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로왕의 금관가야 왕궁터 실체 규명될까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14일 오전 김해 봉황동 유적지에서 발굴 조사 시작을 알리는 개토제가 열렸다. 강원태 기자 wkang@

금관가야 왕궁과 도성이 실체를 드러낼까?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금관가야 왕궁터로 알려진 경남 김해시 봉황동 유적지(사적 제2호)에 대한 본격 발굴에 착수하고 지난 14일 오전 11시 첫 삽을 뜨는 개토제를 진행했다. 이날 개토제는 초헌례와 아헌례, 종헌례와 망요례로 진행되었으며 인근 주민들과 함께하는 음복이 뒤이었다.

왕궁터 추정지 김해 봉황동
개토제 실시하고 발굴 시작
3년간 5천㎡ 규모 조사 진행

김해 봉황동 유적지는 김수로왕 건국 이래 김해를 중심으로 500여 년간 세력을 떨친 금관가야의 왕궁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이곳은 1907년 첫 조사와 일제강점기 이후 간헐적인 발굴을 통해 회현리 패총과 토성, 주거지 그리고 마을의 방어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도랑인 환호가 확인된 바 있다. 부산대학교 박물관은 1999년 이곳이 청동기시대 초기부터 취락지였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김해 회현동 패총에서 출토된 동검. 국립김해박물관 제공
금관가야는 기원전부터 532년까지 김해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너른 평야를 바탕으로 농업이 발달했고, 낙동강 하구에서 무역을 발전시켰다.

1899년 발행된 '김해군읍지'에는 '수로왕궁지는 지금의 김해부 내에 있다고 전해지며, 고궁지는 서문 밖 호현리에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특히 이번 발굴에서 금관가야 왕궁의 실체가 규명될지 학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날 개토제에 참석한 동국대학교 안재호(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경북 고령이나 경남 함안에서 대가야와 아라가야의 왕궁지로 추정된다는 곳을 발굴했지만 눈에 띌 만한 결과물을 찾지 못했다"면서 "이번에 멀지 않은 곳에서 토성과 환호가 발견돼 기대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인제대학교 이영식(역사고고학과) 교수는 "봉황동 유적지 중간에 큰 은행나무가 있는데, 이 은행나무 앞에는 숙종 5년에 세운 비석이 있고, 비석에는 '수로왕이 왕궁을 만든 터'라고 기록되어 있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그는 "흔히 가야 유적하면 고분군만 떠올린다"면서 "가야의 사후세계관 말고 중흥기의 역사를 증명해줄 유적이 출토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발굴조사는 앞으로 3년간 김해 봉황동 316 일대 약 5천㎡에서 진행한다. 하지만 수백 년 넘게 이곳에 주거지역이 형성되었기에 발굴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최인화 학예연구실장은 "누적된 시간이 오래된 고대 유물인 만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3m 정도 깊게 팔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조소희 기자 sso@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