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브라이도티의 포스트휴먼 철학과 파트리샤 피치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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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샤 피치니니 'The Young Family'(2002). National Museum of Women in the Arts 소장, 비평·교육 목적의 공정 인용. 파트리샤 피치니니 'The Young Family'(2002). National Museum of Women in the Arts 소장, 비평·교육 목적의 공정 인용.

1996년 7월 5일, 영국 스코틀랜드 로슬린 연구소에서 세계 최초의 복제양 ‘돌리’(Dolly)가 태어났다. 이는 인간이 생명의 설계와 복제에 본격적으로 개입할 수 있음을 세계에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후 유전자 편집, 인공지능, 생명공학 기술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빠르게 흔들기 시작했다. 인간은 생명의 신비를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졌고, 윤리와 생명에 대한 경외는 뒤로 밀려났다.

오늘날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란 과연 무엇이며, 그 존엄성은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을 가장 강렬하고도 낯설게 시각화해 온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 호주의 동시대 미술가 파트리샤 피치니니이다. 대표작 ‘The Young Family’(2002)는 처음 보는 순간 관객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사람 같기도 하고 돼지 같기도 한 하이브리드 생명체가 여러 마리의 새끼를 품고 누워 있다. 축 처진 살갗과 주름, 동물적인 육체는 기괴하고 불편하다. 그러나 조금 더 바라보면 이상한 감정이 생긴다. 새끼들을 품은 어미의 몸에서는 낯선 따뜻함과 보호 본능이 느껴진다. 혐오와 연민, 공포와 애정이 동시에 발생한다.

이탈리아 철학자 로시 브라이도티는 21세기 ‘포스트휴먼’(posthuman) 철학의 대표자 중 한 사람이다. 브라이도티는 근대 인문주의가 상정했던 ‘보편적 인간’ 개념을 비판한다. 서구 근대가 말한 인간은 실제로는 백인, 남성, 이성 중심적 주체를 보편으로 삼아왔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브라이도티의 철학은 데리다의 해체주의 이후 등장한 새로운 철학 흐름과도 연결된다. 그녀는 ‘인간중심주의’를 넘어, 인간과 동물, 기술, 환경, 기계가 서로 얽혀 존재하는 새로운 존재론을 제시한다.

그러나 브라이도티는 해체 이후에 되찾아야 할 인간 내부의 공통적 보편성보다,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이 서로 얽혀 살아가는 생태적 공동성을 사유한다. 그래서 그의 철학은 단순한 기술철학이 아니라, 새로운 윤리와 감수성의 철학이기도 하다. 피치니니의 조각은 바로 이러한 시대의 감각을 구현한다. 그의 작품 속 존재들은 인간도 동물도 아닌 혼종적 생명체들이다. 오늘날 인공지능은 그림을 그리고, 알고리즘은 인간의 감각과 욕망을 조직하며, 유전자 기술은 생명의 구조를 수정하고 있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는 점점 흐려지고 있다.

그러나 피치니니의 작품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기술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떤 윤리로 비인간 타자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그녀는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은 이 존재를 사랑할 수 있는가?” “당신은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도 윤리를 느낄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생명공학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사유하게 만든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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