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승이든 길손이든 다 우리 식구 먹는 맹키로 멕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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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덕한 절밥 이름난 천성산 노전암

노전암 주지 능인 스님과 객승, 속인이 밥상에 둘러앉았다. 노전암이 길손들에게 내놓는 상은 언제나 이처럼 푸짐하다. 미나리, 우엉, 고사리, 미역, 매실…. 20여 가지의 찬은 대부분 노전암에서 키운 것들로 만든다. 살아있는 밥상이다.

역시! 한 상에 가득했다. 20여 가지 찬. 매실장아찌, 호박, 미나리, 졸인 감자, 시래깃국, 고사리, 오이소박이, 우엉, 미역, 배추전, 된장, 볶은 된장, 무말랭이, 콩나물…. 찬의 종류야 매일 바뀌는 것이나, 우엉과 미나리는 요즘에 각별했다. 우엉은 추운 날씨에 몸을 보하는 것이요, 미나리는 피를 맑게 해 기력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경남 양산 천성산에 있는 노전암(爐殿庵). 내원사에 소속된 비구니(여 스님) 암자. 아는 사람은 안다. 이곳 스님들이 오고가는 길손들에게 상 차려 내는 은근한 마음을.

노전(爐殿)은 원래 부처에게 올리는 공양(불교에서 식사를 높여 부르는 말)을 짓는 곳이다. 부처에게 올리는 밥이니 얼마나 정성을 들일까. 노전암은 그런 정성으로 승속(僧俗)을 차별 않고 길손들을 공양하고 있다. 그 마음을 받은 이는 보시함에 말 없이 감사의 뜻을 적당히 표시하면 그뿐이다. 피차간에 고맙다는 말이 필요 없다. 수십 년째 그리 해 왔다. 모처럼 화창했던 날, 노전암은 따뜻했고 주지 능인(72) 스님은 느닷없는 객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도 닦는 거도 좋지만 잘 먹는 게 중요
사람 공양하는데 죽은 음식 되나
손수 된장 담그고 차나무도 키워…
잘 먹고 보시함에 적당히 표하면 그만
장삿집도 아닌데 연락처는 넣지 말어



"앉으이소. 시님(스님)들하고 같이 잡숫지 뭐.(이날 노전암에는 길 가던 비구(남 스님) 객승 둘이 노전암에 와 있었다.) 에이, 뭘 도와준다꼬, 기냥 아무 것도 말고 앉아 있으이소. 오늘은 내가 마음이 좀 급해. 아는 보살(여 신도)이 한 30년을 이 절에 다닛는데, 뭐 눈이 안 보인다고 자꾸 수술을 한다고 그래 싸. 늙은 사람이 뭐하러 수술한다고 그라노, 했는데, 수술 뒤에 2년 반 병상에 있다 어제 아침에 죽었는 기라. 인자 점심 묵고 문상 갈라고. 염불해 줄라고, 눈 감고 가게."

"자, 한 번 잡숴 봐. 매실 장아찌. 그거 콤콤하니 맛날 기야. 우엉, 만병통치약이제. 된장 지진 거(시큼하고 짭조름했다), 우리 원주 시님이 박박된장이라 이름 붙였어. 박박(빡빡)하게 지졌다고. 그 옆에 보통 된장(콤콤하면서도 달았다), 좀 새카맣제? 5년 묵은 기야. 우리가 담았지. 미나리, 그거 비싼 거요. 한 단에 1만 원이나 하데. 언양 등억온천이라고, 거기서 나온 거라. 겨울에 유달리 싱싱하지? 뜨신 물에서 나오는 기라 그래요. 귀하고 몸에 좋은 거지. 진짜 좋은 미나리야. 마이들 드셔.(한 비구 객승은 '다른 큰 절에서는 이런 호사는 못누린다'며 두 그릇을 후딱 해치웠다.)"

"차? 저기 바닥에 있잖아(방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아 둔 큰 양푼이가 있었고, 거기에 찻잎이 한 움큼 풀어져 있었다). 그냥 밥그릇에 떠 잡숴. 그래 묵으믄 돼. 차가 뭐 별 건가. 원래 차는 이리 마시는 기 제맛이라. 괜한 의식 채리고, 비용 들이고 그래 갖고는 어려워서 언치기나 하제.(향을 음미하며 멋 내는 차가 아니라, 그냥 식사 뒤 입가심의 차! 투박한 그 맛!) 차나무도 키우냐고? 그래요. 차나무 키운 지 한 30년 넘어 됐지. 우리 적은 대중(식구)으로 힘은 들어도 직접 키워 해 먹는 게 낫지. 정성도 들어가고, 믿을 수 있고. 살아 있는 밥상 같다고? 아믄! 절집 반찬이 그래야지. 죽은 음식으로 사람을 공양할 수야 있나."

"(상이 물려지고 능인 스님은 후식으로 접시에 곶감, 수수엿, 전병을 담아 내왔다. 마침 방 저쪽 한편에서 부산에서 왔다는 부부 두 쌍도 상을 물리고 있었다.)이리 오이소 같이 묵읍시다. 아, 사양 말고 오시라니까. 우리가 묵어봤자 하나 아니면 둘이지 마이 묵나. 이 곶감은, 우리가 만든 건데 잘못 맨들었어. 잘 맨들라카믄 곶감 하나에 스무 번은 손을 대야 돼. 그래야 예쁘고 분도 잘 나고 맛도 있고 그래. 부드럽고. 그런데 이건 옳게 안 만든 거야."

"(고생이 많을 텐데 객들을 위해 왜 이리 반찬을 많이 마련하는지 물었다.)어릴 적 사가(私家)에 있을 때, 반찬 잘 해 묵었어.(능인 스님의 고향은 경남 함양군 안위면 당본리다. 경북 안동 하회마을처럼, 이른바 양반촌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중 돼 보니 반찬이 너무 부실한 거라. 다짐을 했지. 옛날에 우리 집에서 해묵는 거처럼 해묵겠다고. 그런데 잘 묵는 거는 중이나 속인이나 차별이 없어야제. 어떤 처사(남자 신도)가 이런 말을 하데. 어느 절 행사에 갖는데, 큰스님한테 준다고 네모잽이 지다란 큰 교자상에 온갖 반찬을 다 올리갖고 젊은 스님네 여섯이 들고 가는데, 자기네한테는 달랑 비빔밥 한 그릇 주더라는 거야. 이래도 되는 긴가 화가 나더라네. 그래, 그라믄 안 되는 기지. 절집이라고 중은 잘 묵고 속인은 못 묵어서야 쓰나."

"자랑 좀 할라치면, 우리 반찬이 맛나기는 한가보이. 언젠가 전라도 딸아인데, 여기 와서 며칠 머물더만 묻는 기라. '스님 와 이리 반찬을 잘 해 묵습니까?' 그래, 대답했지. 도 닦는 거도 좋지만 이왕 묵는 거 잘 묵어야 안 되겠나. '아이고 그람 나도 스님 될랍니다,' 그래 갖고 그 아이가 중이 됐어. 하하하, 우리 노전암 음식에 반해 갖고 중 된 기라. 지금 서울에 있지. 그런데, 잘 묵는다고 해서 특별한 기 아니라. 중들은 맨날 채소 반찬만 묵으니께 같은 재료라도 맛이라도 좀 내 갖고 그래 묵을가 카는기지. 도 닦는 사람도 맨날 쌀하고 나물만 먹을 수 있나. 오늘은 배추 생거로 묵으면 내일은 삶든지 굽든지 하고, 모레는 절여갖고 그래 묵고 그래야지. 똑같은 밥상은 싫어. 거기다 밭 가꾸고 산 오르면 맛나게 묵을 수 있는 기 얼마나 많은데…."

"내가 출가한 기 1957년이니 50년을 훌쩍 넘?뎨?. 중학교 2학년 때, 서울 덕성여중 2학년 다니다가, 아버지가 세상 버리는 바람에 중 됐어. 맨날 아버지 생각했어. 너무 보고 싶어서 신경병에 다 걸렸어. 그때 그 심정은 불 속에 아버지가 있다면 들어갔을 기라. 누가 아버지 만날라믄 머리 깎아야 된다고 해서 이리저리 몇 군데 돌아 다녔어. 그러다 범어사에 갔지. 범어사 대성암에. 그런데 거기사 묘한 인연을 만났어. 전라도 이리에서 왔다는, 이리여고 나왔다는 행자 시님이 있었는데, 공양주(밥 하는 소임) 살았어. 요새는 안그렇지만 그때는 쌀에 방앗간에서 찧을 때 나오는 찌꺼기가 많았거든. 그걸 일일이 씻어갖고 좋은 걸로만 골라내 시님네 묵을 밥을 따로 짓는 거라. 와그랍니꺼? 하이, 공부하는 스님네 얄궂은 거 안 멕인다고 그래. 하, 그때 일종의 발심(發心)을 한 기라. 음식 만드는 마음이 저래야 하는구나! 부처님 전에도 그러고 시님네 한테도 그러고 속인들한테도 그러고. 지극한 맘으로 해야는구나. 지금도 그 맘을 안 잃어버릴라 그래."


◆뒷이야기="제발 여기 전화번호는 사람들에게 알려주지 말아요." 원주(절 살림을 맡아 보는 소임) 스님은 신신당부했다. 노전암의 식구를 다 합쳐 봐야 나가 있는 사람까지 10명이 채 안 되고 밥 짓는 사람은 그중 서넛밖에 안 되는데 사람이 몰려들면 감당이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고추장에 비빔밥 한 그릇만 해도 절 방문객들로서는 감사한 일일 텐데, 절 인심이 그러면 안 된다는 신념은 원주 스님이나 주지 스님이나 한가지였다. "그럼 편하겠지만, 아휴, 그래도 찾아 오는 손님을 어떻게 그렇게 무성의하게 대해요. 아예 안 드리면 안 드리지."

절 살림을 꾸려가야 하는 이의 고충이 충분히 짐작됐다. 그래도 굳이 노전암을 찾으려는 이는 내원사 입구 매표소에서 차를 주차하고, 노전암 이정표를 따라 20여 분쯤 걸어가면 된다. 사람 흔적 끊긴 그 길이 꽤 운치가 있다.

글·사진=임광명기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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