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준의 정의로운 경제] 한전 횡포와 민영화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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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로마의 '아피아 가도' 관문에 있는 성벽. 아피아 가도는 역사적으로 인프라의 공공성을 대표한다.

얼마 전 한국전력은 정부의 경영성과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직원 1인당 평균 2000만 원의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공교롭게도 그것이 이번 여름의 유난한 더위 때문에 대부분의 가정에서 '전기료 폭탄'을 맞은 시기와 일치했다. 자연히 '공기업이 국민 주머니 털어 배 채웠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부랴부랴 당정협의회에서 문제의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개편하기로 했는데 과연 성난 민심을 달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런데 전기가 민심을 어지럽힌 사건이 하나 더 있다. 2008년 시작된 밀양 초고압 송전탑 건설 갈등이 바로 그것이다. 송전탑 위치가 주거지역과 지나치게 가까웠던 것이다. 이들 사건은 모두 한국전력이 개별 국민의 이해를 거스르며 횡포를 부린 사건이다. 한국전력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런 횡포를 부린 것일까?

전기라는 상품의 공공성 때문이다. 그래서 이 공공성이라는 문제를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전기는 공동체 전체가 함께 소비해야 하는 특수한 재화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상하수도 도로 철도 통신 국방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을 통틀어 사회간접자본(혹은 인프라)이라고 부른다. 이들 인프라는 시장 기능에 맡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 재화의 공급에 문제가 발생하면 사회 전체가 큰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가 끊기거나, 국경선이 뚫리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상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한국전력이 뒷배로 생각하는 공공성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들 인프라는 원래 인류가 경제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공동체가 직접 관리해 왔다. 동양에서 농업에 필요한 하천 관리, 로마제국을 이어준 도로 관리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이 재화를 공급하는 데에는 비용이 수반되고 그 비용은 공동체 성원 모두가 부담하는 조세로 충당되어 왔다. 우리가 흔히 전기와 수도요금을 '전기세' '수도세'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누진제 폭탄·밀양 송전탑 갈등
한전 횡포 바탕은 전력 공공성

SOC 사유화하는 신자유주의
2008년 금융위기로 실패 증명

최순실 게이트 계기 쇄신 대상
시대착오적 민영화 포함돼야


이처럼 수천 년 동안 공동체가 관리하던 이들 인프라가 1980년대 이후 갑자기 사유화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배경이 된 것은 자본주의에서 동원할 수 있는 돈벌이의 원천이 모두 고갈되었기 때문이었다. 공동체의 소유를 개인이 편취하는 것은 사실상 '횡령'이기 때문에 이를 은폐하기 위해 '민영화'라는 애매한 용어가 사용됐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상 '사유화'이고 그 의도는 단순하다. 사사로운 돈벌이의 원천으로 이 인프라를 이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거가대교, 서울 지하철 9호선, KTX 수서선 등에서 그 사례를 보았다. 사유화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들이 들고 나온 것이 '효율성'이라는 개념이다. 공동체가 관리하면 주인의식이 없어서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주인의식이라는 말은 곧 사적 소유를 다르게 표현한 것이고 효율이란 말은 곧 수익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국전력이 성과급을 챙긴 근거가 된 것이 바로 이 효율에 대한 평가이다. 공공성에 대한 효율 평가는 민영화를 위한 밑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그런데 바로 이 사유화를 주장하던 경제학이 바로 신자유주의이고 그것이 만들어 낸 것이 2008년 위기이다. 그래서 민영화는 이미 실패한 경제학에 기댄 시대착오적인 정책에 불과하다. 그런데 올 6월 14일 정부가 가스부문과 함께 문제의 한국전력을 민영화하겠다고 밝혔다.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그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국가를 개인의 돈벌이에 이용한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정부의 전면적인 쇄신 기회가 주어졌다. 차제에 부디 경제 분야에서도 시대의 흐름과 재화의 공공성을 올바로 읽는 쇄신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원한다.

강신준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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