에는 지역 정체성을 드러내는 벽화와 광고물이 곳곳에 설치돼 있다.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구도심 동쪽에 자리한 밀크 디스트릭트(Milk District)는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산업시설과 낡은 창고, 소규모 유통업체들이 산재한 조용한 동네였다. 1930년대부터 운영된 낙농공장 ‘T.G. 리 밀크 컴퍼니(T.G. Lee Milk Company)’에서 유래된 지명 만큼이나 오랜 세월 도시 개발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러나 최근 10년 사이, 밀크 디스트릭트는 올랜도의 대표적인 도시재생 성공 사례로 부상하며 전국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밀크 디스트릭트의 재탄생은 ‘적극 행정’이 발판이 됐다. 올랜도시는 2008년부터 지역 기반의 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메인 스트리트(Main Street)’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특징은 대규모 개발이 아닌 지역 커뮤니티 중심의 점진적 재생을 목표로, 이른바 ‘4포인트 접근법’에 따른 체계적인 지원이 이뤄진다. 4포인트란 조직(Organization), 디자인(Design), 경제 활력(Economic Vitality), 프로모션(Promotion)을 의미하는데, 구체적으로는 △소규모 사업체 지원 △창업 인큐베이션 △건물 외관 개선 보조금 △보행자 친화적 거리 조성 △공동 마케팅 및 이벤트 지원 등이다.
밀크 디스트릭트의 경우, 2016년에 메인 스트리트 프로그램에 선정되면서 도시 재생 프로그램을 진두지휘할 이사회가 조직됐다. 이사회는 부동산 개발, 건축·디자인 전문가들과 지역 소상공인, 주민, 시 관계자 등 12명으로 구성됐는데, 모두 지역 재생과 상권 활성화 취지에 공감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자원봉사자들이다.
지원 프로그램과 관련 조직이 갖춰졌다고 모두 다 성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밀크 디스트릭트가 차별화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가장 큰 동력은 이사회를 비롯한 지역 커뮤니티의 자발성과 헌신이다. 이사회는 한정적인 시의 지원 범위 안에서 현실 가능한 목표치를 제시하고, 이를 영리하게 실현하는 데 주력했다. 이사회의 비전을 요약하자면 보행과 자전거 이동이 용이하며, 볼거리가 많고, 하나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힙’한 상권이었다. 특히 디자인은 이를 실현하는 강력한 도구였다.
올해 9월 기자가 찾은 밀크 디스트릭트는 걸어 다니는 재미가 쏠쏠한 거리였다. 8×4 블록 규모의 거리는 다양한 스트리트 아트와 기발한 벽화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밀크’를 매개로 한 여러 장치들이 ‘여기가 바로 밀크 디스트릭트!’라고 말을 거는 듯했다. 로컬 푸드를 파는 밀크하우스의 직원은 “우리 가게를 비롯해 수많은 지역 매장에 배치된 매력적인 벽화와 스트리트 아트는 밀크 디스트릭트를 눈으로 즐기는 곳으로 만들고 있다”면서 “이런 장치들이 지역 상권의 독특함을 부각하면서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밀크 디스트릭트는 올랜도에서 공공미술이 가장 많은 지역 중 하나다.
시의 ‘디테일’한 지원도 효과적이었다. 올랜도시는 보행자와 자전거 중심의 이동 환경을 만들기 위해 최근 5년 새 30만 달러를 투입해 간판 변경, 야외 테라스 설치, 자전거 랙 조성, 거리 조명 확대 등을 시행했다. 이를 통해 지구 내 보행량과 자전거 통행량이 2~3배 가량 늘었다는 분석 결과도 있다.
메인 스트리트 프로그램 참여 이후 지역 경제의 성장세는 뚜렷하다. 2016년 이후 지난해까지 밀트 디스트릭트의 신규 사업체는 120개 이상 증가했고, 지역 내 공실률도 크게 감소했다. 일자리도 500개 가량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기존의 낙후된 창고가 리모델링되어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 카페, 바, 레스토랑, 아트 갤러리로 재탄생하면서 특색 있는 거리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 중 푸드트럭 파크인 ‘알 라 카트’(A La Cart), ‘사이드워드 브루잉’(Sideward Brewing), ‘밀크하우스’(Milkhouse) 등 젊은 창업가들이 운영하는 가게들은 지역 내 ‘핫플’로 부상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상권 활성화를 넘어, 지역 창업 생태계와 문화산업의 결합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밀크디스트릭트의 가장 큰 성과는 ‘주민과 상공인들이 함께 만든 변화’라는 점이다. 밀크 디스트릭트 이사회를 중심으로 소상공인, 예술가, 주민들이 주축이 돼 만든 밀크 마트, 클램푸스페스트 등 지역 축제에는 해마다 방문객이 증가 추세이며, 여기서 자극 받은 자발적인 이벤트들도 계속 늘어나면서 관광객 유입과 지역 상권의 매출 증가 등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를 통해 밀크 디스트릭트는 이제 단순히 오래된 동네를 새로 단장하는 수준을 넘어 올랜도 관광산업 발전의 핵심 콘텐츠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행정의 체계적인 지원과 지역 재도약을 희망하는 주민 열의가 더해져 무색무취했던 도심 외곽 지역이 사람의 발길을 끄는 매력적인 장소로 대변신한 것이다.
버디 다이어 올랜도 시장은 “밀크 디스트릭트를 비롯해 메인 스트리트 지구들은 각각 독특한 매력으로 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지역 인재를 육성하고,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이는 지역 경제를 끌어올리는 동력인 동시에 도시의 정체성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올랜도(미국) 글·사진=전창훈 기자 jch@busan.com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