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주 칼럼] 탄핵,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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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주 논설위원

시나브로 운명의 날이 밝았다. 온 국민의 이목이 여의도로 향해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가결될까, 부결될까? 가결이든 부결이든, 그 후폭풍은 메가톤급이 될 것이다. 가결되면 자축(自祝)의 촛불이 광장을 환하게 밝힐 것이고 부결되면 분노의 촛불이 국회의사당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릴 태세이다. 현재로선 가결 확률이 더 높다고 하겠다. 오락가락하던 정치권이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한 6차 촛불집회의 민심에 화들짝 놀라 '탄핵 열차'에 떠밀려 올라탔기 때문이다.

무기력 정치권 탄핵 열차에 태운
촛불, 시민혁명 새 역사 쓰는 중

탄핵 이후에도 꺼질 확률은 없어
모순 바로 잡힐 때까지 타오를 것

권력분점·경제민주화·지방분권 등
국가 새 비전 새 헌법에 담아야


2만 개로 시작한 촛불은 불과 한 달여 만에 100배 이상 폭발하며 시민혁명의 새로운 역사를 써 가고 있다. 촛불은 수사 의지가 없던 검찰로 하여금 최순실 씨 등 '국정 농단' 무리들을 줄줄이 구속하고 박 대통령을 '피의자'로 입건하도록 했다. 촛불은 눈치만 보며 몸을 사리던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로 하여금 조건 없는 탄핵 대오에 가담하게 했다. 촛불은 박 대통령의 거짓 사과와 꼼수 담화를 한 방에 휴지조각으로 날려 버렸다. 촛불은 청와대 앞 100m 지점까지 진출함으로써 헌법 안에 잠들어 있던 집회의 자유를 흔들어 깨웠다.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진다'는 한 여당 의원의 망발을 집어삼키고 촛불은 더욱 거세게 민심의 들판을 활활 태우고 있다. 무기력한 정치권을 탄핵 표결까지 몰아붙인 촛불은 이제 무엇을 향해 번져 갈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법위원장과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을 지낸 이재화 변호사는 지난 4일 자신의 트위터에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남겼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이 끝이 아니다. 그가 남긴 모든 적폐(역사교과서 국정화, 사드 배치, 개성공단 폐지, 테러방지법, 위안부 협상 등)를 청산할 때까지 촛불은 타올라야 한다."

탄핵이 가결되면 촛불의 규모는 줄어들망정 일순에 사그라들지는 않을 것이다. 탄핵은 촛불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선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촛불이 밤하늘을 훤히 밝히는 동안 온갖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 찬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민낯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촛불은 이 같은 모순과 부조리가 바로잡힐 때까지 타오를 당위가 있다.

촛불이 타는 동안 국민들은 무엇보다 제왕적 대통령제에 따른 절대권력의 부패상을 똑똑히 목격했다. 지나치게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은 민주주의의 대원칙인 3권 분립을 무력화했다. 입법부도 사법부도 대통령의 전횡을 견제하거나 저지하는 데는 속수무책이었다. 오히려 일부 패거리는 대통령의 이름을 팔고 다니며 행세를 하거나 파당을 형성해 정치적 이권을 챙겼다. '친박계'가 대표적 사례이다. 민주주의의 보루인 사법부마저 청와대에 의해 길들여진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검찰은 예의 권력의 시녀였을 뿐, 대통령 비선 실세들의 농단을 제때 처단하는 데 실패했다. 특검의 출범은 검찰 조직에 대한 사실상의 사망 선고이다.

재벌들은 절대권력자의 말 한마디에 큰돈을 고분고분 내놓았다. 대통령과의 독대를 통해 총수사면, 세무조사 무마, 경영승계 등 민원을 전달하고 해결한 정황이 뚜렷하다. 후진국형 정경유착으로 총수들이 28년만에 줄줄이 청문회장에 서야 했다. 이제 남은 건 특검에 의해 뇌물죄로 단죄 받는 일이다.

탄핵소추가 의결되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까지 최장 6개월이 소요될 것이다. 이 기간은 새로운 대한민국을 세우기 위한 절체절명의 시간이다. 탄핵심판은 헌재에 맡겨 놓고,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는 머리를 맞대고 대한민국 대개조에 나서야 한다. '권력 분점'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대통령의 권력을 나눌 수 있는 방안과 3권이 철저히 분립될 수 있도록 국회 및 사법부 독립 보장안 마련을 위한 헌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 아울러 명실상부한 지방자치 실현을 위한 지방분권형 국가를 천명하는 새 헌법이 돼야 한다.

막연한 경제민주화 관련 조항을 더욱 보완하고 남북통일을 염두에 둔 연방제와 양원제 문제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정치권은 대권 쟁탈 게임에만 몰두하지 말고, 21세기 대한민국의 원대한 비전을 세우고 선진국 진입에 대비한 헌법 개정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촛불민심은 단순히 정권교체에 있지 않다. 사회 전반에 걸친 적폐 청산에 그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시민혁명은 피가 튀지 않을 뿐, 철저한 전복과 창조적 파괴임을!

hoho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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