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왜 모두 모자를 썼을까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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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호 문화스포츠부 선임기자

탈모치료제 건강보험 급여 적용 두고 논란
보건복지부 토론회 개최 앞두고 중단 선언
삶의 질 영역 확대 시험대 무산돼 아쉬움
건보 보장성 새 기준 논의 다시 이루어져야

일본의 한 식당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외국인이 많이 오는 곳이라 그런지 한 쪽 벽면을 세계 각국의 지폐로 장식해 두었다. 한국 지폐도 여러 장이 붙어 있었는데, 다른 나라와 두드러진 차이점 하나가 눈에 띄었다. 천 원 퇴계 이황, 오천 원 율곡 이이, 일만 원 세종대왕, 오만 원 신사임당. 지폐 속 인물 모두 모자를 쓰거나 가체를 하고 있었다.


반면에 서양을 비롯한 외국 화폐에서는 모자 쓴 사람을 보기 힘들었다. 그 차이가 어디에서 왔는지 찾아보니 조선에서 ‘의관정제’는 기본이었다. 모자 없는 상투 차림은 무례하고 격식 없는 행동으로 여겨졌다. 서양에서는 조선과 반대로 격식을 차리거나 상대방에게 예의를 표할 때는 모자를 벗는 게 에티켓이었다.

문득 조선에도 탈모 환자들이 있었을 텐데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지 궁금해졌다.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 시대라 고민은 더했을 것이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나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앞머리와 정수리 탈모가 진행되더라도 옆머리와 뒷머리는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남은 주변 머리카락을 최대한 길러 정수리 쪽으로 끌어모아 어떻게든 묶어 올렸다. 묶은 부위가 너무 작으면 천 조각이나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 뭉치를 집어넣어 상투를 억지로 부풀리는 방법도 썼다. 묶을 수도 없을 때는 인조 상투, 가발을 썼다. 조선 시대 남성들은 실내에서도 늘 정자관 같은 모자를 써서 민머리가 잘 드러나지 않는 점은 이들에게 다행이었다.

조선의 왕 중에 영조는 앞머리가 다 빠졌는데, 75세가 되던 해에 검은 머리카락이 다시 돋아났다. 영조는 너무 기쁜 나머지 종묘에 제사를 지내고 온 나라에 자랑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선조실록〉에는 선조가 임진왜란 중에 “내 머리가 다 희어지고 털이 빠져 노인처럼 되었다”라고 한탄하는 구절이 자주 등장한다. 세상의 권력을 다 가진 왕들도 머리 빠지는 스트레스는 피해 갈 수 없었다.

〈조선왕조실록〉으로 볼 때 왕들의 머리 상태는 비교적 괜찮았다. 어의들이 왕의 탈모를 방지하기 위해 부지런히 뭘 먹이고, 또 약재로 감겨 관리를 잘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과연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었을지 모르겠다. 영조나 83세까지 천수를 누렸지, 조선의 왕들은 평균 수명이 겨우 40대 중반이었다. 단명한 그들에게는 머리 빠질 시간이 별로 없었다.

4일로 예정됐던 탈모치료제의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주제로 한 보건복지부 주최 토론회가 개최 불과 며칠을 앞두고 무산됐다. 지금까지 그게 아쉬워서 찾아본 조선의 탈모 관련 이야기다. 탈모치료제를 건강보험으로 보장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고, 모르긴 해도 이런 토론회도 세계 최초일 가능성이 높았다. 사회적 갈등을 숙의로 해결하려던 공론화 취지 자체가 무색하게 돼버렸다.

청년들은 탈모치료제 건보 적용을 지지한다. 죽는 병은 아니지만 실업자 100만 시대에 탈모는 구직 활동에 불이익을 초래하는 심각한 질환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매달 적지 않은 돈이 ‘평생’ 들어가는 약값을 국가가 일부 덜어준다면,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복지 정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울증과 대인기피에 시달리면서도 용기 있게 토론회에 나선 청년들의 이야기도 한번 들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의료계와 중증·희귀질환 환자단체는 강하게 반발하는 입장이다. 암과 희귀 난치성 질환 신약조차 재정 부족을 이유로 건보 적용이 안 돼 환자들이 고통받고 있다. 이 문제를 놔두고 유전성 탈모에 재정을 쓰는 것은 건보의 근간을 흔드는 포퓰리즘이라는 주장이다. 혹시 탈모에 관심이 많아 보이는 기자가 탈모치료제 건보 적용에 찬성한다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오랜 개인 임상 실험 끝에 내린 결론은 유전성 탈모의 경우 ‘백약이 무효’라는 것이다. 그보다 ‘긴급 도입된 희귀·필수 의약품 중에서 70% 이상이 급여 적용이 되지 않고 있다’라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토론회가 이런 문제가 더 알려지고 시급하게 해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여당은 건선, 아토피, 소아 근시 등도 향후 건보 적용 논의 대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보건복지부는 탈모약 급여가 아니라 건강보험이 앞으로 삶의 질과 정신건강 영역까지 확대하는 문제를 묻는 큰 화두를 던졌어야 했다. 건강보험 보장성의 새로운 기준을 정하는 논의를 지금이라도 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한 마디. 탈모는 진보와 보수, 친명과 반명을 가리지 않는다. 탈모는 사고처럼 예고 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이번에 제대로 탈모에 관한 토론이 이루어졌으면 재정 부담과 사회적 수용성을 고려해 중증도 등 기준에 따른 단계적 접근 방법이 나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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