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수 밤바다 낭만 부럽지 않은 ‘분위기 깡패’ 포장마차촌 [별별부산] ⑤
여름이다. 지금 한창인 장마가 물러가면, 이 계절은 낭만파 애주가들에겐 밤바다에서의 한잔이 절로 생각나는 때이기도 하다. 이럴 때 ‘바로 거기지’라고 떠오르는 곳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개인적으론 전남 여수시에서의 경험이 강렬하다. 그중에서도 10여 년 전 창 너머로 돌산대교가 보이는 여수시의 한 횟집 2층에서 술잔을 기울인 기억이 우선 떠오른다. 당시 신문 기사에 제목을 달던 편집부 소속이었는데, 맛난 횟감과 운치에 더해 식당 벽에 붙은 지역 소주 업체의 ‘잎새주세요’라는 멋진 광고 문구가 잊히지 않는다.
낭만과 운치를 얘기하자면, 여수시 거북선대교 아래의 포차거리도 빼놓을 수 없다. 이름마저 ‘낭만 포차거리’가 아닌가. ‘여수 밤바다~’로 시작하는 장범준의 달콤한 감성 발라드곡이 밤새 울려 퍼지는 일대는 특히 외지 관광객의 ‘원픽 방문지’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부산이라고 이런 낭만과 추억을 선사할 장소가 없을 리 있나. <부산일보> 인기 연재물 ‘별별부산’이 수소문해 봤다.
가장 먼저 후보에 오른 곳은 해운대 포장마차촌이다. 해운대해수욕장 해변 바로 뒤 주차장 쪽에 나란히 줄지어 선 이곳은 파도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신선한 해산물을 즐길 수 있는 장소였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영화인들이 많이 찾아 유명해지기도 했다. 특히 고급 재료인 랍스터를 맛볼 수 있는 포차로 많이 알려졌다. 하지만 이곳은 해운대구청과의 약속에 따라 지난달 철거돼 지금은 명성만 떠돌고 있다.
해운대 포장마차촌이 사라졌다고 부산의 밤바다 낭만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조개구이를 대표 메뉴로 애주가들을 불러 모으는 서구 송도 암남공원과 해운대구 청사포 일대를 비롯해 사하구 다대포 몰운대 입구, 기장군 학리 방파제 등 밤바다를 향해 술잔을 들 수 있는 곳은 즐비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핫하고 힙한 장소로 정평이 난 곳은 따로 있으니, 바로 영도구 봉래동 봉래물양장 공영주차장에 자리 잡은 영도 포차거리이다. 이곳에서는 저마다 개성 넘치는 상호를 단 포차 23곳이 영업 중이다. 1980년대부터 뱃사람들의 시장기와 애환을 달래 주던 포차가 하나둘 들어서며 생긴 영도 포차거리는 코로나 팬데믹 시절 실내 영업 제한 ‘무풍지대’로 주목을 받으며 점차 다리 바깥 뭍사람들에게까지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영도 포차거리의 가장 큰 장점은 도시철도역에서 걸어갈 수 있는 입지다. 영도 포차거리는 일제 수탈기와 한국전쟁 피란기 애환이 가득 서린 영도대교(영도다리라고 흔히 불린다)에 접해 있다. 1호선 남포역 8번 출구에서 600m가 채 되지 않는 거리여서 영도대교를 건너 10분 안에 닿을 수 있다. 이런 입지는 운전 부담 없이 한잔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다.
두 번째는 속칭 ‘분위기 깡패’로 불릴 만한 주변 풍경이다. 애인이든 친구든 마음 통하는 이와 함께한다면 어디라도 좋겠지만, 이왕 부산에서 포차를 이용한다면 바다를 포기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앞서 언급했듯이 포차에 앉아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은 부산에서도 여럿이다. 하지만 ‘ㄷ자’ 형태의 봉래물양장을 둘러싸고 자리한 이곳에선 해수욕장과는 또 다른 항구의 비릿함을 품은 ‘찐 부산 분위기’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건배’하고 술잔을 들어 올리면 눈앞에 금방이라도 뱃고동을 울릴 것 같은 선박(주로 예인선)들이 도열해 있는 풍경 말이다.
포차 뒤쪽은 물양장을 마주 보고 솟은 고층 호텔 두 곳이 병풍을 치고 있다. 여기에 영도대교와 부산대교, 롯데백화점 광복점, 부산타워(용두산공원) 등 부산 원도심이 선사하는 주변 건축물들. 포차에 앉아 이들이 발산하는 경관조명을 보노라면 관광대국 싱가포르의 수변 명소 클라크키 노천카페에 자리한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도 포차거리는 오후 4시께부터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인근에 마련된 수레 보관소에서 포차가 하나씩 이동해 차량이 떠난 공영주차장 자리에 터를 잡으면서부터다. 손님을 받는 시간은 포차 도착시간과 상관없이 일제히 오후 6시 무렵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그래야 공평하기 때문이다. 메뉴는 스무 가지가 넘는다. 곰장어·오돌뼈·고갈비 등 구이류부터 산낙지·문어숙회 등 해산물, 어묵탕·조개탕 등 탕류까지 대동소이하다. 가격은 대부분 2만 원으로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 특이한 점은 LA갈비(2만 5000원)가 메뉴판에서 빠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포차마다 2개씩 내놓는 야외 원탁 테이블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뜨겁다. 특히 주말엔 이른 시간부터 주변을 서성이며 테이블이 펼쳐지기를 기다리는 ‘조출족’도 쉽게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야외 테이블 이용 시간을 2시간으로 제한하고 상황에 맞게 유동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매달 1·3주 월요일은 공식 휴무다. 태풍이 몰아닥치는 등 날씨가 심하게 궂은 날에도 쉰다.
50대 이상이 대부분이던 상인 연령층에도 변화가 생겼다. 코로나 이후 30대 젊은 사장이 하나둘 합류하면서다. 젊은 손님이 좋아할 만한 새 메뉴 선정이나 SNS 계정 운영 등 최근의 변화는 우연이 아니다. 상인회 윤종덕 회장은 “SNS를 통해 포차거리가 널리 알려지면서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외국인의 발길도 늘었다”고 소개했다. 윤 회장은 이어 “상인들 역시 영도 포차거리가 부산을 대표하는 관광상품 중 하나라는 마음가짐으로 손님을 맞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2024-07-04 [07:40]
-
아슬아슬 교각 위 롤러코스터 질주…2층버스 맨 앞자리가 ‘명당’ [별별부산] ④
“무료로 즐길 수 있는 롤러코스터 타실 준비 되셨나요?”
지난달 26일 오전 부산역에서 탑승한 부산시티투어 레드라인 버스. 영도구 HJ중공업(옛 한진중공업) 담벼락을 따라 태종로를 달리던 버스 안에 갑자기 놀이공원에서나 들릴 법한 경쾌한 음악이 흐르더니 곧이어 ‘롤러코스터 안내방송’이 이어졌다. 파노라마 선루프를 활짝 연 것처럼 지붕이 시원하게 뚫린 개방형 버스 2층에 올라탄 승객들이 일제히 스마트폰 카메라를 눈높이로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 부산항대교 진입램프에 접어든 버스는 놀이공원 승강장에서 막 출발한 롤러코스터처럼 서서히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장대높이뛰기 바를 닮은 진입 램프 입구는 예사롭지 않게 많은 도로표지판으로 치장돼 있었다. 차량 통과높이 제한(4.5m)과 속도 제한(40km) 안내는 기본이고 ‘위험’이라고 적힌 빨간색 테두리 표지판까지 보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띈 것은 한글 ‘이’의 자음과 모음을 맞닿게 한 후 좌우를 뒤집은 모양의 파란색 표지판이다. 모음 ‘ㅣ’의 위쪽에는 진행 방향을 알리는 화살표 머리가 달렸다. 파랑 바탕 표지판은 주로 일반적이지 않은 형태의 도로 진입부에 세워져 특이한 통행 방법을 안내한다. 부산항대교 진입램프의 파랑 표지판은 바로 전방에 자음의 ‘ㅇ’ 형태로 순환하는 ‘360도 회전 구간이 있다’는 안내인 셈이다.
시티투어 버스가 진입램프를 지나 교량 상부를 향해 오르막길에 들어섰다. 전체 550m 길이인 진입로 중 약 300m를 직선으로 달린 후 나머지 250m 정도를 원형으로 360도 돌아 교량 상부에 오르는 방식이다. 바로 250m 원형 구간이 ‘공포의 부산항대교 진입램프’ 하이라이트다.
본격적인 원형 구간 주행은 지상에서 약 40m 높이에서 시작된다. 이 높이는 뉴질랜드의 카와라우강 번지점프대 높이(43m)와 비슷하다. 세계 최초로 상업 번지점프 영업을 시작한 이곳은 ‘번지점프 좀 해 봤다’는 마니아들도 막상 푸른색 강물 위 교각 점프대에 서면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공포감이 상당한 것으로 유명하다. 양쪽 발목에 칭칭 감은 안전줄은 기억 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지상에서 시선이 멀어질수록 고소공포증의 강도는 커지는 법이다. 그러니 이 공포 구간을 최대한 즐기기 위해선 ‘세단보다 SUV, SUV보다 버스, 일반버스보다 2층버스’라는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2층버스에서도 최고의 명당은 진행 방향 왼쪽 맨 앞자리다. 이 자리에선 버스가 회전할 때, 마치 자기 몸이 도로 난간을 뚫고 나가 바다 위 허공에 내동댕이쳐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래서인지 부산항대교를 경유하는 부산시티투어 레드라인과 그린라인 노선 2층버스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려는 경쟁도 치열하다. 마치 놀이동산 롤러코스터의 맨 앞자리와 바이킹의 맨 뒷자리가 먼저 채워지는 것처럼.
맨 앞자리뿐만 아니다. 공포감에서 나온 건지, 감동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를 탄성은 버스 여기저기에서 들렸다. 회전 구간 안쪽을 향하는 오른쪽 자리도 마찬가지다.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면 반경 60m의 회전 구간 반대편이 보이는데, 가늘게만 느껴지는 교각 위에 아찔하게 서 있는 도로와 그 도로를 암벽 등반하듯 비스듬히 오르는 차량을 보다 보면 새삼 오금이 저리는 걸 느끼기도 한다.
부산항대교는 영도구 청학동에서 부산항 북항을 가로질러 남구 감만동까지 이어지는 총길이 3368m의 사장교로 10년 전인 2014년 개통됐다.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을 드나드는 크루즈선을 비롯해 초대형 선박들이 안전하게 오갈 수 있도록 최대 통과높이가 아파트 25층과 맞먹는 66m에 이른다.
공포의 진입램프는 설계 당시부터 어떤 구조로 지어질지 관심을 끌었다. 청학동에서 대교 상부를 연결하는 접속도로를 만들 수 있는 여유가 609m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직선형 연결도로로 60m 높이의 교량 상부에 이르게 하려면 도로 기울기(종단경사)를 10%까지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간단히 말해 수평 구간 100m를 이동하는 동안 수직으로 10m를 올라가는 방식인데, 이는 산지에 작업용 임도를 만들 때나 적용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한다.
부산항대교는 개통 후 한동안 이용 차량이 뜸했다고 한다. 그러다 2020년 초부터 3년 가까이 이어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부산 공포의 진입로’ ‘부산항대교 롤러코스터 구간’ 등의 해시태그를 단 SNS 게시물이 쏟아지면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방문이 이어졌다고 한다. 해외 여행길이 끊기면서 외면받던 국내 이색 장소들이 새삼 관심을 끈 것이다.
특히 이 구간은 지난해 한 TV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화제성이 폭발하기도 했다. 차량 블랙박스에 찍힌 영상인데, 진입램프 초입에 갑자기 차를 멈춘 운전자가 “도저히 무서워서 못 올라가겠다”며 뒤따르던 차량에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이었다.
민간투자사업으로 건설된 부산항대교는 광안대교와 남항대교를 연결하는 부산 해안순환도로의 주축이다. 700원(경차)부터 최대 3000원(대형차)까지 통행료를 2044년 8월 20일까지 징수한다.
부산관광공사가 운영하는 시티투어버스 2개 노선(레드, 그린)은 하루 9차례 부산항대교를 경유한다. 1층과 2층, 개방형과 폐쇄형 등 버스 종류가 다양한데, 배차는 무작위 방식으로 한다. 2개(1006번, 1011번) 노선의 급행버스도 부산항대교를 통과한다.
진입램프의 360도 순환 구간 아래에는 영도구에서 운영하는 오토캠핑장이 있다. 카라반 사이트 15개, 오토캠핑 사이트 40개, 일반 사이트 12개로 꾸려졌는데, 특이한 장소를 선호하는 캠퍼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2024-05-02 [07:00]
-
아미동 언덕에 우뚝 선 황금 사원…부산 속 ‘작은 티베트’ [별별부산] ③
부산 서구 아미동 도시철도 1호선 토성역 8번 출구로 나와 부산대병원을 오른쪽에 두고 오르막길을 걸었다. 아미초등학교를 향해 200m 정도 올라가다 아미동시장 입구에서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니 천마산 앞을 막고 선 노란색 건물이 눈길을 붙잡는다. 적색 외벽의 꼭대기 층에 ‘한국티벳불교사원’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그러고 보니 꽤 이국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티베트 불교의 상징처럼 불리는 라싸의 포탈라궁이 연상되는 외형에 끌려 발길을 옮겼다. 오르막길 끝의 회전교차로를 지나 아미초등학교 쪽으로 100여m를 더 오르니 4층 높이 건물 앞에 다다랐다.
대한민국에 하나뿐인 티베트 불교 사원 광성사다. 우리나라에서 티베트 불교를 접할 수 있는 곳은 울산과 대구, 서울 등 여러 지역에 있다. 하지만 단독 건물을 갖추고 티베트 스님이 상주하며 대중을 상대로 티베트 불교 법문을 전파하는 곳은 부산의 광성사가 유일하다고 한다.
광성사는 한국 불교 사찰을 연상케 하는 이름과 달리 황금색 지붕을 얹은 건물 외형부터 남다르다. 황금색으로 칠하거나 금을 입힌 지붕이나 기와는 티베트 불교 사원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포탈라궁을 포함해 라싸에 있는 여러 티베트 불교 사원과 티베트 망명 정부가 있는 인도 다람살라의 사원들도 대부분 황금색 지붕 아래에 불상을 모시고 있다.
광성사가 티베트 불교 사원이라는 것을 알리는 또 하나의 상징물은 황금 지붕 위로 솟아 있는 사슴 조형물이다. 선박 조타기나 수레바퀴를 빼닮은 둥그런 원을 가운데 두고 사슴 두 마리가 양쪽에서 바라보는 형상으로 역시 황금색이다. 석가의 일대기를 여덟 장의 그림으로 묘사한 팔상도 가운데 하나인 녹야전법상을 표현한 것으로, 부처님 말씀을 사슴이 경청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법륜이라고 불리는 원형 조형물은 부처님 말씀, 암수 두 마리의 사슴은 중생을 뜻한다. 우리나라 사찰에서도 벽화나 법당 안에 걸린 탱화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를 티베트 사원에서는 조형물로 만들어 건물 가장 높은 곳에 세운다고 한다. 마치 이장님 전달 사항이 마을 구석구석 널리 전파되기를 바라며 설치한 마을회관 옥상 스피커처럼.
광성사 안으로 발을 들였다. 1층의 공양실과 2층 지장전을 지나 한 층 더 올라가면 불국당이라는 이름표를 단 본 법당과 스님이 공부하며 정진하는 자비실이 나온다. 사미니승의 안내를 받아 자비실에서 주지인 소남 스님을 만났다.
1971년 라싸에서 태어난 소남 스님은 10대 중반에 티베트 망명 정부가 있는 인도에서 출가, 달라이 라마로부터 사미계와 비구계를 받았다. 2004년 한국에 온 이후 광성사 주지를 맡아 티베트 불교와 문화 전파를 이어오고 있다.
스님은 그동안 티베트 불교 경전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데 노력을 쏟아 <티벳 스승들의 수행 이야기> <티벳스님과 함께하는 반야심경 공부> <성스러운 따라보살 기도문> 등의 책을 펴냈다. 10여 년 전 한국으로 귀화한 스님은 우리말 구사가 아주 자연스럽다. 매주 토요일 오후 열리는 람림 공부를 직접 진행한다. 람림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행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내용으로, 티베트 불교의 기본이자 최고 경전으로 꼽힌다.
취재를 위해 세 차례 광성사를 방문하는 동안 모두 3명의 승려를 만났다. 소남 스님 외에도 앞서 말한 사미니승과 로남 스님이 그들이다. 한국인인 사미니승 역시 다람살라에서 달라이 라마로부터 사미니계를 받고 이곳에서 수행하고 있다. 티베트 국적인 로남 스님은 귀화 절차를 밟고 있다. 수년 전 필기시험에 합격했지만 여전히 귀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외교 문제 때문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자비실 앞 불국당은 가로 액자에 담긴 티베트 라싸의 전경 사진을 보고 입장하게 되어 있다. 티베트 법당이라는 무언의 알림처럼 법당 풍경이 우리나라 사찰 법당과 사뭇 달랐다. 양쪽 벽면에 큰 탱화가 있고 가운데 주불 주위로 여러 불상이 놓여 있다. 큰 광배 장식을 한 주불 앞에 놓인 의자에는 티베트 불교의 정신적 지주인 달라이 라마 사진이 자리하고 있다. 주지 스님이 법문하는 자리는 그 아래에 있다. 사부대중을 향한 스님의 법문은 그저 부처님의 가르침을 달라이 라마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라는 뜻이 담긴 듯했다.
왼쪽 벽면에는 불법의 핵심을 둥근 도형으로 표현한 만다라 장식이 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샌드 만다라인데, 모래처럼 세밀히 다듬은 돌가루를 이용해 높낮이가 있는 입체형으로 만든 것이다. 형형색색의 색감과 일일이 수작업을 거친 세밀함은 그야말로 예술 작품의 경지였다.
원형 금속 상자에 담긴 티베트 대장경도 만날 수 있다. 티베트어로 깡규르라 부르는데, 상자 속에는 티베트 종이에 조밀하게 인쇄된 경전 100권이 돌돌 말려 있다. 상자 아랫부분을 회전할 수 있게 만들어 손으로 돌리면서 경전을 받아들이는 마니차 역할을 한다.
실제로 읽을 수 있는 경전은 법당 오른쪽 서랍에 보관되어 있다. 100개의 나무 상자에 담긴 경전을 펼치면 목판 인쇄 경전이 펼쳐진다. 스님이 법회를 진행할 때 하나씩 꺼내 경독을 한다고 한다.
광성사는 매주 수요일과 토·일요일 오후 정기적으로 불교 기초와 경전·람림 공부를 진행하고 있다. 법당 내부와 사원 곳곳에 등이 달린 모습은 우리나라 사찰과 마찬가지다. 음력 4월 8일에 거행하는 부처님오신날 법회도 마찬가지로 챙긴다고 한다. 소남 스님은 “광성사도 부처님 말씀을 전하고 인연을 중시하는 등 한국의 절이 하는 역할을 똑같이 하고 있다”며 “종교를 떠나 부담 없이 방문해 마음의 평화를 얻어 가기 바란다”고 말했다. 광성사에 등록된 신도는 500여 명, 법회나 공부에 참여하는 이는 300명 안팎이라고 한다. 광성사의 거의 모든 활동은 유튜브를 통해 만날 수 있다.
2024-03-07 [07:40]
-
개봉 영화도 8000원에 OK…오렌지 가림막에 숨은 ‘시네마천국’ [별별부산] ②
부산의 대표적인 MZ세대 거리인 중구 광복중앙로. 광복로와 대청로를 잇는 400m 길이의 이 구간엔 광복로패션거리라는 명성에 어울리게 힙한 의류를 취급하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전국구 맛집으로 이름난 피자 가게를 포함해 젊은 층의 구미를 당기는 식당과 분위기 좋은 카페도 여럿 있다. 그러니 광복중앙로엔 부산시민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모여든 여행객들이 항상 넘쳐 난다.
리모델링을 끝내고 지난달 전면 개관한 부산근현대역사관도 이 거리에 접해 있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본거지인 동양척식주식회사(별관)와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 건물(본관)을 되살려 체험형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곳이다.
부산근현대역사관 별관에서 광복중앙로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오래된 학교가 나온다. 상권이 발달한 이 거리와 다소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이는 학교는 우리나라 여자농구 스타 산실인 동주여자고등학교다. 부산 연고 여자프로농구팀 BNK 썸의 박정은 감독과 변연하 수석코치를 비롯해 수많은 국가대표 선수를 배출했다.
학교 정문에 서서 건너편을 바라보면 특이한 형태의 건물 두 동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하나는 사단법인 화쟁교단의 중심 사찰인 대각사. 1894년 창건된 이 사찰은 인근 상권의 간판이 여러 차례 바뀌는 동안에도 자리를 지킨 터줏대감이다.
대각사보다 더 눈길을 붙잡는 것은 왼편에 서 있는 오렌지색 외투 건물이다. 하늘을 향해 불쑥 솟아 있는 삼각뿔이 합을 겨루는 모양의 상부는 마치 무사의 갑옷처럼 위협적이기도 하다. 거리와 접하고 있는 아래로는 디귿(ㄷ) 자 모양으로 삼면을 둘러싸고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공사장 가림막이 되기도 한다. 더군다나 오렌지색이다. 이 색은 시인성이 강해 색채학 분류로는 강한 ‘경고’의 의미를 지닌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여러 국가의 구조대원 복장에도 적용되는 색이다. 벽면에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는 팻말이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외관이다.
삼각뿔 형태의 건물 입구도 범상치 않다. 앞을 지나다 잠시 눈길을 줄 수는 있어도 발을 들이기에는 부담스럽다. 슬쩍 안쪽을 쳐다보니 은행 이름이 붙은 출입문과 승용차 몇 대가 주차돼 있다. ‘은행 VIP 고객 전용 건물인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외벽에 붙은 ‘BNK 부산은행 아트시네마’라는 글귀가 보였다. 글귀 위로는 여러 장의 영화 포스터와 상영 시간표까지 붙어 있다.
극장으로 추정되는 외투 건물 안으로 향했다. 외벽과 마찬가지로 오렌지색인 본건물의 1층은 부산은행 신창동지점. 오른편 끝에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는데, 계단 위에 비로소 ‘모퉁이극장’이라는 상호가 붙어 있었다.
모퉁이극장을 향해 계단을 올랐다. 계단 양쪽 벽면에 붙어 있는 포스터들이 ‘시네마 천국’으로 안내하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영화 세상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세상 번뇌는 잠시 내려놓고 입장하십시오’라는, 상상의 안내문이 잠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모퉁이극장은 건물 3층에 자리한 단관 극장이다. BNK 부산은행이 첫 본점이 있던 건물을 리모델링하며 조성해 운영을 위탁했다고 한다. 72석의 아담한 규모로, 적당한 단차가 있는 계단식 좌석을 설치해 어디에 앉더라도 시야 방해 없이 스크린을 마주할 수 있다.
아트시네마라고 해서 예술영화전용관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8일부터 14일까지 1주일 치 상영작엔 아네모네, 아가일, 플랜 75 등 최신 개봉작들이 보인다. 추락의 해부, 도그맨, 라이즈, 노 베어스, 나의 올드 오크, 사랑은 낙엽을 타고처럼 영화제 수상작이나 평단의 호평을 받고도 흥행 랠리에서 밀려 멀티플렉스를 떠난 근작들도 관객을 기다린다. 모퉁이극장 김현수 대표는 “일반 상업 영화 상영관에서 외면하는 예술 영화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찾는 관객도 있다”며 “주 단위로 상영작을 선정할 때 이런 분들의 기대와 수요를 반영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시네마 키즈 시절을 거쳐 다양한 소규모 영화제와 김해시민영화제 ‘김씨네’ 등을 기획하고 진행한 김 대표는 모퉁이극장을 영화 상영관을 넘어서는 관객 중심 영화의 전당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소규모 영화 모임이나 동호회 활동, 직장이나 시민단체의 문화 행사 등을 위한 장소로 대관하는 사업도 진행한다. 가령 인권 단체의 송년회 모임 요청이 있다면 인권과 관련된 작품을 추천하고 상영 후 함께 토론할 수 있는 전문가 섭외까지 책임지는 식이다.
상지건축이 인문학아카데미회원을 대상으로 한 달에 한 편씩 영화를 상영하고 토론하는 ‘잇츠시네마’ 역시 모퉁이극장에서 진행하고 있다. 김 대표는 잇츠시네마 상영작 선정과 평가에도 참여하고 있다. 상지건축 고영란 상무는 “모퉁이극장이 없었으면 잇츠시네마를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라며 “모퉁이극장은 영화 관련 행사의 기획부터 진행까지 모두 맡길 수 있는 곳”이라고 치켜세웠다.
모퉁이극장은 도시철도 1호선 역(자갈치·남포)에서 5~10분 거리에 있어 접근성이 좋다. 부산역에서도 불과 두세 정거장 거리라 주변은 외지 관광객들로 늘 붐빈다. 관객 입장에서 더 눈길이 가는 점은 성인 기준 8000원(청소년 7000원)에 불과한 ‘반값 관람료’. 주말·평일 동일한 요금에 최신 개봉작도 예외 없다. 통상 오전 10시~10시 30분 시작하는 조조 요금과 경로우대는 5000원이다. 현장 구매는 물론이고 네이버 및 예술영화 예매 사이트 디트릭스를 통한 예매도 가능하다. 김현수 대표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영화의전당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관람료는 똑같다”며 “모퉁이극장이 원도심의 영화의전당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밝혔다.
영화의전당은 빅루프의 화려한 조명과 영상으로 행인들의 눈길을 붙잡는다. 모퉁이극장도 영화의전당 못지않게 독특한 외관을 자랑하지만 밤이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조명이 켜지지 않은 오렌지색 외투는 그저 인부가 퇴근한 공사장 가림막일 뿐이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만이라도 광복중앙로를 밝히는 오렌지로 반짝이길 기대한다.
2024-02-08 [07:30]
-
부산 원픽 자갈치회센터 ‘비밀 하늘정원’ [별별부산] ①
2024년이 막 시작된 지난 3일, 영국 유력 일간지 더 타임스가 ‘올해 가 보면 아주 재미있을 작은 나라’라는 타이틀로 한국을 소개하는 기사를 냈다. 서울과 함께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스파와 감천문화마을 등 부산의 여러 곳을 세세하게 거론했다. 부산이 국제적으로도 주목 받는 도시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더 타임스 기사에서 보듯 부산은 여전히 해수욕장이나 유명 관광지, 대규모 축제, 혹은 랜드마크 건축물 위주로 소비되는 도시라는 걸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부산의 매력을 간직한 숨은 명소나 특별한 의미를 가진 장소를 발굴해 소개하는 ‘별별 부산’을 시작한다. 외지 관광객은 물론이고 부산 시민들도 잘 알지 못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 보물 같은 공간을 알리려는 것이다. 특히 동부산권에 비해 덜 조명받는 원도심이나 서부산권에 좀 더 많은 눈길을 주려 한다. ‘별별 부산’을 통해 널리 알리고 싶은 곳에 대한 귀띔도 환영한다.
자갈치시장. 국제시장·부평깡통시장과 함께 남포동, 광복동 일대를 대표하는 전통시장이다. 특히 신선한 해산물을 눈앞에서 확인하고 바로 주문해 맛볼 수 있는 자갈치시장은 부산을 찾는 이들의 ‘최애 방문지’이기도 하다. 코로나 대유행이 끝난 지난해부터 해외 관광객들의 ‘깃발 투어’가 다시 활기를 띠면서 요즘 자갈치시장 주변은 평일에도 제법 많은 인파가 몰린다.
자갈치시장 중심엔 갈매기가 비상하는 외형을 뽐내는 상가 건물이 있다. 2006년 문을 연 자갈치시장 상가는 4841.5㎡의 대지에 연면적 25910.08㎡(7837평) 규모의 지하 2층·지상 7층 건물이다. 부산타워가 있는 용두산미디어파크(용두산공원)와 함께 부산 원도심의 랜드마크 구실을 하고 있기도 하다.
7층이지만 일반 방문객들은 주로 1~2층의 활어판매장과 회센터 위주로 이용한다. 1층에서 활어를 골라 주문한 후 2층에 자리 잡아 배달된 횟감을 맛보는 식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상가를 자갈치회센터로 부른다. 3층부터 맨 위 7층까지는 청년센터와 일반 사무실, 소상공인지원센터 등이 들어서 있다.
그런데, 자갈치회센터에 ‘비밀 하늘정원’이 있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이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인들이 거의 들르지 않는 옥상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정원의 정식 이름은 ‘자갈치전망대’. 전망대에 가려면 우선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 내린 후 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한 층을 더 올라야 한다. 계단 벽면에 자갈치시장 야경과 부산타워 사진 등이 장식돼 있다. 계단을 오르면 자갈치전망대 입구 팻말이 붙은 출입문이 나온다.
438㎡로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바다 건너편 영도를 향해 탁 트인 전망은 비싼 비용을 치르고도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찐 부산’의 매력을 뽐내는 데 부족함이 없다. 전망대 앞쪽 나무 덱에 올라서면 왼쪽부터 부산대교, 영도대교, 영도, 남항대교, 송도 암남공원, 천마산이 차례로 펼쳐진다. 전망대 바로 앞에는 깡깡이마을로 알려진 영도 수리조선소의 생생한 풍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송도 쪽으로는 대한민국 최대 활어 공판장인 부산공동어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전망대라는 이름에 걸맞게 망원경도 두 대 설치돼 있다. 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15분간 진행되는 영도대교 도개식 역시 이곳에서 편하게 내려다볼 수 있다. 정면의 남항대교 뒤쪽으로는 바다 건너 49.5km 떨어져 있는 일본 대마도가 어렴풋이 자태를 뽐낸다.
전망대에는 4인용 나무 벤치 4개와 그네까지 있어 쇼핑과 관광에 지친 다리를 잠시 쉬게 하는 데 무리가 없다. 커피를 한 잔 들고 자리 잡으면 그야말로 ‘레알 오션 뷰 카페’로 변한다. 바다 반대편으로 몸을 돌리자 부산타워가 바로 눈앞이다. 고개를 높이 들지 않고도 편하게 볼 수 있어 8층 높이에 올라와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갈매기우체통도 흥미롭다. 전망대에 비치된 우편엽서에 사연을 적어 우편함에 넣으면 6개월 뒤 무료로 발송해 준다.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까지 발송된다고 한다. 실제 우편 발송 국가 명단에는 대만,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뿐만 아니라 영국, 스페인, 체코 등 유럽과 미국까지 있다.
자갈치전망대는 1년 365일 무료로 개방된다. 이용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 해 질 무렵에는 천마산과 송도 쪽으로 기우는 일몰 광경도 만날 수 있다.
현재 방문자는 하루 50명 안쪽. 봄, 여름 등 관광 성수기에도 최대 200명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상가를 관리하는 부산시설공단 자갈치시장사업소는 조경을 보완하고 경관조명을 설치하는 등 전망대 시설 업그레이드를 계획하고 있다. 주원중 소장은 “당장 올봄부터 자갈치회센터 방문객들이 좀 더 편하게 전망대를 이용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2024-01-11 [0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