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탈출] 중국 장쑤 성 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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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춘 운하도시… 18세기 중국으로 가다

파란 하늘에 큰 붓으로 그린 것처럼 기와 지붕의 윤곽선이 뚜렷하다. 그 지붕 아래로 은은한 불빛이 수로에 비칠 때면 검은 그림자처럼 다가온 나룻배가 시나브로 소실점으로 사라진다.

파란 하늘에 큰 붓으로 그은 것 같은 기와 지붕의 윤곽선이 유난히 뚜렷하다. 그 지붕 아래로 은은한 불빛이 퍼질 무렵 앵글 속으로 들어온 나룻배가 시나브로 소실점으로 사라진다.

중국 장쑤 성 우전 여행은 정지된 시간 속에 잠시 머무르다 돌아온 느낌을 준다. 어쩌면 오래 전, 아주 오래 전 그곳에서 살았을지 모른다는 착각도 생길 만하다. 그만큼 풍경과 사람들의 표정이 낯설지 않다. 혹, 중국이라고 해서 '거대하고 웅장한' 눈요깃거리를 기대했다면 우전은 생각하지 않는 게 좋다. 그 대신 중국의 서정을 오롯이 느끼고 싶다면 우전을 꼭 찾아라. 겨울이면 제비가 찾아 간다는 중국의 강남, 양쯔 강 이남의 우전으로 여행을 떠난다.



■시간이 멈춘 '운하 도시', 우전(烏鎭)

우전(烏鎭)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까마귀 나루터'가 된다. 그러나 까마귀가 많아서가 아니라, 까마귀처럼 검은 진흙이 강을 따라 흘러와 쌓인 땅이란다. 양쯔강 하류의 삼각주에 위치한 우전은 1천400년 전 수나라 양제 때 건설된 '경항대운하'가 지나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다. 경항대운하란 북경과 항저우를 잇는 길이 1천794㎞의 운하다.

우전은 동·서 마을로 구분된다. 현지에서는 이를 동책과 서책으로 읽는다. 여기서 '책(柵)'은 울타리를 뜻한다. 즉, 울타리 동쪽에 있는 동책이 지난 2001년 먼저 조성됐고, 서쪽 마을인 서책은 6년 뒤 리모델링 작업을 거쳐 개방됐다. 두 마을에서 명·청 시대 건축과 삶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백련탑.

■동쪽 마을, 동책

동책부터 걸었다. 마을로 들어가는 개찰구에서 입장권을 제시하면 시나브로 과거 여행이 시작된다. 여행의 핵심은 수로와 골목이다. 수로 위로 흘러가는 나룻배와 기와 지붕의 목조 가옥이 영화 속의 옛 중국을 연상시킨다. 강 위로 살짝 떠 있는 듯한 집 구조가 흥미롭다. '수각(水閣)'으로 불리는데, '물 위의 누각'이다. 나무나 돌 기둥을 강에 박아 주거 공간을 넓혔다. 수각은 조명이 켜지는 밤이면 그 진가를 더욱 발휘한다.
아치형 돌다리.

수로는 군데군데 놓인 아치형 돌다리 위에서 가장 잘 조망된다. 수로 사진을 적당히 찍었다면 느긋하게 골목을 구경할 차례다. 동책이든, 서책이든 골목 안에는 목조 침대와 관혼상제, 명절을 주제로 한 전시관이 많다. 그중 침대 전시관은 명나라 귀족부터 청나라 소녀의 침대까지 다양한 사례를 보여준다.
하늘 높이 지지대를 세워 말리고 있는 쪽빛 천.

유물이 전시관을 채웠다면 우전 사람들의 삶은 그 자체로 생활사 박물관이 된다. 그중 염색과 술 공방은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삶의 체험장이다. 수백 개의 큰 항아리에 술을 빚고, 하늘 높이 쪽빛 천을 말리는 주민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참, 골목 한 모퉁이에서 가죽신을 만드는 여성 갖바치를 만나면 "니 하오"라는 인사도 잊지 말자.

이층 목조건물이 즐비한 골목.

■서쪽 마을, 서책

서쪽 마을인 서책도 동선은 동책과 비슷하다. 수로를 따라 늘어선 이층 목조주택을 구경하며, 때때로 수로를 가로지른 아치형 돌다리에 올라 수로 사진을 찍는다. 다만, 서책의 수로와 골목이 동책보다 4배가량 길고 편의시설도 많다.

동책이 도보여행만 가능한 반면에 서책은 숙박과 체험이 가능한 체류형 코스로 개조된 것이다. 동·서 마을은 무료 셔틀버스로 오갈 수 있다.

서책에서 주목할 곳은 우전 출신의 시인, 마오둔(茅盾) 기념관이다. 그는 이곳 삶과 풍경을 자신의 작품에 담았는데, 다 허물어진 우전을 지금처럼 살아 있는 체험 공간으로 조성할 때 그의 작품을 많이 참조했다고 한다. 지역 예술가를 지역 사람들이 어떻게 기억하고 재생하는지를 느끼게 해준다.

골목의 겨울 햇살을 잠시 즐기고 있으니 일행 중 한 명이 자색 고구마를 사왔다. 향긋했다. 한 봉지에 10위안(1천800원).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중국 물가를 감안할 때 '착한' 가격이다. 그것도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가격이 아닌가.

중국 여행사업을 15여 년 해온 BIE항공 조용락 대표는 "중국 양쯔강 이남에 관광지로 개발된 운하 마을이 5곳 있는데, 호객 행위를 하지 않는 곳은 우전이 거의 유일하다"고 했다. 그의 주장이 옳았다. 서책에는 120여 곳의 식당과 상점이 포진하고 있지만 어디에서도 호객 행위를 목격하지 못했다. 편안한 도보 여행을 위해 주민과 운영사 측이 스스로 경쟁을 자제한 것이다.

도보 여행을 하다 지치면 나룻배를 타도 된다. 뱃값은 입장료에 포함됐다. 가마처럼 생긴 중국 나룻배를 운전하는 사람도 주민이다. 정원이 6명인데, 한 명씩 탈 때마다 나룻배가 좌우로 기우뚱거렸다. 균형을 잡지 못하면 배가 뒤집힌다고 누가 겁을 줬다. 전통과의 공존도 나룻배의 균형과 다르지 않을 테다.



■우전의 진짜 구경은 야경

당초 해가 지기 전에 우전을 떠나려고 했다. 일찍 항저우로 돌아와 쉬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동행한 아시아나항공 부산여객지점 정충규 과장이 "이왕 우전에 왔는데 야경을 보고 가자"고 제안했다. 그가 아니었으면 우전의 절반만 구경할 뻔했다.

야경은 상상 이상이다. 해가 지면서 하나둘 켜진 실내·외 조명이 수로 위로 은은히 퍼질 때 연출되는 빛의 물결은 소리만 없을 뿐, 그 자체로 쇼팽의 야상곡이다. 카페에서 해가 지기만을 기다리던 수많은 관광객이 아치형 돌다리에 올라 일제히 사진기를 꺼내 들었다.

하늘과 물은 푸르고, 기와 지붕의 윤곽선은 뚜렷했다. 물에 비친 불빛을 타고 조심스럽게 노를 저어 온 사공의 나룻배는 앵글 속에 잠시 머물다 소실점으로 사라졌다. 청바지를 입은 서양 청년이 앵글 속에 잡히지 않았다면 이곳이 21세기인지, 18세기의 중국인지 구별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우전(장쑤 성)=글·사진 백현충 선임기자 choong@busan.com


여행 팁


우전(烏鎭) 옛 운하 마을로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 서책이 120위안, 동·서책 연결 상품은 150위안. 숙박은 서책에서만 가능하며, 특급호텔은 물론이고 배낭여행자를 위한 게스트하우스와 유스호스텔도 많다. 우전 홈페이지(www.wuzhen.com.cn) 참조.



■항공과 여행상품

아시아나항공은 부산∼항저우 노선을 2월부터 주 2편에서 4편으로 확대한다. 이에 맞춰 항저우와 우전, 리양을 묶은 부산 출발 상품이 이르면 1월부터 출시될 예정이다. BIE항공이 개발 중이며 예약은 하나투어(1577-1233), 위너투어(051-746-9073), 윤&초이투어(051-647-3888) 등에서 받는다.



■리양

BIE항공이 개발 중인 우전 상품에는 리양(장쑤 성)과 항저우(저장 성)도 포함된다. 리양은 '티안무(天目湖)관광리조트'(www.tmhtour.com/hanwen)가 주목된다. 호수와 섬, 대나무 군락지, 온천을 하나로 묶은 거대한 면적의 힐링 여행지다. 그중 대나무 숲이 산 전체를 뒤덮은 '남산죽해(南山竹海)'는 리안 감독의 영화 '와호장룡'에 등장한 대나무 숲과 거의 같은 배경으로, 영화 속 무대도 남산에서 멀지 않다. 산꼭대기까지 꼬마열차와 모노레일을 타고 오르면 판다와 대나무박물관을 구경할 수 있다. 온천 여행은 산중 노천에서 주로 이뤄지는데, 다양한 아로마 탕이 52가지나 된다.



■항저우

항저우는 중국인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다. 전기 택시가 다닐 정도로 공해가 적다. 우리나라 관광객에게도 인기가 높은 서호에서는 수질 보호를 위해 화장실과 식당이 없는 전기 유람선을 띄우고, 낚시, 빨래, 수영도 금지되고 있다. 장이머우 감독의 '인상서호'(印象西湖)가 공연되는 곳도 서호다. 하지만 겨울에는 인상서호가 열리지 않아 '송성가무쇼'가 주로 선택된다.

백현충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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