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에 포기했던 공부, 경찰 언니 응원에 100점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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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강서경찰서 배수희 경장이 학생들을 상대로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하고있다. 부산지방경찰청 제공

부산의 한 여중생의 100점짜리 시험지가 화제다. 어려운 문제를 술술 풀어내 감탄을 자아내는 게 아니다. 한 사람의 응원이 누군가를 일으키는 힘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로 많은 누리꾼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지난달 말 강서경찰서 학교전담경찰관 배수희(27·여) 경장의 휴대전화에 메시지 도착을 알리는 벨이 울렸다. 보낸 이는 모 중학교 3학년 A(15) 양이었다. "짜잔~ 언니! 이것 좀 보세요"라는 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이 첨부돼 있었다. 사진은 문제마다 동그라미가 처진 방과후수업의 수학 시험지였다.

작은 관심과 진솔한 대화로
아픈 마음 치유, 학업 집중
강서 여중생 100점 시험지 화제

'학폭'의 눈물 닦아준 배 경장
"작은 응원이 치유의 시작
친구 같은 언니 되고 싶어"

배 경장과 A 양은 2개월 전에 처음 만났다. A 양은 배 경장이 조사중인 학교폭력 사건의 피해자였다.

처음부터 A 양은 조사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배 경장의 질문에도 입을 닫고 말이 없었다. 마음의 문도 닫혀 있었다. 사춘기 예민한 시절 친구들에게 폭행을 당했으니 상처가 컸던 것이다. 여느 학교폭력 피해자처럼 A 양도 자존감이 떨어지면서, 삶의 의욕을 많이 잃은 상태였다.

배 경장은 A 양에게 친구 같은 언니가 되고 싶었다. 누군가의 응원이 있으면 밝은 여중생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2년째 학교전담경찰관 업무를 맡다보니, A 양의 지금 모습이 진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 경장이 할 수 있는 것은 작지만 진실된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틈틈이 휴대전화로 안부를 묻고 농담도 했다. 일주일에 한번씩은 얼굴을 보기로 하고, 학교나 집을 찾아가기도 했다. A 양의 마음도 서서히 열렸고, 커피숍에서 한참 수다를 떨 정도로 가까워졌다. 어느새 배 경장은 경찰관에서 친한 언니가 되어 있었다.

배 경장이 "살이 빠지면 더 예쁘질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실제로 A 양이 다이어트를 하기도 했다. 예뻐진 동생을 위해 배 경장은 자신의 옷을 선물했다.

배 경장은 A 양과 소소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고 한다. 상처받은 마음에 필요한 건 심각한 조언보다 '그래도 자신과 함께 하고픈 누군가가 있다'는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배 경장의 작은 관심은 A 양의 마음에선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자존감이 되어 쌓여 갔다.

A 양의 어머니는 배 경장에게 "고맙다"고 자주 말한다고 한다. 방황하던 A 양이 착실히 방과 후 수업에 나가고 예전보다 훨씬 적극적인 여중생이 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기 시작한 게 가장 큰 변화다. A 양은 얼마전까지 영화감독을 꿈꿨다가 다시 생각을 바꾸고 있다. 영화감독이든 무엇이든 A 양이 삶의 목표를 정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배 경장은 고맙다.

인터넷에 화제가 되고 있는 A 양의 100점짜리 방과후수업 수학 시험지. 부산지방경찰청 제공
A 양과 배 경장의 사연은 3일 100점짜리 성적표 사진과 함께 부산경찰청 SNS에 올랐고 많은 누리꾼들이 감동받고 위로받았다며 A 양에 대한 응원 메시지로 화답하고 있다.

배 경장은 "A 양이 상처를 극복하는 중인데 갑자기 이목을 끌게 돼 많이 부담스럽다"며 "마음이 통해 친구가 되었고, 여전히 A 양을 응원하고 있을 뿐이다"고 말했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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