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와 차 한잔] 이동현 서울지사 정치팀장이 만난 김형오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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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입장 배려하지만 국정 주도하는 일은 안돼"

역대 국회의장 중 김형오 의장만큼 개원 이후 줄곧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린 정치인도 없을 듯 하다. 18대 국회가 열리자 '입법전쟁'이 벌어졌고, 여야대립은 결국 김형오 의장의 '의사봉'을 뉴스의 초점으로 만들었다. 입법전쟁의 절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미디어법 파동' 이후 김 의장은 지친 심신을 달래느라 '잠행'에 나섰다. 김 의장과의 차 한잔을 마시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경남 하동에서 쉬고 있는 그를 기습하려다 실패했고, 서울에 볼일이 있어 잠시 올 수도 있다는 소식에 기다려 보기도 했다. 결국 하동에서 부산으로 옮긴 김 의장을 영도 자택에서 만날 수 있었다.

"미디어법, 악법이라면 직권상정 안했을 것…
양심 가책없지만 국회 모습 국민에 부끄러워"


김 의장은 반가운 표정으로 맞아주었지만, 대화는 내내 침울하게 이어졌다. "이런 사태까지 오게 된 것에 대해 유감스럽고 가슴 아프고 뭐라고 책임감을 토로해야 좋을 지 말이 잘 안 나옵니다. 그날 본회의장에서 일어난 일은 결코 헌정사에 있어서는 안되는 상황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침통한 얘기는 이어졌다. 미디어법 처리가 유효한 것이냐를 둘러싼 논란이 헌법재판소로 넘어간 것에 대한 것이다.

"민주당이 헌재에 의뢰를 했잖아요. 정치적 사안을 사법부로 가져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이제는 거기서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게 됐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국회의장보고 하라고 하지만, 국회의장이 뭐라고 얘기하면 승복하겠느냐고 반문하고 싶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국회의장 보고 (시비를) 따지라는 것도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김 의장에게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겠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냐"고 물어보자 그는 "분명히 이 자리에서 밝힙니다. 모든 직권상정의 권한과 책임은 국회의장에게 있으며, 이번 직권상정은 누가 뭐래도 저의 결단에 의해 일어난 것이며 제가 책임질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한쪽에서는 (직권상정을) 하지 말아 달라고 하고, 한쪽에서는 해달라고 매일 건의하였습니다. 밤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해야 하나. 하지 말아야 하나', '하게 되면 언제 하나', '안할 수는 없을까'를 생각했습니다. 결론은 직권상정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김 의장은 어떤 논리로 이런 결론을 내렸을까. "만약 미디어법이 특정 재벌과 언론의 방송 장악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악법이라고 생각했다면, 절대 직권상정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김 의장이 설명을 더 이어나가자 민감한 내용들도 나왔다. "민주당은 나름대로 대안을 내놓고 대화를 하면서 협상안을 조금씩 좁혀왔습니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로 수정안을 내놨고요. 만약 미디어법이 악법이고 방송장악법이라면 민주당이 협상안을 내놓지도 않았을 것 아닙니까. 처음에는 A, B, C 세 신문은 (방송에 진출하는 것이) 안된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이중 A라도 묶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논리가 아니고 감정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미디어법에 관한 소신은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된다는 것이 아닙니다"(이때 김 의장은 몇몇 신문의 실명을 거론했지만, 지상에 공개하지는 말아달라고 주문했다.)

이러면서 그는 미디어법에 대한 그의 소신도 밝혔다.

"미디어법에 관한 제 소신은 국민들이 자유롭게 다양한 미디어와 접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방송을 보느냐 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입니다. 방송진입의 장벽은 허물어야 합니다. 다만, 마이너 언론에는 인센티브를 주고, 메이저 언론에는 제약(그는 disadvantage라고 했다)을 가하는 보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민주당의 논리는 노래 잘 한다고 미술공부를 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소수와 다수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역대 국회의장 중 소수자 보호에 집착했던 국회의장이라고 자부합니다. 다수결의 원리 앞에 항상 소수가 배려될 수 있도록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소수가 '주도'해야 한다고 착각하면 안됩니다. 소수가 자기 뜻이 관철될 때까지 막는 것은 선진국에서는 없는 일입니다"

김 의장은 야당에서 '중립성' 논란을 벌이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지난해 연말 여당에서 직권상정을 요청한 것은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대학을 넣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단호하게 거절했고, 한나라당은 매우 서운해했지만 민주당은 고마워했습니다.이번 미디어법의 직권상정은 고등학교는 마치지 못했지만, 검정고시를 치고 대학교에 가는 상황과 같습니다"

중립을 지키는 바람에 오히려 여야로부터 그때그때마다 욕을 듣는다는 말이다.

민생법안 처리를 위해서도 미디어법 직권상정은 불가피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6월30일까지 미디어법을 처리키로 여야가 합의했는데, 이것을 일방적으로 민주당이 파기한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면서 "다시 7월말까지 표결처리한다면 논의를 일주일 연기해 주겠다고 했는데, 여야가 공방만 계속하고 있으니 결국 국회에서는 미디어법 외에는 아무것도 논의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아니냐. 그 때 처리하지 않았으면 더 좋은 방법이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화제는 언론노조 등 '외부인'이 의사당에 '무단침입'한 얘기로 옮겨갔다.

그는 "18대 국회에 들어 부끄럽고, 있어서는 안될 일이 생겨 민망하다"고 또 찌푸린 얼굴이 되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무력감을 느낍니다. 작년 연말연시 입법파동 때는 민주당 사람들이 로텐더홀을 무단 점거하면서 질서 유지권이 무력화되었고, 국회 경위들이 곤욕을 치렀습니다. 이번에는 국회 본관 1층으로 불법진입할 수 없도록 유리창 구조를 개조하였는데, 아예 유리창을 뜯어내고 들어왔습니다. 지난번 국회사무처에서 폭력 국회의원들을 고소고발한 것을 결코 취하하지 않고 있습니다. 끝까지 제재를 가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조금이라도 국회 폭력이 줄어들 것입니다"

김 의장은 이 말을 하면서 '단호한 대책'을 세번이나 되뇌었다. 김 의장이 복도 및 중앙홀에 설치되어 있는 CCTV를 사법기관에 넘겨 의사당 무단침입에 대해 형사적 책임을 묻겠다는 것도 단호한 대책의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국회파행을 막을 해법은 없을까.

"2002년 월드컵 당시 그 많은 사람들이 몰렸던 광장과 경기장에는 환호만 있었을 뿐, 쓰레기 하나 없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한다면 하는 민족입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이 없는 것 같고, 부끄러운 마음도 없는 것 같습니다. 여야 정당 지도부가 가슴에 손을 얹고 이런 모습을 보인 것이 한번 시대적으로, 정치적으로 부끄럽지 않은 것인지 생각해 주길 바랍니다."

김 의장이 생각하는 국회의장은 어떤 자리일까.

"저는 차기 의장을 국회의장답게 만드는 과도기적 의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국회의장은 국회 의사일정에 권한과 책임을 행사할 수 있는 행복한 국회의장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김 의장은 취임 이후 국회의장 공관에다 국내에서 자생하는 야생화를 심고, 잔디를 가꾸고 있다. 2년 동안 '손님'처럼 지내다 가는 공관이 아닌 '주인'처럼 가꾸고 다듬는 공관을 만들기 위한 뜻일 것 같다.

그는 끝으로 "나의 행위에 대해 한 점의 양심의 가책이 없지만, 국회가 국민에게 보여준 모습에 대해서는 다시한번 부끄럽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을 맺었다.

김 의장과의 차 한잔은 1시간50분만에 끝이 났다. 부산 발전전략, 차기 부산시장 선거, 양산 재선거, 북항재개발, 해양산업클러스터 등 지역현안에 대해 물을 것을 잔뜩 적어왔지만, '미디어법'에 막혀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머지 않은 시간에 '민생'과 '지역'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기회가 마련되기를 기대해본다. dhlee@busan.com


·김형오는 누구

*이력
-1947년 경남 고성 출생
-경남중 경남고 서울대 외교학과(학사·석사), 경남대 정치학(박사)
-1975~76년 동아일보사 기자
-1978~82년 외교안보연구원 연구관
-1986~1990년 대통령·국무총리 정무비서관
-1992년~현재 14대 15대 16대 17대 18대 국회의원(5선)
-2001년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장
-2004년 한나라당 사무총장 2007년 원내대표
-2007년 17대 대통령직 인수위 부위원장

*저서 '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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