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진상규명' 언급 배경] '비선 실세 의혹'에 국정 발목, 한 달 만에 '정면돌파'
정권의 '비선 실세'로 지목되면서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오르는 최순실 씨 의혹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20일 '엄정 수사'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번 의혹이 정권 차원의 권력형 비리사건으로 비화하려 하자 기존의 무대응 전략에서 정면 돌파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미르·K스포츠재단의 의혹에 최 씨가 관여돼 있다는 언론 보도(9월 20일)가 나온 지 꼭 한 달 만이다.
최순실 의혹 갈수록 증폭
특혜 입학 관련 여론 악화
하락하는 지지율도 부담
노조 파업에도 우려 표명
■정면돌파로 의혹 해소 나서
박 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어느 누구라도 재단과 관련해서 자금 유용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면 엄정히 처벌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씨의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최근의 의혹보도 등을 감안하면 사실상 '봐주지 말고 엄정히 수사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그동안 청와대가 '제기된 주장에 일일이 언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반복한 것과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이는 최 씨와 이들 재단 관련 의혹이 수그러들기는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확산되면서 국정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특히 최 씨의 딸 정유라 씨의 이화여대 입시와 학점에 대한 특혜 의혹이 불거지고 전례 없이 이대 총장이 사퇴한데다 이들 모녀의 SNS 발언 등이 공개되면서 국민 정서를 건드린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또 진위 여부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최 씨가 박 대통령의 연설을 수정하기 좋아했다', '재단 임직원 채용 때 청와대가 인사 검증을 했다'는 등의 증언을 담은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청와대와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지는 것도 더 이상 사태를 묵과할 수 없게 했다.
이와 함께 최 씨 측에 K스포츠재단 재단 자금이 흘러간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구체적 비리 정황이 없다'는 논리로 무대응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고심을 거듭한 끝에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선 '엄정한 수사'라는 원칙론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의 정치 환경도 한몫했다.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고 야당의 공세가 격렬해지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이번 의혹을 정리하지 않고는 북핵과 경제 위기 대처, 연말 예산안 처리 등 정치권의 협조를 얻어내기 어렵다는 점도 감안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최 씨 관련 의혹들은 실제 대통령이 연루된 권력형 비리라기보다는 최 씨가 박 대통령과의 친분을 내세워 사적인 이익을 챙긴 개인적 일탈일 가능성이 크다"며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상을 드러나면 우리 정부에 비선 실세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과 노조파업에 우려 표명
박 대통령은 이날 이례적으로 대기업 경영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동시에 노조 파업에 대해서도 비판을 이어갔다.
박 대통령은 "우리의 대표 수출기업들의 제품 결함으로 당장의 수출 타격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인 브랜드 신뢰 저하 우려까지도 제기되고 있다"며 "어려운 고비들을 잘 극복해왔지만 아직 경기 회복 흐름이 확고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는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와 현대자동차 엔진 결함 문제 등 '빅2' 기업의 동반 위기를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최근 대내외적으로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향후 경제 여건이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돼 걱정이 크다"며 "한진해운 물류 사태에 이어 자동차 파업,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 거부, 철도노조 파업 등이 겹치면서 생산과 수출에 큰 차질을 빚었다"고 노조 파업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했다.
박 대통령은 "이 어려운 때 본인들의 이익에만 몰두해서 일자리를 이탈해 거리로 나가는 것은 결국 그 피해가 가족과 국민들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