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센느 원이 ‘무섭노’ 논쟁 숨 고르기…거제시 ‘단호한’ 대응도 주목
걸그룹 리센느가 거제시와 협업해 제작한 지역 홍보 영상. 오른쪽에서 두 번째 멤버가 거제 출신 리더 원이다. 부산일보DB
걸그룹 리센느 멤버 원이의 ‘무섭노’ 사투리 논란이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의 공개 사과를 기점으로 조금씩 수그러드는 모양새다.
경상 지역 고유의 방언을 일베(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식 표현이라 주장하며 논란의 불씨를 당긴 당사자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지만 이미 대중의 여론은 무책임한 억지 ‘일베 몰이’로 귀결되고 있다.
이 과정에 원이의 고향이자 리센느를 홍보대사로 임명한 경남 거제시의 소신 있는 입장 표명도 한몫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 전 대표는 12일 자신의 SNS를 통해 “제 글이 리센느와 팬 여러분께 상처를 주는 계기로 활용돼 매우 유감이며 안타깝다”면서 “리센느의 분투와 성취에 큰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 더 큰 무대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고 적었다.
앞서 조 전 대표는 지난 5일 경상도 사투리에서 쓰이는 어미 ‘노’와 일베 사용자들이 노 전 대통령을 조롱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는 어미 ‘노’의 구별법을 페이스북에 게시하며 의문문에 기계적으로 ‘노’를 붙여 사용하는 것은 혐오 표현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조국 페이스북 캡처
이 게시물은 앞서 원이의 유튜브 채널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에 공개된 영상을 두고 문제를 제기한 한 경남 지역 방송사 PD의 SNS 글과 맞물려 일베 논란으로 증폭됐다.
영상에서 원이는 일본인 멤버 미나미의 본가를 방문하던 중 제작진이 촬영 PD가 먼저 “무섭노”라고 말하자 원이는 “무섭노, 조명부터 무서운데”라고 맞받아쳤다.
이를 두고 해당 PD가 자신의 ‘X’(옛 트위터) 계정에 “호평받는 유튜브 클립 하나 봤는데 여성 아이돌과 PD가 사이좋게 ‘노노’ 주고받고 있어서 무척무척 속상했음”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일상화된 ‘일베식 노’가 언어의 원형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여기에 조 전 대표가 가세하면서 논쟁은 순식간에 정치권으로 번졌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거제 출신의 스물두 살 아이돌이 고향 말로 ‘무섭노’라고 했다는 이유로 일베 낙인이 찍혔다”고 분노했다.
거제가 지역구인 국민의힘 서일준 의원도 “거제 사람은 물론 경상도 사람이라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쓰는 말을 두고, 일부 정치권과 언론인이 ‘이념 감별사’를 자처하며 사상검증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거제시도 발 빠르게 대응했다.
리센느는 거제 출신으로 리더를 맡고 있는 원이를 중심으로 리브, 미나미, 메이, 제나가 함께하고 있는 5인조 다국적 걸그룹이다.
최근 원이와 같은 멤버 미나미가 대화 중 무심하게 말한 “거제 야호”가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츠)으로 화제가 됐고, 거제시는 지난 5월 리센느를 지역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이에 한 민원인이 국민신문고를 통해 “원이의 무솝노 표현 논란이 지역 언어 현실에 비춰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와 홍보대사 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시 차원의 공식 입장을 달라”고 요구했다.
거제시는 민원 접수 당일인 지난 10일 오후 변광용 거제시장 명의 공식 입장문을 내고 “해당 표현은 경남 지역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방언이자 구어적 표현”이라며 “정치적 의도를 담은 표현으로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건전한 비판과 다양한 의견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내용의 무분별한 확산과 과도한 비난은 당사자에게 불필요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면서 “거제시는 지역을 대표하는 홍보대사와 함께 거제 브랜드 가치와 도시 이미지를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거제시는 지난 22일 5인조 걸그룹 리센느를 ‘디지털 콘텐츠형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팀 리더를 맡고 있는 원이(가운데)가 거제 출신이다. 거제시 제공
여당 소속 3선 단체장의 소신 표명은 정치권 안팎에서 적잖은 울림을 일으켰고, 조 전 대표의 사과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게 지역 정치권의 분석이다.
거제시 관계자는 “불필요한 논쟁을 차단하기 위해 지자체 차원에서도 신중하면서도 단호한 입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불씨는 여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계에선 원이의 “무섭노” 발언처럼 묻는 말이 아닌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거나 감탄하는 말에서 ‘노’ 어미를 붙이는 게 잘못된 어법이거나 일베식 용법이 확산한 게 아니라는 반응이 나온다.
국립국어원 지역어 조사에서도 의문사가 없는 문장에서 ‘-노’가 사용된 사례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럼에도 해당 PD는 “하루아침에 정리될 수 없는 문제다. 일본어 잔재 없애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떤 ‘-노’를 구분하느냐보다는 그 말에 상처받는 사람이 있다면 사용에 잠깐의 머뭇거림이라도 둘 수 있지 않은지 말이다”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곤 “제가 열어버린 지옥문을 제가 닫을 수는 없다. SNS는 토론에 적합한 수단이 아니라는 건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글을 끝으로 계정을 폐쇄했다.
방송사 시청자 게시판에는 논란이 불거진 지난 5일을 기점으로 해당 PD의 공식 사과와 회사 차원의 입장을 요구하는 항의 글이 하루 200여 건 쏟아지고 있지만 PD와 사측 모두 현재까지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