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환관과 문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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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종영한 박보검 주연의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 내시부 수장 한상익(장광 분)이 홍경래의 난과 관련된 인물로 그려졌다. 픽션이었지만, 고려 공민왕이 환관 최만생에게 살해된 것을 보면 엉뚱한 설정은 아니었다. 고려 초까지 내시는 명문가 자제들로 구성된 왕의 측근 엘리트 집단이었다. 이에 반해 환관은 거세된 자들로, 왕을 보필하며 허드렛일을 했다. 그러나 고려 중기 이후 세력을 확장한 환관들이 내시 직을 주로 맡으면서 내시와 환관은 구별 없이 쓰였다.

환관에서 내시가 된 첫 인물은 고려 의종 때의 정함이었다. 의종은 자신의 유모 남편인 환관 정함을 내시에 임명했다. 이 정함이 왕의 신임을 믿고 사대(絲帶)를 차고 나와 물의를 빚은 일이 있다. 이 일로 감찰 업무를 맡았던 대간과 내시원이 충돌, 대간의 출근 거부 투쟁이 벌어졌다. 의종은 어쩔 수 없이 내시 5명을 해임했으나, 정함은 끝내 보호했다.

영화 '왕의 남자'에 나오는 처선의 모델이었던 내시 김처선은 세종부터 연산군까지 일곱 임금을 모셨다. 그는 파직과 복직을 반복하면서, 내시 최고 관직인 상선의 자리까지 올랐다. 그런 김처선이 기생에게 빠진 연산군에게 직언을 하다 죽임을 당했다. 이후 연산군은 김처선의 '처'자 사용을 금했다. 심지어 처서(處署)를 조서(署)로 바꾸고, 처용무(處容舞)의 이름도 풍두무(豊豆舞)로 바꿔 버렸다. 김처선 못지않게 장수한 환관은 김사행이다. 김사행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다섯 명의 임금을 모셨다. 노국공주를 잃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등용한 요승(妖僧) 신돈과 환관 김사행이 공민왕의 최측근이었다. 태조 이성계가 가장 총애했던 김사행은 경복궁을 설계했다. 이성계는 대간보다 환관을 신뢰했다. 김사행은 왕자의 난 때 단종을 지키려다가 세조(수양대군)에 의해 죽음을 맞았다. 김처선처럼 환관 권력이 직언으로 최후를 맞는 경우도 있었지만, 권력의 맛에 취한 이들도 많았다. 왕을 그림자처럼 보좌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권력이었다.

익명의 정열, 일본의 평론가 사카야 다이치가 측근의 최고 덕목으로 꼽은 말이다. 존재감에 대한 욕심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국민들은 지금 측근과 문고리 권력의 폐해를 신물 나도록 보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 국민의 눈높이는 권력의 맛이 '거세'된 정치에 맞춰져 있다. 이춘우 편집위원 bom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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