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바꿔 놓은 '시민 정치'] 세계는 지금 '디지털 민주주의'로 진화
'최순실 국정개입' 사태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최순실이라는 한 개인이 국정에 비밀스러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의혹이 사실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대통령 연설문을 미리 받아보고 고친다거나 외교 및 안보에 관한 중요한 기밀을 보고받았으며, 주요 요직에 인사를 결정하는 것 등 수많은 정치적 사안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드러난 것이다. 또한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재단을 세우고 기업으로부터 수백억에 이르는 돈을 받아냈으며, 가족과 친지는 각종 특혜와 특권을 누려왔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했으며 최순실 씨를 비롯하여 관계자들이 검찰 조사를 받는 중이지만, 전 국민적인 분노는 날이 갈수록 더해가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과 공식적으로 임명된 공직자가 아니라 숨겨진 사람이 뒤에서 정치에 관여하는 '정치권력의 사유화'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에 대해 시민들은 분노와 허탈,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일상적인 대화에서부터 1인 시위나 거리 시위, 시국선언문 발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진실 규명과 정치 쇄신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가 왜 발생했고, 어떻게 하여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일까. 여러 정치학자의 지적 중에는 '대의민주주의' 한계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다. 민주주의에서는 다수결에 의하여 선출된 소수가 다수를 대표하여 정치를 하게 된다. 이때 한번 대표자로 당선되고 나면 더 이상 국민의 뜻을 반영하지 않더라도 권력이 유지되기 때문에 권력을 남용하거나 악용할 여지가 다분하다. 또한 여러 정치적 의사결정을 할 때 국민의 뜻을 반영하기보다 대표자들이 위에서 결정하고 국민이 아래에서 따르게 하는 '하향식'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국민은 정치와 점점 멀어지고 냉소하게 된 것이다. 국민의 견제와 감시를 받지 않는 권력은 부정과 부패에 연루되기 쉽고, 정치가 바로 서지 못하면 그 피해는 모두 국민에게 돌아온다.
그러므로 국민이 투표장에서만 주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정치적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와 아래에서부터 의견이 모여 올라오는 '상향식' 시스템에 대한 요구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수많은 사람이 모두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재의 정치 구조는 어쩔 수 없다는 반론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피아 만시니는 우리가 살고 있는 디지털 시대에는 직접민주주의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시민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 '데모크라시 OS'를 개발해 400여 개의 법안에 시민들이 토론과 표결을 하도록 하였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시민들이 참여해 목소리를 내는 직접민주주의는 이뤄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지난달 6일 국내 최초로 정치 스타트업 단체인 '와글'이 시민들의 법안 발의 플랫폼 '국회톡톡'을 개발한 바 있다. 시민 누구나 법안을 발의할 수 있으며, 여기에 1000명이 동의하면 이 법안과 관련된 국회의원과 연결되는 구조로 되어있다.
우리 헌법에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며, 헌법 제1조 2항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언제나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것은 깨어있는 시민들의 힘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급격한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우리는 이 국가의 주인으로서 이 땅의 민주주의가 여기까지 뒷걸음질 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이제는 개인, 혹은 소수만을 위한 대한민국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시민의 힘으로 여는 새로운 민주주의, 시민이 자랑스럽고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대한민국을 그려본다.
유진재
인디고잉 편집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