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완성된 유토피아는 없다
영화평론가
애니메이션 '주토피아 2'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세상은 “누구나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날 선 편견과 보이지 않는 차별이 공존한다. 9년 전 토끼 경찰관 주디와 여우 닉이 보여준 ‘주토피아’가 그 균열을 극복하려는 열정의 공간이었다면, 시간이 흘러 다시 마주한 그들의 세계는 전편의 화려한 성취 뒤에 숨겨진 현실적인 고민을 담고 있다. 재러드 부시와 바이런 하워드 감독의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 2’는 전편의 성공에 안주하는 대신, 우리가 사는 사회의 복잡한 층위를 한 꺼풀 더 벗겨낸다.
‘주토피아 2’는 주토피아의 평온한 일상을 뒤흔드는 의문의 파충류 ‘게리’의 등장으로 포문을 연다. 주디와 닉은 10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침입자를 추적하기 위해 새로운 구역인 ‘습지 구역’으로 잠입한다. 물속과 지상이 입체적으로 연결된 이 공간은 동물의 생태와 크기를 세밀하게 반영한 독특한 디자인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수중 터널과 수변 도로가 유기적으로 어우러진 ‘마시 마켓’의 풍경은 시각적 경이로움을 넘어, 서로 다른 종이 한 공간에서 살아가기 위해 얼마나 정교한 설계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지를 시각적으로 증명해 보인다.
2025년 관객 수 1위 '주토피아 2'
전작에 없던 새 공간과 종의 등장
공존을 위해 견뎌야 할 몫은 뭘까
따뜻한 유머 속 묵직한 질문 남겨
이러한 공간의 확장은 단순히 볼거리로만 그치지 않는다. 습지 구역의 복잡한 구조는 주토피아가 지향하는 다양성이 쉽게 완성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각기 다른 생존 조건을 가진 존재들이 서로의 동선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연결되어야 하는 설계는, 곧 우리가 타인과 부대끼며 살아갈 때 감내해야 하는 모습의 은유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 정교한 도시 설계를 통해 공존이란 결국 치열한 고민과 배려가 빚어낸 결과물임을 일깨운다.
이번 작품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파충류라는 새로운 집단의 편입이다. 포유류 중심이었던 주토피아 사회에 차가운 피부를 가진 파충류들이 등장하며 발생하는 미묘한 갈등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이때 뱀 게리는 수사 과정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면서도 끊임없이 주인공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관객들은 게리를 보며 “저 캐릭터를 믿어도 될까?”라는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데, 감독은 그 의심 자체가 우리가 낯선 타인을 대하는 편견의 시작임을 알린다.
묵직한 주제 의식 속에서도 영화적 재미는 놓치지 않는다. 1편의 나무늘보 ‘플래시’처럼 극의 활력을 불어넣는 코믹한 캐릭터들도 여전하다. 느릿느릿한 파충류 공무원부터 성격이 급해서 말이 꼬여버리는 조류 캐릭터까지, 동물의 생태적 특성을 뒤튼 부조리한 유머가 가득하다. 닉의 냉소적인 유머와 주디의 열정적인 리액션이 만드는 코믹한 앙상블도 빠질 수 없다.
하지만 이야기는 전편의 버디 무비 형식을 따르면서도 다르다. 1편이 개인의 가능성을 응원했다면 2편은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견뎌낼 수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은 나쁜 의도가 없더라도 나의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위협이나 불편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주디와 닉이 마주하는 수많은 갈등은 단순히 악당과의 대결이 아니다. 서로 다른 생존 방식을 가진 존재들이 부딪히며 발생하는 불가피한 파열음인 셈이다.
결국 ‘주토피아 2’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빌려 변화의 가능성을 묻는다. 변화는 가능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으며, 우리가 그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애니메이션을 보고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까 싶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었을까?” 혹은 “더 나은 공존을 위해 내가 견뎌야 할 몫은 무엇일까?”. 따듯한 유머 속에서도 묵직한 여운이 남는 이유는 진정한 주토피아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공존을 향한 고민을 멈추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