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힘겨운 하루의 끝 위로 받을 공간이 필요해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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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국내서 43만부 판매, 닮은꼴 식당까지

일본 만화 '심야식당'이 드라마, 영화 등으로 제작되어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만화 속 마스터와 드라마·영화의 마스터(오른쪽).

"하루가 끝나고/ 사람들이 귀가를 서두를 무렵/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영업시간은 밤 12시부터 아침 7시경까지/ 사람들은 심야식당이라고 부른다/ 손님이 오냐고?/ 근데 꽤 많이 오더라니까."

아베 야로의 만화, 국내 43만 부 판매
일본서 드라마·영화로 만들어져 인기
SBS, 한국판 '심야식당' 드라마 제작
골수팬, 부산에 원작 닮은꼴 가게 오픈

"소외된 하층민·소수자 주인공 등장
상처 치유하는 이야기에 공감·힐링"

■만화, 영화, 뮤지컬, 드라마까지


'심야식당'의 주인인 마스터가 드라마의 시작을 알리며 늘 똑같이 읊조리는 독백이다. '심야식당'을 모르신다고? 심야식당은 매일 자정부터 아침 일곱 시까지 식당 문을 열고 손님을 맞는다. 그래서 별도의 간판이 없지만 심야식당이라 불린다. 대부분 손님은 여러 번 가게를 찾아온 단골. 식당에서 원래 파는 메뉴는 돼지고기 된장국 정식과 술 종류뿐이다. 술도 1인당 세 병(잔)까지로 제한을 둔다. 나머지는 알아서들 주문하면 '만들 수 있는 한 만들어준다'는 영업방침을 가지고 있다. 손님들은 "늘 먹던 거로 줘요!"라고 외치며 들어온다. 가만 보면 그들이 시키는 음식에는 그들 각자의 추억이 깃들어 있다.

아베 야로 원작의 만화 '심야식당'은 2007년부터 일본 만화잡지 '빅코믹 오리지널'에 연재되기 시작했다. 벌써 9년여의 세월 동안 일본을 넘어 한국에서까지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만화책이 팔린 권수만 해도 일본에서 240만 부, 국내에서 43만 부다. 만화는 2009년부터 일본에서 TV 드라마로 제작되어 현재 시즌3까지 방영됐다. 국내에서도 이 일본 드라마는 케이블방송으로 방영되어 인기를 모았다(현재 다시 방송 중이다). 특히 인터넷을 통해 심야식당 드라마를 내려받아 소장하는 골수팬도 적지 않다. 2013년에는 심야식당이 국내에서 뮤지컬로도 제작되었다.

꽤 시간이 흐른 심야식당에 대해 다시 한 번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화로 제작된 '심야식당'이 지난달 18일 국내에도 개봉되면서부터다. 이 영화는 국내 50여 개 스크린에서 상영되어 10만 관객을 불러 모았다. '다양성 영화'의 10만 관객은 블록버스터 영화의 100만 관객과 비교되는 수치.

게다가 '심야식당'은 한국에서 최근 드라마로 리메이크되며 더욱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SBS는 지난 4일부터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오전 12시 10분에 한국판 '심야식당'을 방영하기 시작했다. '심야식당'은 만화에서 시작해 드라마, 뮤지컬, 영화 등 다른 장르로 지금도 진격 중이다.

■인기 비결과 리메이크 논란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마스터 캐릭터에 위로를 받는다"고 말한다. 마스터 역의 배우 코바야시 카오루는 "상처받은 사람이 치유받는 내용에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마스터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함부로 판단하거나 섣부른 조언을 내리지 않는다. 심야식당 팬을 자처하는 이정수 씨는 "손님들이 심야식당이라는 무대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연극처럼 펼치는 걸 보면서 서로 힐링이 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시즌3까지 드라마를 다 보았다는 김재훈 씨도 "심야식당의 주인공은 단골이든 뜨내기든 나 같이 평범한 손님이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SBS에서 리메이크한 드라마는 방영 전부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단골로 출연하는 게이바 마담 캐릭터를 아예 드라마에서 뺐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원작을 각색하는 과정에서 한국적 상황을 고려했다고 변명했다. 아직도 성 소수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시선 때문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보는 드라마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를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래도 아쉽다는 견해가 많다. 원작 '심야식당'은 소외된 하층민, 소수자, 약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야로 작가는 "심야식당에 나오는 사람들은 보통 만화에서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오히려 주인공이 아닌 삶을 살아가기에 더욱 특별하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까지 2회가 방영된 리메이크 드라마 심야식당은 일단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SBS 시청자 게시판에는 드라마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가 많이 올라와 있다. 아이돌 출신 배우의 연기력 부족, 과다한 PPL, 원작에 비해 호화로운 인테리어 등이 집중적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워낙 골수팬이 많아서 리메이크 드라마는 약간의 문제만 비쳐도 부정적 평가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런 비판에 제작진은 귀를 기울일 것인가? 여러 손님의 입맛에 맞추다 보면 드라마가 산으로 갈 우려도 있다. 초반의 부정적인 평가를 극복하고 한국판 심야식당이 전설의 완결판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사진은 '심야식당'을 빼닮은 부산 '메시야'의 김병주 대표.
■부산에 심야식당이?

부산의 심야식당 팬이라면 주목하시라. 일본에도 없는 심야식당이 부산에 있다. 중구 동광동 백산기념관 근처에는 왠지 낯익은 가게가 보인다. 드라마와 같은 '메시야(051-255-7712)'라는 노렌(가게 이름을 적은 천)을 젖히고 들어갔다. 'ㄷ자' 모양의 테이블에 벽에 걸린 옷걸이까지 심야식당과 정말 똑같다. 일단 눈에 띄는 차이라면 마스터가 훨씬 젊고 잘생겼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오래 공부한 김병주 씨는 드라마 '심야식당'의 열렬한 팬이다. 오래전부터 심야식당을 닮은 가게를 꿈꿔서 문을 열었다. 영화 '심야식당'에는 마스터가 손이 아파 힘들어하는 장면이 나온다. 공교롭게도 김 씨도 손을 다쳐 가게 문을 한 달 이상 닫았다가 지난 7일부터 새로 문을 열었다. '메시야'에 가면 영화나 드라마 속에 들어간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메시야는 카레 위주의 메뉴를 선보인다.

또 한 곳 심야식당과 닮은꼴로 꼽히는 곳이 남구 대연동의 '미소오뎅(051-902-2710)'이다. 미소오뎅은 장소가 좁아 다닥다닥 붙어앉아야 한다. 그래서 심야식당처럼 옆자리에 앉은 손님과 자연스럽게 말이 섞일 수밖에 없다. 쉽게 어울려 금방 형 동생이라고 부르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양재원 사장은 "손님으로 각각 와서 우리집에서 우연히 만나 2쌍이 결혼했고 1쌍이 결혼 예정이다"라고 흐뭇한 표정으로 말한다.

사람들은 심야식당을 좋아하는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길 바란다는공통점을 가지고….

글·사진=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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